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벌처①] 대머리가 사랑스럽게 느껴져

  • 남주원 기자
  • 2024.03.19 12:20

얼마전 취재차 참석한 한국몽골국제포럼은 기자를 독수리에 '입덕'하게 만들었다. 자연의벗연구소가 창립 10주년을 맞아 개최한 멸종위기종 포럼은 서울 홍대에 있는 한 대강당을 가득 메꿀 만큼 뜨거운 인파 속에 진행됐다. 오직 독수리를 지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그날의 이야기를 '러브벌처' 시리즈물로 전한다. 러브벌처는 사랑(Love)과 독수리(Vulture)를 뜻하는 두 단어를 합친 것이다. 

■러브벌처 연재기사 발행계획
①대머리가 사랑스럽게 느껴져 
②독수리와 샤머니즘 그리고 기후위기
③몽골 조류학자 사랑게렐 이친허를러 인터뷰
④추루와 엠케이공칠의 궤적
⑤빨리 가려면 혼자, 멀리 가려면 함께

'독수리로드' 예고편을 공개한 임완호 감독. (사진 남주원 기자)/뉴스펭귄
'독수리로드' 예고편을 공개한 임완호 감독. (사진 남주원 기자)/뉴스펭귄

그날 우린 독수리를 위해 모였다 

[뉴스펭귄 남주원 기자] 최근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서 한국-몽골 멸종위기종 포럼 '독수리를 지키는 사람들’이 열렸다. 자연의벗연구소가 주최한 이 포럼에는 전국각지에서 독수리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연구가·활동가와 시민들이 모였다. 다소 비장해 보이는듯한 몽골 청년활동가들도 참석했다. 약 130명에 달하는 인원이 넓은 대강당 좌석을 가득 채운 가운데 임완호 감독의 다큐멘터리 ‘독수리로드(The Vulture Road)' 예고편과 함께 포럼이 시작됐다. 

"너무 멋져서 숨이 막힐 지경이에요." 5분가량 영상이 끝나자 뜨거운 박수갈채 속 사회를 맡은 황윤 감독이 탄성을 내뱉었다. 독수리로드는 임 감독이 지난해 11월 선보인 SBS 창사특집 '고래와 나'에 이어 최근 몽골과 한국을 오가며 제작 중인 독수리 다큐멘터리다. 두 남자가 독수리의 길을 따라 걸으며 마주하는 여정을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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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도높은 영상에 청중은 일제히 압도당했다. 그날 그자리에 왜 모였는지 다시한번 상기하는듯 했다. 한층 고조된 분위기와 함께 몽골 조류학자인 사랑게렐 이친허를러와 알탕게렐 척츠막나이의 발표가 울려퍼졌다. 한국 대표로는 화포천생태학습관 곽승국 관장, 노영대 감독, 독수리자연학교 김덕성 교장, 류기찬 사진작가 등의 발표가 이어졌다.

강원도 고성 독수리식당을 찾은 1~2년생 어린 독수리들. 독수리식당에서 제공하는 먹이를 전부 독수리가 먹는 것은 아니다. 상당량은 까마귀들에게 뺏기는 신세다. (사진 화포천생태학습관 곽승국 관장 제공)/뉴스펭귄
강원도 고성 독수리식당을 찾은 1~2년생 어린 독수리들. 독수리식당에서 제공하는 먹이를 전부 독수리가 먹는 것은 아니다. 상당량은 까마귀들에게 뺏기는 신세다. (사진 화포천생태학습관 곽승국 관장 제공)/뉴스펭귄

한국 독수리는 이글 아닌 벌처

독수리를 영어로 ‘이글(Eagle)’이라고만 아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한국에서 발견되는 독수리는 이글이 아니라 ‘벌처(Vulture)’다. 이들은 국내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이자 천연기념물이다.

대표적인 이글에는 흰머리수리, 즉 미국 국조가 있다. 하얀 얼굴털에 노란 부리, 카리스마 있는 눈빛을 자랑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독수리가 아니라 수리다. 독수리 이름의 '독(禿)'은 대머리라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글은 작은 새나 포유류를 직접 사냥한다.

반면 벌처는 살아있는 동물을 사냥하지 않고 이미 죽은 동물의 사체를 먹는다. ‘야생의 청소부’라고 불리는 이유다. 죽은 사체의 내장을 파먹기 위해 진화해 머릿털이 거의 없다. 몽골에 약 2만마리 서식하고 있는데, 그중 1500여마리가 매년 겨울 한국을 찾는다. 

몽골 하늘을 나는 독수리. (사진 몽골 조류보호센터-알탕게렐 척츠막나이 제공)/뉴스펭귄
몽골 하늘을 나는 독수리. (사진 몽골 조류보호센터-알탕게렐 척츠막나이 제공)/뉴스펭귄

독수리를 알려면 바람을 읽어라

"독수리를 연구하려면 '바람'을 잘 알아야 해요" 화포천생태학습관 곽승국 관장은 재차 강조했다. 곽 관장에 따르면 독수리는 몽골에서 '북서풍'을 타고 한국으로 온다. 빙글빙글 돌면서 활공해 올라가다가 바람의 기류를 타고 쭈욱 이동하는 것이다. 

