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도상국 에너지 전환을 돕는 국제 기후금융 중 대부분이 노동자와 지역사회 지원 없이 쓰이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원금 대부분이 친환경 설비 구축 등에 쓰이는 가운데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잃는 노동자 등에 대한 지원은 전체 기금의 2.8%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도 기후기금 중 정의로운 전환 관련 예산 비율은 한자릿수에 그쳤다.
국제 환경단체 액션에이드는 3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녹색기후기금(GCF)과 기후투자기금(CIF)이 지원한 644개 재생에너지·친환경 농업 프로젝트를 분석한 결과, 2.8%만이 '정의로운 전환' 기준을 충족했다고 밝혔다.
'정의로운 전환'은 석탄발전소 폐쇄 등 기후 대응 과정에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와 타격을 받는 지역사회를 함께 지원하는 것이다. 석탄발전소를 태양광으로 바꿀 때 석탄 노동자 재교육, 소득 보전, 대체 일자리 창출 등을 함께 추진하는 방식이다.
GCF는 2010년 유엔 기후협약에서 설립된 기후금융 기구로, 본부는 한국 인천 송도에 있다. CIF는 2008년 세계은행 주도로 만들어졌다. 두 기금은 개도국의 태양광·풍력 발전소, 지속가능 농업, 산림 보호 등에 지난 10년간 227억 달러(약 32조6000억 원)를 지원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프로젝트 대부분은 태양광·풍력 발전소 같은 설비 구축에만 지원금 대부분을 사용했다. 석탄발전소 폐쇄로 일자리를 잃는 노동자, 농업 전환으로 생계가 바뀌는 농민, 에너지 전환으로 타격받는 지역사회에 대한 지원은 거의 없었다. 10년간 정의로운 전환에 투입된 재원은 6억3000만 달러(약 9000억 원)로 전체 기금의 2.8%에 불과했다.
테레사 앤더슨 액션에이드 글로벌기후정의 책임자는 "사람들이 안전한 일자리와 안전한 지구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당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도 8%뿐...탈석탄 빨라지는데 지역경제 대책은 미지수
한국도 상황이 다르지 않다. 녹색전환연구소가 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기후기금에서 정의로운 전환 관련 예산은 8%대에 그친다. 배보람 녹색전환연구소 부소장은 "정의로운 전환에 대한 국가 차원의 장기적 전망과 지원책이 마련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2020년 충남 보령시에서 석탄화력발전소 1·2호기가 폐쇄된 후 지역 인구는 10만 명 선이 무너졌다. 보령시의 인구감소율은 1.8%로 이전 10년간 평균 0.65%의 3배에 달했다. 배 부소장은 "보령 석탄화력발전소의 조기 폐쇄 이후 지역의 인구 유출이 가속화되고 있다"며 "정의로운 전환 방향과 로드맵의 부재를 드러낸다"고 말했다.
정부는 다음 달 폐쇄 예정인 태안석탄화력발전(이하 태안화력) 1호기 노동자 129명 전원을 다른 발전소로 재배치한다고 밝혔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지난달 충남 태안군 태안화력을 방문해 "일자리 상실 없는 정의로운 전환을 추진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협력업체 노동자와 지역 경제 전반에 대한 대책은 여전히 미흡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2038년까지 석탄발전 37기 폐쇄...1만6천명 실직 예상
탈석탄에 대한 요구는 점점 거세지고 있다. 지난 2월 확정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따르면 2038년까지 전국 석탄화력발전소 61기 중 37기가 단계적으로 폐쇄된다. 다음 달 태안화력 1호기를 시작으로 2026년 3기, 2027년 5기가 순차적으로 문을 닫는다. 이재명 대통령은 2040년까지 석탄발전을 완전히 폐쇄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고용·소득 감소도 우려된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석탄화력발전소 폐쇄로 2030년까지 1만6000명의 고용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석탄발전소 14기가 집중된 충남 지역만 5조5000억원의 소득 감소가 예상된다.
2021년 제정된 탄소중립기본법은 정의로운 전환 특별지구 지정을 통해 전환 위기를 겪는 지역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법 제정 후 4년이 지난 현재까지 특구 지정은 이뤄지지 않았다. 성일종 국회의원이 3일 태안을 1호 특별지구로 만들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정부예산안이 확정되지는 않았다.
"독일처럼 사회적 대화 필요...단순 보상 넘어서야"
정의로운 전환 예산의 적정 비율에 대한 국제적 합의는 아직 없다. 다만 어떤 요소들을 반드시 포함해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진행되고 있다.
배보람 부소장은 정의로운 전환에 필요한 요소들을 제시했다. 그는 "거버넌스를 통해 석탄화력발전소 이후 지역사회의 전망을 구상하고 이를 위해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사업자와 노동자, 지역사회의 책임과 역할을 규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와 산업 지원에 대한 포괄적인 프레임워크를 구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노동자 재교육과 소득 보전, 중장기 산업 전환 방향 수립, 중앙-지방정부·사업자의 역할 분담 등이 포함돼야 한다는 의미다. 배 부소장은 "독일은 탈석탄 위원회에서 정부·노동자·지역 주민·환경단체가 숙의 과정을 거쳐 합의한 뒤 법으로 제도화했다"며 "한국도 단순 보상이 아니라 이해당사자들이 참여해 지역사회의 전망을 함께 만드는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독일은 2038년까지 석탄 지역 지원에 400억 유로(약 66조 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이 예산은 교통 인프라 구축, 새로운 산업 육성, 정부 기관 이전, 복지 확대 등에 사용된다.
배 부소장은 1989년 석탄 합리화 정책의 실패 사례도 언급했다. 그는 "당시 광산과 노동자들에 대한 보상 조치는 이뤄졌으나 지역경제의 급격한 위축에 대한 대응 방안이 마련되지 못했다"며 "그 피해를 지역사회가 고스란히 떠안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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