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이 어느 때보다 뜨겁다. 전세계를 그린홀릭(Green Holic)에 빠뜨린 주인공은 ‘말차’. 젠지(Z세대)를 중심으로 시작된 말차 열풍은 패션·뷰티 등 전방위적으로 퍼져 ‘말차 코어’(Matcha Core) 트렌드까지 만들었다. ‘초록빛의 건강한 이미지’로 소비되는 말차 열풍 기저엔 건강과 웰빙에 대한 관심이 있다. 몇년 사이 기하급수적으로 수요가 늘어난 말차는 기록적 폭염 등 이상 기후로 인해 생산에 큰 차질이 빚어지고  품귀 현상까지 일어났다. 기후위기로 신음하는 지구에서 ‘녹색’이라는 키워드에 천착한 '웰빙'은 어떤 의미가 될 수 있을까?

(사진 유튜브, 클립아트코리아) /뉴스펭귄
(사진 유튜브, 클립아트코리아) /뉴스펭귄

어느 때보다 뜨거운 ‘그린’…웰빙·친환경은 ‘글쎄’

말차 피자, 말차 국수, 말차 빙수, 말차 아몬드볼까지 가지각색. 초록빛의 말차 이미지는 식음료 시장을 넘어 라이프 스타일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짙은 녹색’은 새로운 패션 키워드. 온라인 패션 플랫폼 ‘무신사’에 따르면 지난 7~8월 ‘말차’ 관련 검색량은 전년 대비 1035% 증가했다. 같은 기간 ‘카키색’의 검색량도 36% 늘었다.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이자벨마랑은 올 FW 시즌 카키 컬러 제품 물량을 전년 대비 3배 이상 확대하는 등 패션계는 새로운 녹색 열풍에 적극 가담하고 있다. ‘녹색이 돈 된다’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말차 유행의 배경에는 건강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의 웰빙 트렌드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차광 재배해 수확한 찻잎을 분말 형태로 섭취하는 말차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건강식품’으로 소개되곤 한다. 2023년 aT(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발간한 미국 말차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말차제품엔 ‘유기농’ ‘항산화’ ‘비타민’ ‘L-테아닌’ 등의 건강 관련 키워드가 자주 등장한 것으로 나타났다.

녹차와 달리 차광 재배해 수확한 찻잎을 증기로 쪄서 말려 곱게 간 분말 형태로 섭취하는 말차는 녹차에 비해 색이 진하고 풍미도 깊다. 블랙핑크 제니가 자신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요즘 커피 대신 말차 라떼나 아이스 말차를 만들어 먹는다, 우려먹는 녹차랑 확실히 다르더라”라며 말차 메이커까지 마련했다고 밝히는 등 스타들도 한몫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 6월 “말차 라떼와 틱톡 덕분에 글로벌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논평했다. 말차 열풍은 단순한 음료를 넘어 문화로 자리잡으며 산업 전반에 걸쳐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식음료 업계를 넘어 산업계는 앞다퉈 말차 관련 제품을 내놓고 있다. 패션, 뷰티 등 말차는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로 부상했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뉴스펭귄
식음료 업계를 넘어 산업계는 앞다퉈 말차 관련 제품을 내놓고 있다. 패션, 뷰티 등 말차는 라이프스타일 트렌드로 부상했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 /뉴스펭귄

폭발하는 말차 수요…폭염·이상 저온으로 생산 ‘빨간불’→가격 급등

지난 1월 글로벌 시장 조사 기업 ‘더 비즈니스 리서치’는 세계 말차시장 규모가 2024년 38억4000만달러에서 연평균 11.2%의 성장률을 보이며 2029년에 64억8000만달러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 이유로 세계 식음료시장 규모가 커지는 동시에 건강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것을 꼽았다.