독수리들은 몽골에서 한국까지 날개를 활짝 펼치고 약 1850km를 거의 직선으로 내려온다. 왕복 이동거리는 무려 6000km에 달한다. 이 때문에 바다는 건너지 않는다. 상승기류가 잘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까운 일본은 독수리가 없다는 관장의 말에  청중 곳곳에서 놀란 리액션이 터져나왔다.

한국에서 발견되는 독수리는 대부분 1~2년생 어린독수리들이다. 모든 독수리가 한국에 월동하러 오는 것은 아니다. 몽골 고향에서 내려오지 않고 평생 사는 개체도 있고, 북풍이 강하면 중국으로 가기도 한다.

몽골에서 촬영된 독수리. (사진 사라나 자연보호구역 보호재단-사랑게렐 이친허를러 제공)/뉴스펭귄
몽골에서 촬영된 독수리. (사진 사라나 자연보호구역 보호재단-사랑게렐 이친허를러 제공)/뉴스펭귄

알면 사랑하게 된다

"독수리에 대한 오해도 풀고 그만큼 사랑도 커져서, 영원히 독수리와 함께 살 수 있는 세상 되길 바라요" 그날 사회자 황윤 감독이 말한 것처럼 많은 이들은 독수리에 대해 오해하고 있다. 머리는 다 벗겨진 데다가 죽은 사체를 먹으니 쉽사리 애정을 품기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듯, 알면 사랑하게 된다. 

포럼에서 알게 된 사실은 그간 조명되지 않은 독수리의 이면이다. 한번 짝을 맺으면 평생 연을 이어가는 의리와 눈물이 핑 돌만큼 지극한 모성애. 새끼가 꽤 자라 독립할 때까지 거대한 둥지에서 소중한 알 하나를 맹렬하게 지켜낸다. 파트너와의 사랑도, 품기엔 너무 커져버린 새끼를 정성스레 보듬는 것도, 독수리는 오래 버티는 일에는 장사다.

알을 한번에 단 한개만 낳아 번식률이 낮다는 점도 독수리가 멸종위기에 처한 이유 중 하나다. 

몽골 조류학자들의 발표를 경청 중인 임완호 감독과 노영대 감독. 임 감독 왼쪽에는 2부 토론회에서 좌장을 맡은 동국대학교 오충현 교수, 노 감독 앞자리에는 독수리자연학교 김덕성 교장이 앉아있다. (사진 남주원 기자)/뉴스펭귄
몽골 조류학자들의 발표를 경청 중인 임완호 감독과 노영대 감독. 임 감독 왼쪽에는 2부 토론회에서 좌장을 맡은 동국대학교 오충현 교수, 노 감독 앞자리에는 독수리자연학교 김덕성 교장이 앉아있다. (사진 남주원 기자)/뉴스펭귄

"저는 독수리 잘 몰라요. 쫓아다닌지 이제 1년 정도 됐고, 조금씩 알고있어요. 그동안 사랑받지 못한 새죠. 몽골에서 상승기류를 타며 짝짓기 하는 광경을 봤는데 '저것들도 제법이다' 싶더라고요. 그건 사랑의 비행이었어요." 

임완호 감독은 독수리를 촬영하며 '삶의 방식'을 엿봤다고 말했다. 그가 지켜본 어미 독수리는 갓태어난 새끼에게 신선한 고기를 줬다고. 독수리가 태어났을 때부터 썩은 고기를 먹는 게 아니라, 성장하면서 점차 썩은 고기에 내성이 생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다. 

그날 한나절 가까이 독수리 이야기가 오갔음에도 시간이 부족했다. "하루종일 독수리 얘기를 했지만 밤새도 모자랄것 같다"는 황 감독의 마무리 멘트는 긴 시간 포럼장을 떠나지 않고 자리를 지킨 시민들의 열정을 방증했다.

포럼이 끝날 무렵, 독수리의 대머리가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왼쪽부터 순서대로 류기찬 사진작가, 화포천생태학습관 곽승국 관장, 독수리자연학교 김덕성 교장, 노영대 감독, 동국대학교 오충현 교수, 임완호 감독 그리고 몽골 조류학자 알탕게렐 척츠막나이과 통역을 맡은 지구당 이나리 대표, 사랑게렐 이친허를러가 앉아있다. (사진 남주원 기자)/뉴스펭귄
왼쪽부터 순서대로 류기찬 사진작가, 화포천생태학습관 곽승국 관장, 독수리자연학교 김덕성 교장, 노영대 감독, 동국대학교 오충현 교수, 임완호 감독 그리고 몽골 조류학자 알탕게렐 척츠막나이과 통역을 맡은 지구당 이나리 대표, 사랑게렐 이친허를러가 앉아있다. (사진 남주원 기자)/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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