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르테르 Alexandre-Reza Kokabi] 폭염이 닥치면, 파리의 지붕 바로 아래 꼭대기층 아파트는 마치 오븐이 된다. 낡고 단열이 부족한 건축 구조 속에서 주민들은 가능한 자구책을 동원하며 버텨낸다.
파리 18구, 지붕 아래 12㎡에도 못 미치는 방에서 사는 에믈린 르블랑(45)은 “지난 폭염 때는 거의 PLS(회복자세) 상태였다”고 털어놓았다. 이번에는 원칙까지 바꿨다. “에어컨은 안 쓰겠다고 다짐했지만 결국 이동식 에어컨을 샀다. 생존 모드로 전환한 거다.”
2019년부터 단열 공사, 열차단 커튼 설치, 지붕 보수 요구 등 온갖 노력을 했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낮에 40도, 밤에도 35도. 피부가 타는 듯하고, 움직이는 것만으로도 탈진한다. 따뜻한 음식은 꿈도 못 꾼다. 잠도 못 자고, 침대 시트조차 몸에 들러붙는다.” 가죽공예로 직업을 전향한 그녀는 옆에 사는 대학생 이웃의 학업 환경이 더 걱정된다고 전했다.
"혼자만의 이야기 아니다" 다락방, 꼭대기 스튜디오… 파리 여름은 지옥
이 같은 현실은 그녀만의 고통이 아니다. 다락방, 엘리베이터 없는 맨 꼭대기 스튜디오 같은 주거 형태는 여름이면 사실상 거주 불가능하다. 아연(zinc) 지붕은 태양열을 강하게 흡수해 집 안 온도를 끌어올리고, 파리의 밀집된 도시 구조는 통풍도 원활치 않다. The Lancet Planetary Health에 따르면 파리는 유럽에서 폭염으로 인한 사망률이 가장 높은 도시이며, 매년 약 400명의 사망자가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외보다 5~10도 더 덥다” 에너지 등급 G ‘찜통 집’에서 살아가는 청년
더욱이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프랑스 기상청(Meteo?France)의 데이터에 따르면, 파리의 평균 기온은 산업화 이전보다 이미 2.3도 상승했으며, 중간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 시나리오하에서는 세기 말까지 약 3.8도 더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2018년부터 파리 북동부 33㎡ 아파트 지붕 아래에 거주 중인 인스타그램 활동가 샤를 멀랭(Charles Merlin)은 “6층 계단을 올라갈수록 열기가 올라오고, 실내 온도가 45도까지 치솟는다”고 말한다. 그의 집은 에너지 성능 진단에서 최저 등급인 G를 받은 ‘열 손실 심각형’이며, 창문도 한쪽 방향만 있어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실내는 실외보다 5~10도 더 덥다.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땀에 흠뻑 젖은 채 깼다.”
녹지 여부 따라 최대 7도 차이...‘열섬 현상’에 숨 막히는 지붕 아래
그뿐 아니다. 그는 “해 질 무렵에도 벽은 라디에이터처럼 뜨겁다”고 토로한다. 이는 단순 체감이 아니다. 콘크리트나 아연 등 도시 자재들은 낮 동안 축열한 열을 밤에도 천천히 방출해, 도시 전역에 ‘열섬 현상’을 유발한다. 파리의 경우 녹지 비율에 따라 지역 간 최고 6~7도의 온도 차이가 생긴다. 특히 위층 거주자는 지붕 아래 열이 갇혀, 해가 진 뒤에도 열기가 지속된다. 일부는 냉방이 되는 공공 도서관에 피신하지만, 문이 닫히는 날짜가 제한적이라 현실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다.
많은 지역 주민이 Reporterre의 제보 요청에 응해 “탈출구 없는 감옥 같다”고 입을 모았다. 작고 통풍 안 되는 과열 공간에 고립되어 있지만, 다른 곳으로 이사할 형편이 안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붕 아래의 연대...서로 도우며 버틴다
21세 언론학도 셀리아는 파리 16구 7층 꼭대기에 위치한 10㎡ 공간에서 생활 중이다. 보증인 문제와 학생 신분의 불안정 탓에 이 방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작년에는 리모주로 도망갔지만, 올해는 인턴십 때문에 못 나간다. 어제는 32도라서 결국 친구 집에서 잤다.” 그녀는 “파리 다락방 생활은 끌 수 없는 사우나 같다”고 고백했다.
위층 이웃들은 무더위 속에서도 장보기나 나이 든 주민을 돌보며 서로 도우나, 폭염이 지속되면 체력적으로 한계에 다다른다. 아래층 사람들은 에어컨 있는 쾌적한 공간에서 생활하는 반면, 위층은 말 그대로 다른 현실에 산다는 느낌이다. 그녀는 “같은 건물에서 살아도 완전히 다른 삶을 산다”고 말하며, 곧 이사를 고려하고 있다.
