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는 회색일까, 초록일까?
바쁜 출근길, 숨이 턱 막히는 아스팔트 사이에서도 풀 한 포기와 눈을 맞추는 순간이 있다. 수소 작가의 에세이 『친밀한 초록』은 바로 그 작은 순간에서 출발한다.
어느 도시인의 휴대전화 사진첩에 우연히 저장된 초록의 기록은 몇 년을 거쳐 140여 점의 드로잉, 사진, 콜라주로 확장된 한 권의 아트북이 되었다. 얇은 종이와 초록색 실로 제본된 책은 그 자체가 ‘틈에서 자라는 초록’을 닮았다.
이 책의 시작은 소박하다. 수소 작가가 산책하며 습관처럼 찍어둔 수천 장의 휴대전화 속 사진은 그의 손에서 그림과 문장으로 되살아난다. 바쁜 일상에 그저 스쳐 지나갔던 도시의 풀꽃들도 그중 하나다.
“어느 계단 사이에 난 꽃을 보려고 길을 돌아가기도 하고, 보고 싶은 친구의 안부를 묻듯 건물과 건물 사이 구석구석 다니는 시간이 늘었다. 바쁜 세상에서 이 효율 떨어지는 일은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할 때 힘이 되어주었다. 그렇게 세상에, 관계에, 나 자신에게 너그러워질 힘을 얻었다.”
작가는 프롤로그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놓치고 지나갔던 것들이 사실은 우리를 살리는 틈이 되고 있었음을 깨닫게 하는 대목이다.
책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존재했던 식물들의 주소를 따라간다. 산속의 숲처럼 모여 있지 않아 더 잘 보이지 않는 도시 식물들은 그래서 하나하나 자기만의 주소를 갖는다. 작가는 그 주소와 만났던 달과 장소를 책에 함께 기록해 독자가 자신의 초록 지도 안으로 들어가도록 안내한다.
그 지도 안에서 옥상 화분에서 솟아오른 잎들은 봄이면 하늘로 떠오르는 초록 구름이 된다. 화분을 탈출한 꽃씨들은 물길을 따라 걷기 좋은 오르막길까지 모험을 떠난다. 어느 날엔 제비꽃이 자신의 어머니를 닮아 보이기도 한다.
도시 곳곳에서는 동화의 한 장면 같은 이야기가 흐르고, 작가의 다정한 시선에 걸려 손끝으로 완성된다. 작가는 작은 관찰을 이어가다 보면 도시의 생태가 우리 곁에서 조용히 다정하게 확장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친밀한 초록』은 산문집이면서 동시에 아트북이다. 각 파트마다 재료도 달라진다. 「나의 보호수」에서는 오래 지켜온 나무의 온기를 전하고자 실 자수를 사용했고, 「고궁의 나무」에서는 고목의 깊은 뿌리를 표현하려 먹선 드로잉을 택했다. 콜라주, 수채, 색연필 등 다양한 매체가 뒤섞이며 도시의 초록이 가진 다층적 결을 그대로 보여준다.
이 책이 말하는 자연은 먼 숲이나 거대한 국립공원의 이름이 아니다. 집 앞 골목의 참새풀, 보도블록 사이의 개미, 지하철역 앞 화단의 담쟁이처럼 매일 지나친 자리에서 우리도 모르게 우리를 위로하던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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