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수연 기자] "흰배중부리도요, 5일 전 멸종 선언됨"
친구에게 흰배중부리도요 멸종 소식을 듣던 밤, 누르기 힘든 먹먹함에 잠을 잊었다. 그런 밤엔 나처럼 잠들지 못하고 있을 친구와 동료 얼굴이 떠오른다. 약간의 안도감이 든다. 한 종의 영원한 사라짐을 함께 슬퍼할 줄 아는 이들이 곁에 있어 얼마나 다행인가 하고 말이다.
기자로서 마땅히 알아야 할 소식을 5일 뒤에 전해 듣고는 시시한 자존심보다는 무거운 빚쟁이가 된 기분이었다. 무언가 남기고 축적하기 좋아하는 인간과 달리 조용히 사라져버린 이 도요의 멸종 소식을 늦게 알아챈 시간만큼 괜스레 더 미안한 마음이었다. 부랴부랴 찾아보니 하루 전 뉴스펭귄 동료 기자가 국내 최초로 보도한 뒤였다. 빚을 조금 덜어낸 빚쟁이였다.
사실 요즘 '멸종위기'가 내 삶과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에 머리가 복잡했다. 기사라는 게, 그것도 인터넷 기사는 단 7초 만에 읽혔다 잊히는 거라지만, 내가 쓰는 글이 일상과 너무 멀어지면 기만과 착각이 생기고 결국 글도 삶도 모두 가벼워질 수 있어서다. 그런 내게 흰배중부리도요의 멸종 소식은 찝찝한 고민이 명확한 깨달음으로 이어진 사건이었다.
한 존재를 멸종에 몰아넣은 무관심이 우리 사는 세상에도 똑같이 작동하고 있다는 깨달음이었다. 옆집 이웃과 겨우 인사만 하는데, 지하철역에 사람이 쓰러져 있어도 다들 외면하는데 지구 반대편 멸종위기종 이야기는 당연히 멀 수밖에. 결국 멸종위기가 내 이야기가 되려면 돌고 돌아 가까이 있는 존재에게부터 무심해지지 말아야 한다고 흰배중부리도요의 멸종이 일깨워준 셈이다.
귀찮아도 동료 인간들의 안부를 묻고, 샘이 나도록 좋은 일엔 함께 기뻐하고, 헤아릴 수 없는 아픔엔 묵묵히 곁을 내주는 매우 구체적인 관계망이 필요하다고 정리했다. 단절된 세상에서도 서로를 살피며 촘촘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것만이, 또 다른 흰배중부리도요를 마주하지 않는 길이라고 결론지었다.
출근하자마자 대뜸 동료 기자에게 "너무 슬프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동료는 주어도 없는 이 불친절한 인사를 알아듣고는 "나도 주말 내내 울컥했다"고 답했다. 우린 점심을 먹으며 흰배중부리도요의 멸종이 각자에게 의미하는 바를 나눴다. 대낮에 술 한 모금 없이 이런 대화가 가능하다니. 잔뜩 울적하다가도 웃음이 났다. 그럼 우린 무얼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곁에 있는 존재부터 관심 갖고 살아갈 수밖에" 하며 자연스럽게 근황을 나눈다.
무관심을 배려로 포장하는 세상, 나 하나 돌보기 버거운 삶이지만 아주 조금만 품을 내어 옆에 있는 존재를 헤아리는 일. 거기서부터 우리의 멸종저항이 시작된다고 믿는다. 그렇게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서로를 더 겪고 싶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흰배중부리도요에 대한 최선의 애도다.
얼마 전 새만금공항 공청회 취재를 위해 군산에 다녀왔다. 습지가 사라져 멸종한 흰배중부리도요를 떠올리며, 습지를 메워 그 위에 공항 짓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새만금의 마지막 갯벌 수라갯벌에는 세계자연보전연맹 적색목록에서 '절멸' 직전인 '위급' 단계에 놓인 넓적부리도요와 검은머리촉새가 서식한다. 적어도 내가 기자로 지내는 동안 한 종이 멸종했다는 소식을 더는 전하고 싶지 않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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