참고로, 그녀가 거주한 16구에서 녹지 확대를 반대하는 주민투표가 통과된 점은 개인적 충격이었다고 전했다.
“폭염엔 공원에서 밤 샌다”...거리로 내몰리는 사람들
의료 인턴 스테파니는 열악한 복층 구조 때문에 침대 위에서 숨 쉬기가 불가능해 거실 바닥에서 생활한다. 그녀와 동거인은 젖은 수건을 덮고 욕조에서 시간을 보내며 밤을 견딘다. “지치고 예민해졌고, 부부 관계도 크게 악화됐다.” 신체 접촉조차 무리한 상태라고 밝혔다.
사회복지사 에스텔은 최근 오퇴유 근처 단열 없는 다락방에서 지냈다. “도저히 숨 쉴 수 없어, 폭염 기간 중 특별히 개방된 생트페린 공원에서 밤을 보냈다. 풀밭에 누웠지만 제대로 잠들지는 못했다.”
파리 5구 다락방에서 생활했던 클라라는 “벽·천장·바닥에서 열이 뿜어졌고, 선풍기 두 대에도 더위가 사라지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결국 조리기구 사용을 중단하고, 두 선풍기 사이에 누워 조금이라도 더위를 덜 느끼려 애썼다. “조금이라도 땀을 덜 흘리고자 한 몸부림이었다.
대부분 자력으로 '생존 조치'… 주거 대응은 ‘임시방편’
거의 모든 주민이 임시방편에 의존한다. 선풍기 여러 대, 젖은 수건, 어두운 커튼, 냉수 스프레이, 찬 식사, 공공기관 냉방 공간 활용 등이다. 샤를은 창문 유리에 Meudon 백색 칠을 시도하려고 한다. 햇빛을 반사하기 위해서다. 하루 종일 커튼을 치고, 때때로 창문을 살짝 열어 통풍을 유도한다. 하지만 외부 블라인드 설치나 창문 구조 변경은 대부분 임대주의 반대로 허용되지 않는다.
유산보호가 기후적응 막는다...외벽 단열도, 흰색 도장도 '불허'
지붕 색을 흰색으로 칠하거나 외벽 단열을 추가하는 등 ‘적응 조치’는 대부분 파리 건축문화재 보호 당국(Architectes des Batiments de France)이 제한한다. 이 규제는 파리가 ‘살기 위한 도시’가 아닌 ‘박물관 도시’로 남도록 만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불편 아닌 공중보건 문제” 여름철 쾌적성, 주거 기준이 바뀐다
샤를은 이번 사안을 단순한 불편이 아닌 “공중보건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제도적 개혁을 요구하며, “여름철 실내 쾌적성 기준이 주거 선택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프랑스 일부 초당적 의원들이 준비 중인 법안은 △폭염 기간 전기 공급 차단 금지 △여름철 주거 쾌적성 정보 표시 의무화 △보호구역 내라도 태양 차단 설비 및 외부 블라인드 설치 규제 완화 등을 담고 있다.
요약하자면, 파리의 맨 위층 거주자는 폭염 기간 동안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다. 지붕 아래의 구조적 문제와 규제 장벽은 이들의 주거 환경을 개선할 기회를 차단하고 있다. 기후위기는 이미 삶의 방식 자체를 바꾸고 있으며, 제도적·도시적 대응 없이 파리의 지붕 아래 삶은 계속해서 위협받을 수밖에 없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분투하는
뉴스펭귄에 후원으로 힘을 실어주세요.
- "탄소세, 프랑스인들의 보편적 기본소득 될 것"
- 기후변화 이전, 1945년 8월 15일 날씨 어땠을까?
- 세느강 물로 800개 건물 냉방...도시 식히는 친환경 비결
- '뜨개질'로 만든 지붕? 스페인이 찾은 기발한 기후 해법
- 서울 다이소, 파리 도서관...시민 몰리는 도심 속 작은 피서지
- 여름에 왜 낙엽? 더운 날씨에 ‘조기 가을’ 만난 프랑스 나무들
- "환경 문제? 몰라 나 지금 바빠" 기후위기 외면하는 억만장자들
- "포도밭 근처 사는 주민은 농약 노출 위험 더 높아"
- "유럽, 전 세계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지구가열화 진행 중“
- 기후위기가 만든 '기상 폭탄'...프랑스 폭풍 벤자민
- 5가지 핵심 포인트로 이해하는 COP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