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터뷰⑱] "흰색의 함정이죠" 삼정펄프 평택공장 사령탑(1)

  • 남주원 기자
  • 2024.03.04 14:20
삼정펄프 평택공장 전신배 공장장. /뉴스펭귄
삼정펄프 평택공장 전신배 공장장. /뉴스펭귄

[뉴스펭귄 남주원 기자] "모든 분야에 만물박사가 되지 않으면 언제, 어떻게 기업이 범법을 할지 몰라요. 환경과 안전을 비롯해 전문분야 외에도 노무·소방·법무 등 어느 한 분야도 간과할 수 없죠. 다양한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고민스러운 일입니다. 공장 운영은 여러 분야에서 노출되는 위험요소가 많아요. 세심하게 관리하지 못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범법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에 항상 긴장하고 있습니다."

열여덟번째 지구인터뷰 주인공은 국내 화장지 제조업체 '삼정펄프' 평택공장의 사령탑을 맡고 있는 전신배(55) 공장장이다. 삼정펄프는 평택공장을 중심으로 천안과 함안에 공장을 두고 있다. 서울사무소는 종로구 혜화동에 있다.

지난해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삼정펄프는 볏짚으로 시작해 우유팩, 종이컵, 사무용지 등 종이류를 재활용한 화장지를 꾸준히 생산하고 있다. 대부분 천연펄프 화장지를 가공하는 국내 시장 속에서 이처럼 자원선순환을 실천하는 일이 녹록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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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삼덕제지'였던 시절부터 환경을 중요시하고 지역사회과 상생하고자 했던 창립자 故전재준 선대회장의 정신을 이어 지속가능한 경영에 진심이다. 지난해만 하더라도 삼정펄프 임직원은 '우리동네 쓰담쓰담 캠페인'을 자체적으로 운영하며 혜화동 사무소 인근 쓰레기 약 356L를 수거했고, '2023 대한민국 ESG 착한경영대상'에서 환경 부문 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전신배 공장장은 1995년 쌍용그룹에 공채로 들어가 쌍용제지를 거쳐 P&G, 쌍용C&B, 한국알스트롬, MSS 등 주로 외국계 자본사에서 근무하다 2021년 4월 삼정펄프에 입사했다. 삼정펄프를 '마지막 직장'으로 여기며, 일평생 체득한 좋은 시스템과 노하우를 이곳에 적용하겠다는 집념으로 하루하루 바쁘게 지내고 있다.

인터뷰를 진행하고 공장을 직접 견학하면서 '이 사람, 이 기업 찐이다'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재활용 화장지에 대한 인식 개선과 종이류 재활용 활성화에 앞장서겠다는 의지가 불꽃처럼 빛났다. <뉴스펭귄>은 이번 지구인터뷰편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평택공장 현장탐방기를 통해 엿본 삼정펄프의 환경철학과 '재활용 종이팩 휴지 공정 A to Z'를 소개한다.

다음은 전신배 공장장과 나눈 일문일답.

삼정펄프 평택공장 전신배 공장장. /뉴스펭귄
삼정펄프 평택공장 전신배 공장장. /뉴스펭귄

Q. 지난해 창립 50주년 기념으로 '리빙 에코포레', '리빙 쏙 핸드타월'을 출시했다. 이 제품들은 나무를 베지 않고 골판지를 원료로 사용했는데. 시장 반응은 어떠한가.

A. "아직까지 시장이 크지는 않다. 골판지는 채산성(수입과 지출이 맞아서 이익이 있는 성질)이 좋고 환경친화적인 재료가 될 수 있다. 더군다나 요즘은 온라인 쇼핑이 늘면서 골판지 사용이 많아졌다. 이 골판지가 결국은 폐지로 많이 넘어올 수밖에 없다. 이 점을 노렸다.

하얀색에 대한 함정이 있다. 흰색의 함정. 우리나라는 여전히 하얀 것만 엄청나게 좋아한다. 유색에 대한 거부감이 아직까지도 많다. 그런데 이렇게 하얗게 되려면 속된 표현으로 표백제를 아주 '범벅'을 해야 한다. 흰색 펄프는 나무에서 추출된 섬유를 과산화수소, 이산화염소, 오존 등 유해한 물질로 여러 단계를 거쳐 표백한다. 

무표백 제품은 이러한 과정이 생략되기 때문에 흰색 제품에 비해 지속가능성이 더 높다. 삼정펄프 제품 중 '그루'라는 무표백 화장지가 있다. 표백약품 사용을 최소화해 나무 본연의 색을 띠고 인체에 무해한 화장지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흰색이 아니면 상당히 저급으로 생각한다. 요즘 스타벅스 같은 곳에서 유색 냅킨을 많이 쓰면서 그런 인식들이 조금씩 바뀌어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소비자들은 하얀색을 좋아한다. '그루' 같은 무표백 제품의 판매를 확대하고 있고 조만간 관련 신제품을 출시할 예정이다."

Q. 삼정펄프 평택공장 공장장으로 일하며 겪는 희비는.

A. "수십년간 해왔던 방식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에 대해 저항도 있고 많은 교육도 필요하지만, 각 분야별로 최대한 협조해주고 있다. 관리자들의 마인드가 변하면서 새로운 관리체계로 어느 정도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여전히 인적자원이 부족해 직접 해야 하는 힘든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서 희망을 느낀다. 부족하지만 경연진에서 믿고 맡겨주셔서 감사하다."