국산 말차 수요도 눈에 띄게 증가했다. 관세청 수출입무역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차류 수출액은 2075만 달러로 전년 대비 65.0% 급증했다. 올해 1~5월 수출액은 382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증가세(3.8%)를 지속했다. 2017년부터 미국 스타벅스 본사에 말차를 납품한 경남 하동군은 지난해에는 말차 100여t을 미국·남미·유럽 등지에 수출했다. 이는 2023년 대비 45% 증가한 수치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데이터엠인텔리전스는 말차 시장이 지난해 36억5000만 달러(약 5조800억원)에서 2032년 78억3550만 달러(약 10조9000억원)까지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정작 말차 생산은 ‘빨간 불’이 켜졌다. 기후 위기로 인한 이상 기온으로 차나무 생장에 차질이 생기는 것. 말차는 특히 색도(녹색 빛깔)가 중요한데, 질 좋은 말차를 생산하려면 차광(햇빛 노출)을 잘 조절하는 것이 중요하다. 4~5월 서리나 이상 저온, 폭염으로 차광을 조절하는 것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게 업계의 전언이다. 전체 텐차(찻잎과 줄기) 생산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일본 교토는 지난해 폭염으로 인해 차나무의 생장이 손상되면서 올해 4~5월 수확기에 큰 타격을 입었다.

냉해를 입은 찻잎. 말차의 품질에는 빛깔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에 기후위기로 인한 이상 기온은 말차 열풍에 직격타일 수 있다. (사진 하동 차&바이오 진흥원 제공)/뉴스펭귄
냉해를 입은 찻잎. 말차의 품질에는 빛깔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에 기후위기로 인한 이상 기온은 말차 열풍에 직격타일 수 있다. (사진 하동 차&바이오 진흥원 제공)/뉴스펭귄

공급 부족은 가격 상승으로 직결되고 있다. 2024년 5월 교토의 한 경매에서 정차 가격은 킬로그램당 8235엔. 전년 동기 대비 170% 증가한 사상 최고치다. 소위 ‘품귀 현상’까지 발생하고 있다. 교토와 도쿄의 말차 전문점들은 구매 수량 제한, 입고 알림 서비스까지 도입했다. 프리미엄 말차는 입고 후 수분 내 매진, 일부 체험형 매장은 가격이 30% 이상 인상됐다. 싱가포르의 일본 차 수입업체 Tealife의 창립자 이시이 유키는 작년 고객의 말차 수요가 9배 증가했지만, 일본의 공급량은 감소 추세에 있다"며 "거의 연중 품절상태"라고 밝혔다.

‘녹색이 돈 된다’고? 말차코어, ‘무늬만 웰빙’ 아니려면

웰빙 트렌드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가심비’(가격 대비 마음의 만족),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 등 신조어와 함께 일상에서 작은 행복을 찾으려는 MZ세대의 욕구를 반영한다. 불확실한 미래와 경쟁에 지친 젊은 세대의 현실을 반영한 단어들이기도 하다. 기후위기로 인한 생산 차질이 말차 열풍의 발목을 잡을 가능성은 매우 크다. 말차의 짙은 푸른빛이 '웰빙', '건강'을 떠올리게 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우리는 ‘아주 작은 행복’으로 쉽사리 도망칠 수 없다.

“누가 뭐라고 해도 기후변화는 실존하고, 세계적으로 여러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행동으로 옮기는 게 중요하다.” -잉거 안데르센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잉거 안데르센 유엔환경계획(UNEP) 사무총장은 지난 6월 제주에서 열린 세계 환경의 날 행사에서 지난 기후위기 대응과 관련해 다시 한번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지난달 열린 ‘미래세대 기후불안 극복을 위한 포럼’에서 청년 대표로 참석한 ‘환경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기후위기는 사회문화 전반에 스며든 문제”라며 청년 기후불안에 대한 사회적 공감과 정책적 해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말차 코어가 ‘무늬만’ 웰빙이 아닌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려면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로 정신건강까지 위협하는 기후위기를 직시해야 한다. 높아진 K 컬처의 위상만큼 책임 의식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유명인을 따라 상품을 구매하는 ‘디토 소비’ 현상 속 K-팝 스타들의 행동 하나하나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제니도 마신다, 말차 라떼’가 ‘제니도 쓴다, 종이 빨대·텀블러’로 옮겨가 기후위기 대응으로 이어지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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