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의 서재] 도구는 장인 탓을 할 수 있다

  • 손아영
  • 2023.02.01 16:21
(그래픽 손아영)/뉴스펭귄
(그래픽 손아영)/뉴스펭귄

 


지피지기 백전백승, 화학을 알아야 환경이 보인다


[뉴스펭귄 손아영] 여러분은 ‘화학’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나요? 희뿌연 연기가 가득한 실험실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를 비커에 붓고 있는 연구자의 모습이 떠오르진 않나요? 이처럼 화학은 보통 녹색, 혹은 친환경과 연관 지어 생각하기 어려운 학문입니다. 인공적이거나 해를 입히는 물질과 연결해 생각하니까요. 하지만 화학물질은 대게 물, 이산화탄소, 소금처럼 자연적으로 만들어집니다. 우리 몸의 기능을 조절하는 호르몬, 고추의 매운맛을 내는 캡사이신 등이 대표적인 예시이죠. 다만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화학물질이라도 인간에 의해 배출량이나 배출 속도가 달라지면 환경에 큰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일상 속 화학물질, 함께 살펴봅시다.

 


샴푸가 두피 속 기름을 제거하는 원리

뉴스펭귄 기자들은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멸종위기를 막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정기후원으로 뉴스펭귄 기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세요. 이 기사 후원하기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샴푸는 우리가 하루 중 가장 먼저 만나는 화학물질입니다. 샴푸 속에는 ‘계면활성제(SLES)’라는 화학물질이 있는데요.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진 물질이 만났을 때, 두 물질의 경계면을 이어주는 역할을 합니다. 물과 기름이 만났을 때 섞이지 않고, 기름이 물 위에 둥둥 떠다니는 걸 본 적이 있을 겁니다. 이처럼 섞이지 않는 물과 기름을 섞이게 해주는 것이 바로 계면활성제입니다. 쉽게 말해 우리 머리카락과 두피에 생기는 기름때를 물과 섞이게 만들어 제거해주는 것이죠. 하지만 계면활성제는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자연에서 만들어지는 천연계면활성제도 많습니다. 주로 코코넛이나 야자 등의 식물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시중에 판매 중인 천염샴푸가 바로 이 천연계면활성제를 활용한 것입니다. 문제는 ‘합성계면활성제’입니다. 합성계면활성제란 석유를 정제하고 남은 찌꺼기를 원료로 만든 계면활성제로, 샴푸와 빨래 세제 속에도 들어있습니다. 값이 싸고 세정력이 강해 오늘날에도 많이 사용되고 있죠.

 


폐암 일으키는 라돈을 바른 침대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사진 unsplash)/뉴스펭귄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돌아와 편히 몸을 뉘는 침대. 우리가 잠을 자는 침대만큼은 화학물질 걱정 없는 안전한 공간일까요? ‘라돈’이 있는 이상은 불가능합니다. 자연 방사선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라돈은 암석이나 토양 중에 존재하는 우라늄이 핵분열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는데요. 기체인 라돈은 호흡하는 과정에서 체내로 흡수됩니다. 폐로 들어온 라돈은 납으로 최종분해되는 과정에서 방사선과 에너지를 방출하는데, 기관지와 폐 세포의 유전자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폐암을 유발할 수 있죠. 2018년 한국의 ‘라돈 침대 사태’가 그 예시입니다. 당시 몸에 좋다는 이유로 음이온 침대가 크게 유행했는데요. 침대 매트리스 속 커버 안쪽에 ‘모나자이트’라는 희귀 광물을 곱게 간 분말을 발라 코팅한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 광물 안에는 방사성 물질인 우라늄과 토륨이 1:10 비율로 들어있었고, 이 우라늄과 토륨이 핵분열을 일으키며 라돈을 내보낸 것이죠. 결국 해당 침대 회사에서는 이 매트리스를 모두 회수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화학은 누가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관건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앞선 사례들을 통해 알 수 있듯 화학은 무조건적으로 유해한 것이 아닌, 유해한 것의 원인을 알아낼 수 있는 학문입니다. 실제 지속 가능한 성장을 꿈꾸는 과학의 핵심에는 ‘녹색화학’이 있습니다. 1990년대 초 미국의 화학자 폴 아나스타스는 녹색화학을 ‘화학 제품을 설계, 생산, 활용하는 과정에서 해로운 물질의 사용과 생성을 최소화하려는 움직임’으로 정의하기도 했죠. 녹색화학자들은 화학을 환경오염의 원인이 아닌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도구로 생각합니다. 녹색화학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설계’입니다. 녹색화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의도가 이 설계에 반영되기 때문이죠. 녹색화학의 주요 설계 원칙으로는 1) 최대한 폐기물이 만들어지지 않도록 화학반응을 설계한다 2) 독성이 감소하도록 화학반응을 설계한다 3) 에너지 효율을 높일 수 있도록 설계한다 4) 재생 가능한 원료를 사용한다 등이 있습니다. 실제로 2001년과 2005년의 노벨 화학상은 녹색화학 발전에 공헌한 화학자들에게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도구는 장인 탓을 할 수 있다


(사진 unsplash)/뉴스펭귄
(사진 unsplash)/뉴스펭귄

결국 ‘화학’이란 학문은 잘못이 없습니다. 싼값에 편리함을 취하기 위해 화학을 도구로 사용한 인간의 몫이죠. 환경을 대가로 유해한 화학물질을 지불했으니까요. 하지만 화학을 통해 환경을 파괴하는 원리를 알아냈다면, 이제는 그 원리를 되짚어보며 다시 환경을 살릴 방법을 찾아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도구는 장인 탓을 할 수 있지만, 장인은 도구 탓을 할 수 없으니까요.

 

 

(그래픽 손아영)/뉴스펭귄
(그래픽 손아영)/뉴스펭귄

 

뉴스펭귄은 기후위험에 맞서 정의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초점을 맞춘 국내 유일의 기후뉴스입니다. 젊고 패기 넘치는 기후저널리스트들이 기후위기, 지구가열화, 멸종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으며, 그 공로로 다수의 언론상을 수상했습니다.

뉴스펭귄은 억만장자 소유주가 없습니다. 상업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일체의 간섭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금전적 이익이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리의 뉴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뉴스펭귄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후원을 밑거름으로, 게으르고 미적대는 정치권에 압력을 가하고 기업체들이 기후노력에 투자를 확대하도록 자극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기후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데 크게 쓰입니다.

뉴스펭귄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신청에는 1분도 걸리지 않으며 기후솔루션 독립언론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만듭니다.

감사합니다.

후원하러 가기
저작권자 © 뉴스펭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