삼정펄프 평택공장 전신배 공장장과 뉴스펭귄 남주원 기자. /뉴스펭귄
삼정펄프 평택공장 전신배 공장장과 뉴스펭귄 남주원 기자. /뉴스펭귄

Q. 물티슈도 환경문제가 많다.

A. "참 속 터지는 일이다. 지난해 하반기 예정이었던 '식품접객업소의 부직포 물티슈 사용금지'에 대한 법령이 3년 유예되면서 원점으로 돌아갔다. 원래는 식품접객업소에 일반 부직포 물티슈를 안 쓰게끔 입법예고가 됐고, 지난해 하반기에는 실시하기로 돼있었는데 유예가 되면서 뒤집혀버린 거다. 부직포 물티슈는 미세플라스틱 등 환경문제가 심각하다.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쓰는데, 한 번 닦고 버리면 이게 조선왕조 500년이다. 500년이 흘러야 분해된다. 이를 대비해 삼정펄프는 이미 환경을 고려한 종이 물티슈 원단을 개발했다. 어떻게 보면 올해 내가 집중해야 할 일이 종이 물티슈의 판매촉진과 대중화라고 생각한다.

두께로 보면 종이 물티슈는 일반 부직포에 비해 섬유가 4배 정도 굵다. 아무래도 성능적인 부분에서 일반 화학 부직포를 따라가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쓰기에는 큰 문제가 없다. 그런 측면에서 앞으로는 종이 물티슈 시장으로 가야 한다. 세계 유통업체 매출 2위인 영국 테스코는 2019년 자사제품의 플라스틱 사용을 중지하고 2022년 3월에는 플라스틱이 포함된 유아용 물티슈의 판매중단을 선언했다. 이런 일들이 우리나라에도 조속히 이루어지길 바란다."

Q. 일상에서는 지속가능성을 위해 어떤 실천을 하고 있나.

A. "우리가 생활하고 있거나 접하고 있는 세계를 하나의 시스템으로 볼 때 인풋과 아웃풋의 적정한 균형이 필요하다. 그런데 인풋인 자원과 아웃풋인 제품, 부산물과의 관계에서 균형이 깨지면서 해소되지 못하는 문제들이 발생한다. 예컨대 환경이 오염되고 폐기물이 쌓여가는 상황이 그렇다. 지구가 회복되고 폐기물이 순화되는 사이클을 넘어서서 균형이 깨지고 있다. 

우선 직장에서는 하는 업무 자체가 지속가능성을 실천하는 일이다. 삼정펄프는 재생펄프 연간사용량이 11만톤으로 전체 사용량의 86%를 차지해 자원순환에 앞장서고 있다. 또 우유팩 등에서 제거된 폐비닐을 에너지로 전환해 스팀을 만들고, 이때 만들어진 고압 스팀으로 전기를 만드는 에너지 절감사업이 현재 시공 중에 있다. 

가정에서는 기본적인 것들을 실천하고 있다. 우유팩을 비롯한 재활용 분리수거, 배달음식 줄이기, 에너지 절약 그리고 로컬푸드 이용 같은 실천들이다. 재활용품을 분리처리하면서도 걱정이 많이 된다. 배달음식을 한번 시키면 발생하는 플라스틱 용기가 장난 아니다. 이런 걱정이라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야 한다."

삼정펄프 평택공장 전신배 공장장. /뉴스펭귄
삼정펄프 평택공장 전신배 공장장. /뉴스펭귄

Q. 정부나 기업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A. "수입폐지가 폐기물이라는 발상은 바뀌어야 한다. 자원으로 인식돼야 한다. 폐지가 순환자원으로 인정되는 과정에 있지만, 여전히 수입폐지를 들여오는 과정이 복잡해 담당자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또 형광증백제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화장지 제조업체를 죄인 취급하는 경향이 있는데, 정작 우리는 형광증백제를 사용하지 않는다. 차라리 백상지(복사용지)에 형광증백제 사용을 금지시켜야 하지 않을까. 일본은 고지에 형광증백제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 안다."

Q. '무표백'을 거듭 강조했는데.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A. "白을 포기하자! 소위 3白이 건강에 주범이라고들 한다. 나무에서 얻은 섬유를 펄프로 만드는 과정에서 표백제를 과다사용해 흰 종이를 얻고 있는데, 표백제는 대부분 유독물이다. 좀 누런 종이나 미표백 또는 덜 표백된 종이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원래 화장지를 만들면 잔존된 리그닌(나무 목질부의 주요 구성물질 중 하나) 성분 때문에 황변이 생긴다. 그런데 시민들은 누렇게 변색된 화장지는 품질에 대단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해 불량 처리되는 상황이다. 황변이 생긴다는 것은 화학약품을 덜 사용한 것이기 때문에 도리어 건강한 휴지인데 지금은 찬밥 신세다. 이러한 인식이 바뀌면 더 많은 폐지를 재활용할 수 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는.

A. "삼정펄프 내부적으로는 국내 재생용지 사용량을 증대할 계획이다. 사무용지는 70% 이상, 우유팩은 5% 이상 적용하는 것이 목표다. 욕심 같아서는 우유팩을 10%까지도 넣고 싶다. 하지만 문제는 일정사용량 이상 썼다가 자칫하면 부패된 우유로 인해 냄새가 좀 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종이팩 분리와 세척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서 양을 확대할 수 있다. 또 회사에 안전, 환경, 품질경영 시스템을 완벽하게 구현해 삼정펄프가 아주 좋은 모델이 되도록 만들고 싶다."

 

이어지는 삼정펄프 현장탐방기에서는 전신배 공장장과 함께한 종이팩 원자재 보관소부터 해리공정, 초지기, 화장지 가공, 물류창고까지 전체적인 공정을 살펴본다. 이와 더불어 공장장이 직접 답한 '삼정펄프 종이팩 재활용 Q&A'를 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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