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인’터뷰⑰] '하나뿐인 지구' '인류세' 연출… 최평순 환경PD(1)

  • 남주원 기자
  • 2023.12.15 13:30
최평순 환경PD. (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최평순 환경PD. (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 남주원 기자] "사실 행복한 순간보다 힘든 순간이 더 많거든요. 촬영 목적을 달성했을 때, 역설적이게도 가장 힘들어요. 환경파괴의 현장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찾아갔는데 너무 쉽게 찍힐 때요. 제 눈에도 쉽게 목격된다니 마음이 아프죠."

그 어느 때보다 기쁠 것 같은 순간 오히려 죄책감을 느끼는 이 사람은 바로 최평순(39) 환경·생태 전문 PD다. 〈하나뿐인 지구〉, 〈이것이 야생이다〉 시리즈, 다큐프라임 〈긴팔인간〉, 〈인류세〉, 〈여섯 번째 대멸종〉을 연출한 그는 어느덧 EBS에 13년차 PD로 몸담고 있다.

겨울답지 않게 비바람이 몰아친 12월의 어느 날, 최PD의 신간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펴낸 출판사 '해나무' 사내 북카페에서 그를 만났다. 서울 합정동에서 마주한 그는 인터뷰 시종일관 진지하고도 진솔했다. 직업이 PD인 만큼 늘 자신이 다른 사람을 인터뷰하다가 반대로 인터뷰이가 되는 시간이었다. 

뉴스펭귄 기자들은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멸종위기를 막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정기후원으로 뉴스펭귄 기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세요. 이 기사 후원하기

불타는 아마존을 보면서 왜 우리는 이토록 무관심할까. 최PD는 인류가 직면한 위기 앞에 현저히 다른 온도차를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청자들에게 좋은 영상을 보여주는 일이 가장 좋은 설득 전략이라고 믿으며 계속해서 환경 다큐멘터리를 찍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은 최PD 삶의 모토다.

<뉴펭의 지구인’터뷰> 올해 마지막 주인공으로 최평순 환경PD의 솔직담백하고 거침없는 이야기를 2편에 걸쳐 싣는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인류세', '여섯 번째 대멸종', '긴팔인간'. (사진 최평순PD 제공)/뉴스펭귄

Q. 방송국 입사 이후 굵직한 환경 다큐멘터리를 도맡았다.

A. "방송국 PD를 준비할 때 환경PD가 되고 싶다고 결심했다. 당시 TV 정규 환경프로그램은 EBS <하나뿐인 지구>, KBS <환경스페셜> 이렇게 2개뿐이어서 두 곳 중 한 군데에 들어가 다큐멘터리를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운 좋게 2011년 EBS에 입사해 처음부터 <하나뿐인 지구> 조연출 하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다가 조연출을 맡게 됐다. 그 프로그램으로 연출 데뷔도 하고 쭉 하다가, 이후 EBS <다큐프라임>을 맡으면서 13년째 일하고 있다."

최평순PD가 연출한 다큐프라임 <인류세>는 2020년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대상을 수상했고, <여섯 번째 대멸종>은 2022년 호주 과학영화제(SCINEMA)에서 소셜임팩트상을 받았다. '노래하는 아시아의 유인원' 기번(Gibbon)'의 생태를 다룬 <긴팔인간>은 IWFF 국제야생영화제, VAASA 국제환경영화제 등에 초청됐다.

최평순 환경PD. (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최평순 환경PD. (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Q. 환경전문 PD가 되기로 결심한 특별한 계기가 있나.

A. "2009년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면서 뉴스, 시사 공부를 많이 했는데 당시 '코펜하겐 기후변화당사국총회'가 열려서 관련 뉴스를 굉장히 열심히 봤다. 좀 잘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 무척 실망스럽더라. 취업준비생이라 예민하고 날이 서 있기도 했다. 리먼 브라더스 사태 같은 미국발 금융위기 때문에 방송국 채용도 잘 안 할 때였다. 미국인들의 부동산에 대한 욕망이 왜 나의 채용에 영향을 미치는지 조금 화가 나 있을 때다.

코펜하겐 기후변화당사국총회를 보면서도 잘 안되는 모습에 실망감이 크더라. 그때 많은 것이 제대로 결정되지 않으면 큰일 난다며 세계 정상들이 다 모였고 우리나라 대통령도 갔었다. 그런데 동시에 내 주변을 돌아보는 계기도 됐다. '뭐야. 저렇게 거대한 담론을 보면서 실망하는데, 정작 현실에서 나는 그저 취업준비생인 데다가 맨날 믹스커피나 음료수, 물 마실 때마다 일회용 종이컵을 쓰네.'"

