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여름이 갱신되고 있다. 이례적이고, 역대급이다. 햇볕은 뜨겁다 못해 따갑고, 지난해보다 양산 사용량이 늘었다는 기사도 보인다. 기자도 지난해 들어 처음 양산을 마련했고, 올여름은 양산 없이 걷기 힘들다는 걸 실감한다. 따가운 여름, 그늘을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가 됐다.
양산을 미처 챙기지 못한 날은 필사적으로 다른 그늘을 찾는다. 횡단보도를 기다릴 땐 지자체에서 설치한 파라솔형 그늘막 아래, 길을 걸을 땐 나무 아래를 딱 붙어 걷는다. 양산, 파라솔, 나무. 여름 한복판을 그나마 견디게 해주는 그늘이다. 이 중에서도 녹지가 만들어주는 그늘은 특히 더 귀하다.
최근 양산 사용 시 체감 온도가 10도 내려간다는 보도도 있었지만, 양산은 언제든 살 수 있다. 기자는 그보다 더 귀한 녹지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서울연구원이 지난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가로숲이 조성되지 않은 도로와 비교했을 때 가로수 한 줄만 있어도 도로 지표면 온도는 평균 0.37~0.56도 낮아졌고, 두 줄 이상일 때 최대 1.09도까지 떨어졌다. 숫자로 보면 작아 보일 수 있지만, 아스팔트 위 열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도심 환경에서는 분명히 체감할 수 있는 차이다.
또 지난 7월 국립산림과학원이 발표한 위성자료 분석 결과에서는 서울 자치구 별 지표면 온도가 도시숲 비율과 비례했다. 숲 비율이 60% 이상인 강북구는 평균 34.9였지만, 숲 비율이 10% 이하인 영등포구는 37.9도를 기록했다. 서울 평균 지표면 온도가 37.1도였던 점을 고려하면, 자치구 간 최대 3도 이상 차이가 난 셈이다.
이는 도시 열섬 현상과 관련이 있다. 한국기상학회에 따르면 도시 열섬 현상은 "도시 지역 기온이 그 주변 교외 지역보다 높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열이 축적되는 인공 구조물,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덮인 지면, 부족한 녹지, 차량과 건물에서 배출되는 폐열 등이 원인이다. 도심 곳곳에 쌓인 열은 밤까지도 쉽게 식지 않고 복사열로 방출되며, 도시의 더위를 더 오래 끌고 간다.
지난달 기자는 도심 속 녹지 효과를 극단적으로 체험했다. 취재차 찾은 돈의동 쪽방상담소에서다. 기자에게 쪽방촌의 여름 대책에 대해 설명하던 관계자는 "사실은 골목에 식물을 심고 싶다"며 소소한 꿈을 꺼냈다. 온도를 조금이라도 낮추고, 외로운 주민들에게는 생기를 더해줄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좁은 골목을 더 좁게 만든다는 우려와 관리의 어려움, 뜬금없다는 시선 탓에 실현되기에는 오랜 시간이 필요해 보였다. 그래서 관계자는 쪽방상담소 옥상에서 먼저 실험 중이라고 했다.
"기자님, 한번 구경해 보실래요?"
아파트에 15년 넘게 거주해 온 기자에게 옥상은 잊힌 공간이었다. 안전상의 이유로 잠겨 있는 문을 더 많이 봤다. 옥상에 무언가를 한다는 건 낯선 일이었고, 사실은 큰 기대 없이 올라갔다.
서울에 폭염경보가 내려진 날이었다. 옥상 밖은 햇볕 아래 피어오르는 아지랑이가 보일 만큼 뜨거웠다. 옥상은 구청 지원사업으로 시작한 두 그루의 나무와 함께 블루베리, 방울토마토 등 여러 초록잎이 무성했다. 기자는 옥상에 첫 발을 딛자마자 "이 정도면 여름을 견딜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실내에서 에어컨을 쐬는 것보다 기분이 좋았다. 감기에 걸릴 걱정 없는 적당한 시원함이었다. 뜻밖에 이루어진 취재라 정확한 수치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초록 잎 사이에 둘러싸인 여름은 견딜 만해 보였다. 간절한 '소확행'이 됐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말은 멀리서 보면 작은 말일 수 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확실하기 때문에 행복의 크기는 상관없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기자는 그렇게 해석하면서 살아간다. 아무리 도시가 커다란 회색빛이라지만, 소소하고 확실한 초록이 있으면 좋겠다. 조용히 그 관계자의 소소하고 확실한 꿈을 응원하고 싶다. 이 지구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당연한 그늘과 쉼이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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