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스페인의 한 작은 마을 골목 위로 알록달록한 지붕이 걸렸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천 조각과 헌 옷, 손바늘로 짠 뜨개질 패널이 이어져 만들어진 작품이다. 주민들이 손수 엮은 이 뜨개 지붕이 예쁘기만 한 게 아니라 여름을 버티는 힘이 된다. 그늘막 아래 체감 온도가 5~6도 낮아지는 덕분이다.
스페인은 올여름 폭염으로 1,100명이 넘는 초과 사망자가 발생했고, 산불로 수십만 헥타르의 숲이 불타는 피해를 겪었다. 기후재난이 일상이 된 그 곳 사람들은 집 앞 골목에서부터 살아남을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말라가 인근 알하우린 데 라 토레스(Alhaurín de la Torre)에서는 2019년부터 여름마다 뜨개질 프로젝트가 이어지고 있다. 주민들이 겨울과 봄에 짠 패널을 모아 여름이 되면 거리 위에 설치하는데, 현재는 길이 60미터, 면적 500㎡ 규모의 커다란 지붕이 됐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 그늘막 아래 체감 온도는 5~6도 낮아진다.
또 다른 마을 아라할(Arahal)에서도 지난해 주민 300여 명이 모여 같은 실험을 했다. 2,000개의 실타래로 만들어진 패널을 케이블타이로 연결해 그늘을 만들었다. 현지 언론은 이 캐노피가 직사광선을 가려 체감 온도를 낮추고, 폭염에 대응하는 실질적인 역할을 했다고 전했다.
유럽식 '기후 행동' 도구 된 뜨개질
유럽 곳곳에서는 뜨개질이 '기후 행동' 도구로 쓰인다. Knitting for Climate 활동가들은 붉은 실을 길게 엮어 '레드라인(Red Line)'이라는 메시지를 만들고, 화석연료 확장을 중단해야 한다는 요구를 시각적으로 드러냈다.
지난해 브뤼셀 유럽의회 앞 광장에 전시된 뜨개 작품은 1.5km에 달할 만큼 규모가 컸고, 9개국의 활동가들이 함께했다. 이 단체는 올해도 새로운 글로벌 캠페인을 이어가겠다고 밝히며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기후 데이터를 예술로 옮긴 협업 프로젝트도 있다. Tempestry Project 참여자들은 특정 지역의 일일 기온을 색으로 변환해 한 줄씩 뜨개 작업을 이어간다. 완성된 직사각형 패널은 해마다 기온 변화가 색의 흐름으로 기록되며, 여러 패널이 모이면 시간에 따른 온도 상승이 한눈에 드러난다.
이 작품들은 도서관, 박물관, 미술관에서 전시되며 기후 위기를 데이터가 아닌 감각으로 체험하게 한다. 미국 허드슨밸리 등에서는 주민 100명 이상이 참여해 1895년부터 올해까지의 기온 변화를 기록하는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해 분투하는
뉴스펭귄에 후원으로 힘을 실어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