스스로에게 한심함을 느낀 최PD는 코펜하겐에서 뭔가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취업을 준비하는 동안 자신의 일상이라도 바꾸자고 결심했다. 그렇게 텀블러를 들고 다니기 시작했건만 귀찮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쉽지 않았다.

그는 이렇게 귀찮은 걸 열심히 실천하는 사람들은 어떤 마음을 갖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환경운동가, 커피 애호가, 취미로 텀블러 모으는 사람, 일반인들을 인터뷰해 그 이야기를 담은 단편 다큐멘터리 <텀블러 라이프>를 서울환경영화제에 출품했다. 대학생이었던 2009년에 제작한 이 다큐멘터리는 이듬해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상영됐다.

전공이 신문방송학과 정치외교학이었던 최PD는 언론사 입사를 준비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환경 PD'가 돼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하지만 을지로 롯데시네마에서의 <텀블러 라이프> 상영 경험은 그의 마음에 환경전문 PD가 되고 싶다는 불씨를 지폈다.

최평순 환경PD. (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최평순 환경PD. (사진 남예진 기자)/뉴스펭귄

Q. 2010년 <텀블러 라이프>를 통해 관객들과 만났다.

A. "불 꺼진 영화관에서 내가 만든 다큐멘터리가 나오고, 끝난 후 관객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과정이 너무 좋았다. 이 주제에 관심이 있어 보러 와준 사람들과 '커피 마실 때 어떻게 하냐. 텀블러에 마시냐' 이런 일상적인 얘기를 하면서 내가 가진 생각을 남이랑 나눌 수 있다는 게 무척 재밌다는 경험을 했다. 그때 관객들과 소통을 하면서 '환경 콘텐츠의 효능감이 있구나' 깨달았다.

환경 다큐멘터리는 나랑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는 내 주변의 일상을 다루는 거잖나. 환경이라는 단어가 날 둘러싸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래서 다른 콘텐츠들과 다르게 시청자나 관객과 직접적인 접점이 있다. 환경을 주제로 하는 콘텐츠는 보고 나서 일상과 연결 지을 수 있는 지점이 있다. 

나 또한 코펜하겐 기후변화당사국총회를 왜 나의 일상과 연결했을까를 생각해 보면 그런 것 같다. 저 멀리 있는 이야기가 나랑 연결돼 있다는 느낌이 어느 순간 왔다. 그게 시청자나 관객에게도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계속 환경콘텐츠를 만들게 됐다."

이제 최PD는 가방 속에 항상 텀블러를 챙겨 다닌다. 그 외에 일상에서 지키고 있는 그만의 환경보호 실천방법을 묻자 "에어컨 없이 살기"라고 답했다. 그는 7년째 에어컨 없이 살고 있다. 에어컨을 틀지 않아 생긴 '웃픈' 에피소드도 있다. 

그가 빌라로 이사 가 혼자 살 때였다. 어느 날 한국전력공사 직원이 찾아왔다. 에어컨을 틀지 않아 전기료가 너무 안 나오니 무슨 일이 있는지 확인하러 온 거였다. "전기를 아꼈으니까 전기료가 안 나오는 거지, 왜 이런 걸로 초인종을 누르냐"며 조금 목소리를 높였다고. 냉장고 역시 굉장히 작은 1인용 제품을 썼다. 하지만 기후위기 앞에 그의 실천도 지속되기는 쉽지 않다.

 

Q. 에어컨 없이 사는 일상이 힘들진 않나.

A. "사실 7년 전에는 그렇게 힘들다는 생각까지 안 들었는데 이제 해마다 다르다. 어떤 때는 역대 최악의 폭염이, 어떤 때는 역대 최장의 장마가 있다. 장마는 꿉꿉해서 습기가 문제지만 덥지는 않으니까 지낼 만하다. 문제는 폭염이다. 폭염이 너무 심할 때는 힘들다. 어찌저찌 그 해를 버텨냈지만, 지구가열화로 점점 폭염이 심해지면 에어컨 없이 살기도 언젠가는 못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너무 더울 때는 얼음 베개를 베고 잔다. 냉동실 빈칸에 얼려놨다가 꺼내 쓴다."

히말라야에 있는 빙하 호수. (사진 최평순PD 제공)/뉴스펭귄
히말라야에 있는 빙하 호수. (사진 최평순PD 제공)/뉴스펭귄

Q. 환경 다큐멘터리를 찍으며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A. "히말라야 '빙하홍수'가 기억에 남는다. 2014년 방송에서 다루려고 히말라야를 다녀온 뒤 잊고 지냈는데 7년이 지나 현실이 되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2021년 2월 인도 북부 히말라야 고산지대에서 빙하홍수가 발생해 사상자 200여명이 나왔다는 뉴스를 집 안방에서 봤다. 7년 전 경고했던 기후위기 사태가 정말 현실이 돼서 놀랐다.

