[르포르테르 Magali Reinert] 무더운 여름, 프랑스에서는 벌써 나뭇잎이 노랗게 물들어 떨어지는 모습이 보인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폭염이 불러온 ‘이른 가을’ 현상이다. 일찍 낙엽이 진 나무들이 가을철에 다시 꽃을 피우는 이례적인 현상도 곳곳에서 관찰되고 있다.
가을의 고유한 풍경인 단풍은 보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8월 중순부터 벌써 노란 잎이 떨어지는 모습은 달갑지 않다. 예년보다 두 달 이상 이른 시기에 나타난 이러한 조기 낙엽 현상은, 프랑스 생리생태학자 장마르크 리무쟁(Jean-Marc Limousin) 박사에 따르면 “여름철 극심한 폭염과 가뭄의 직접적인 결과”다.
올해 프랑스는 기상청(Meteo-France)이 ‘지속 기간과 강도 모두 이례적’이라고 평가한 두 차례의 폭염을 겪었다. 이로 인해 나무들은 심각한 수분 스트레스와 열 스트레스를 동시에 받았고, 가장 먼저 영향을 받은 것은 잎이었다.
잎이 타들어가는 메커니즘
리무쟁 박사는 ‘르포르테르(Reporterre)’와의 인터뷰에서 “잎을 통한 증산작용은 나무가 수분을 내보내며 스스로를 식히는 일종의 호흡”이라며, “하지만 가뭄이 심해지면 나무는 수분을 아끼기 위해 이 과정을 억제하게 되고, 이로 인해 잎의 온도는 공기 온도보다 최대 10도까지 상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극심한 고온에 잎이 ‘그을려’ 버리는 것이다.
여기에 잎 표면을 덮고 있는 큐티클(수분 증발을 막는 왁스층)이 녹아내리며 잎의 수분 손실은 더욱 가속화된다. 수분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나무의 수액 통로에 공기 방울이 생기는 ‘엠볼리(embolism)’ 현상이 발생하고, 이는 회복 불가능한 잎의 고사로 이어진다. 심한 경우 가지 전체가 말라죽을 수 있다.
리무쟁 박사는 “잎은 일종의 퓨즈 역할을 한다”며 “잎을 떨어뜨리면 나무 입장에선 수분 공급 부담이 줄어들어 일시적으로 생존에는 유리하지만, 동시에 나무의 전반적인 건강은 약화된다”고 말했다. 낙엽이 일찍 지면 광합성 기간이 줄어들고, 이는 나무가 유기물질을 생성해 겨울을 버틸 에너지를 축적하는 데 악영향을 미친다.
나무의 죽음은 ‘조용히, 조금씩’ 찾아온다
이러한 스트레스가 반복되면 나무는 서서히 죽어간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생태학자 이자벨 슈인(Isabelle Chuine) 박사는 “한 해에 잎과 가지 일부가 고사하면, 다음 해엔 또 다른 부위가 영향을 받고, 이런 식으로 나무는 해마다 조금씩 죽어간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기후변화는 나무 고사율 증가에 명백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로 프랑스 국토정보원(IGN)이 2024년에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프랑스 내 나무의 고사율은 최근 10년 사이 두 배로 증가했다.
더 심각한 문제는 폭염이 갈수록 이른 시기에 찾아온다는 점이다. 슈인 박사는 “특히 나무들이 한창 성장 중인 시기인 6월의 폭염은 피해가 더욱 크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2019년 6월 몽펠리에 지역에서 발생한 폭염을 언급하며, “당시에는 더위에 강한 편인 상록 참나무(Quercus ilex)들조차 대규모로 잎이 타버리는 피해를 입었다”고 회상했다.
잎 떨어진 뒤 ‘가을 개화’…이상기후가 만든 ‘두 번째 봄’
초여름에 조기 낙엽이 발생한 뒤, 또 하나의 새로운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가을이 평년보다 따뜻할 경우, 일부 나무들이 꽃과 잎을 다시 피우는 ‘가을 개화’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마치 두 번째 봄이 온 듯한 모습이다.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의 이자벨 슈인 박사는 “2003년의 대폭염 이후, 여름에 낙엽이 지고 가을에 다시 꽃과 잎이 나는 현상이 일부 해에 관찰되기 시작했다”며 “과학자들이 최근 들어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한 주제”라고 밝혔다.
이는 기후변화가 나무의 생장 주기를 어떻게 왜곡시키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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