그런데 기후문제가 그렇잖나. 즉각적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많은 오해를 사기도 하고, 너무 위험을 과장하는 거 아니냐는 얘기도 듣는다. 그것을 확인하려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사실 빙하홍수는 지금도 발생하고 있다. 올해도 미국 알래스카와 인도 히말라야에서 빙하가 녹아 홍수피해를 입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바야흐로 2014년 최PD가 <하나뿐인 지구>에서 기후위기 특집 3부작을 기획할 때였다. 그는 어떻게 해야 시청자들에게 기후위기를 좀 더 흥미롭게 알릴까 고민하던 중 잘 알려진 북극과 남극의 이야기 대신 '제3의 극'이라고 불리는 히말라야나 알프스 등 고산지대의 빙하가 녹는 현실에 포커스를 맞췄다. 산악인 엄홍길이 당시 어느 매체에서 인터뷰한 내용을 보고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다.

히말라야 빙하 홍수. (사진 최평순PD 제공)/뉴스펭귄
히말라야 빙하 홍수. (사진 최평순PD 제공)/뉴스펭귄
히말라야 빙하 홍수. (사진 최평순PD 제공)/뉴스펭귄

빙하호 붕괴 홍수(GLOF)는 빙하호수를 포함한 댐의 붕괴로 인해 발생하는 폭발적인 홍수를 말한다. 최PD는 엄홍길 대장을 직접 찾아가 물었다. "빙하홍수... 이거 진짜예요?" 엄 대장으로부터 "진짜"라는 대답을 들은 그는 곧장 네팔 에베레스트로 향했다. 해발 5000m에 있는 호수가 예전에 비해 너무 커져버린 상태였다. 엄청난 규모였다. 최PD는 빙하홍수가 터졌을 때 그곳에 사는 주민들이 얼마나 무서웠고 많은 피해가 발생했을지 눈에 보이는 듯했다고 전했다.

Q. 네팔 에베레스트 산기슭에 살고 있는 셀파족이 걱정됐을 것 같다.

A. "우리를 데려간 현지 가이드도 셀파족이었다. 예전에 왔을 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호수가 너무 커졌다며 놀라더라. 호수의 풀 샷을 카메라에 담으려면 건너편 산으로 올라가야 했다. 우리 카메라감독이 하루 걸려서 거기 올라가야 담길 정도로 큰 규모였다. 터지면 큰일 나겠다고 걱정하고 있는데, 정작 그 밑에 살아가는 셀파족은 "만약 빙하 홍수가 터진다면 그것은 신의 뜻"이라며 굉장히 순수한 거다. 내가 느끼는 위기감과 무척 대비됐다."

 

Q. 히말라야 중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곳이 많을 텐데.

A. "한 군데도 문제인데 히말라야가 엄청 크다. 몇 개국에 걸쳐 있다. 그래도 에베레스트산 베이스캠프 아래쪽은 등산객도 많고 워낙 주목받는 곳이라 그런지 큰돈을 들여서 조치를 취했다. 하지만 인도나 파키스탄, 부탄처럼 히말라야 중에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다른 곳에서는 빙하홍수가 터진다.

최근 해수면 상승을 취재하러 이탈리아 베네치아에 갔다. 거기는 '모세의 기적 프로젝트'라고 해서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 해수면 상승을 막는 기술을 도입 중이더라. 선진국은 그런 식으로 대응할 수 있지만 방글라데시나 투발루 등 해수면 상승의 영향을 받는 많은 국가들이 모두 몇 조원씩 쓸 수는 없다. 기후위기는 전 지구적인 현상인데 모두가 천문학적인 돈을 써서 대응할 수 없는 문제다. 제일 취약한 국가의 사람들에게 기후위기 피해가 먼저 벌어지니 마음이 아프다."

 

- 2편에서 계속 -

뉴스펭귄은 기후위험에 맞서 정의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초점을 맞춘 국내 유일의 기후뉴스입니다. 젊고 패기 넘치는 기후저널리스트들이 기후위기, 지구가열화, 멸종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으며, 그 공로로 다수의 언론상을 수상했습니다.

뉴스펭귄은 억만장자 소유주가 없습니다. 상업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일체의 간섭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금전적 이익이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리의 뉴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뉴스펭귄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후원을 밑거름으로, 게으르고 미적대는 정치권에 압력을 가하고 기업체들이 기후노력에 투자를 확대하도록 자극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기후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데 크게 쓰입니다.

뉴스펭귄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신청에는 1분도 걸리지 않으며 기후솔루션 독립언론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만듭니다.

감사합니다.

후원하러 가기
저작권자 © 뉴스펭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