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에서 한 관광객이 코끼리 코에 맥주를 붓는 영상이 공개돼 공분을 사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여러 형태의 코끼리 학대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해외 관광업계에서는 동물을 괴롭히지 않는 방식의 여행상품 개발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하지만 하나투어 등 국내 주요 여행사들은 여전히 코끼리에 올라타는 상품 등을 판매하고 있다.
최근 세계 곳곳에서 드러난 코끼리 학대 사례
최근 케냐 올 조기(Ol Jogi) 보호구역에서 한 스페인 관광객이 코끼리 코에 맥주를 들이붓는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올렸다. 이 관광객은 현지 맥주 ‘터스커(Tusker)’를 코끼리 코에 쏟아붓는 모습을 촬영하고 “상아 달린 친구(Tusker)와 맥주(Tusker) 시간”이라는 문구를 달아 게시했다.
BBC 보도에 따르면, 해당 영상 속 코끼리는 보호구역 방문객들에게 친절한 것으로 유명한 수컷 코끼리 ‘부파(Bupa)’로 확인됐다. 보호구역 측은 “용납할 수 없고 위험한 행동”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케냐 야생동물청(KWS)도 조사에 착수했다.
코끼리 관광으로 유명한 태국에서도 학대 정황이 보고됐다. 2023년, 관광객을 등에 태우고 25년간 일해온 암컷 코끼리 ‘파이린(Pai Lin)’이 척추가 심하게 변형된 채 발견됐다고 CNN은 보도했다.
태국 야생동물구호재단(WFFT) 책임자 톰 테일러는 “코끼리의 척추는 구조상 무거운 하중을 견디기 어렵다”며 “지속적인 압력이 가해지면 영구적인 손상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나이가 들고 심한 통증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파이린은 이전 주인으로부터 버려졌다. 지금은 태국 야생동물구호재단 보호구역으로 옮겨져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19년에는 스리랑카에서 ‘축제 코끼리’의 비극이 국제적 논란을 불렀다. BBC에 따르면, 불교 축제 ‘페라헤라’에 동원된 70세 코끼리 ‘티키리(Tikiri)’가 갈비뼈가 드러날 정도로 마른 몸으로 행진하는 사진이 공개됐다. 코끼리 구호재단(Save Elephant Foundation)은 “티키리가 소음과 불꽃놀이, 연기 속에서 매일 밤 수 킬로미터를 걷도록 강요당했다”고 비판했다. 거센 논란 끝에 축제에서 제외됐지만, 티키리는 한 달 뒤 숨을 거뒀다.
훈련 과정에서의 학대도 예외가 아니다. 2017년, 국제동물보호단체 페타(PETA)는 독일 하노버 동물원에서 새끼 코끼리가 채찍과 갈고리에 시달리는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 속 코끼리는 고통에 울부짖으며 서커스 공연을 위한 반복 훈련을 강요받았다. 페타는 동물원을 형사 고발하며 “학대에 장기간 노출된 코끼리는 야생성을 잃고 심각한 정신적 충격을 겪는다”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사례를 단순한 개인 일탈로 보지 않는다. 관광상품화 과정, 축제 동원, 서커스 훈련 등 산업 구조 속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라는 것이다.
코끼리는 생태계에서 ‘생태계 공학자’, ‘씨앗 배달부’로 불린다. 하루 150kg 이상의 식물을 먹으며 숲의 균형을 조정하고, 씨앗을 멀리 퍼뜨려 숲을 유지한다. 울창한 숲을 헤집으며 작은 동물들의 서식지를 만들기도 한다. 그럼에도 무분별한 착취로 아시아코끼리는 멸종위기종, 아프리카숲코끼리는 위급종으로 지정돼 있다.
여행업계에서도 변화의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여행 플랫폼 트립어드바이저는 일부 코끼리 트레킹 상품에 "동물복지 지침에 부합하지 않는다"(Does not meet our animal welfare guidelines)라는 안내를 붙이고 예약을 받지 않고 있다. 익스피디아도 자체 동물복지 정책을 홈페이지에 소개하고 부합하지 않는 상품은 배제한다.
"ESG 경영 도입, 동물 학대 여행 폐지" 한다더니...말로만?
그러나 국내 업계 상황은 다르다. 일례로 하나투어는 코끼리 트레킹 상품을 폐지했다고 홍보했지만 홈페이지에서 관련 상품을 여전히 구매할 수 있다.
하나투어는 지난 2022년 코끼리 트레킹·동물쇼 등 학대 우려 프로그램을 전면 폐지했다고 홍보했다. ESG 경영을 도입한 변화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2023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는 이를 반영해 “동물 학대 요소가 포함된 여행프로그램 운영을 과감히 폐지”했다고 강조했다. 작년 4월 지구의 날 이벤트를 홍보하면서도 ‘동물학대 프로그램 폐지’를 하나투어의 책임감 있는 ESG 활동 중 첫 번째로 소개했다. 이 내용은 2025년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환경경영 사례로 올라와 있다.
하지만 현재 하나투어 홈페이지에서 코끼리 트레킹 상품은 쉽게 검색된다. 한국인 전용이라는 한 상품은 “2명이 코끼리 한 마리 탄다”고 설명한다. 트레킹은 이 상품을 포함해 총 5개가 판매 중이다. 반면 먹이를 주고 목욕을 시키는 다른 상품은 “트레킹 같은 동물학대 이슈가 있는 구성이 아니”라고 소개한다.
하나투어가 직접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품에만 트레킹이 포함되지 않고, 협력사의 트레킹 상품은 여전히 판매하는 것이다. ‘동물학대 이슈가 있는’ 트레킹 상품을 직접 운영하는 대신 자사 플랫폼을 통한 유통과 판매로 역할을 바꾼 셈이다.
이와 관련, 하나투어 태국법인은 "사진만 코끼리를 타고 있는 모습이고 우리 법인이 실제로 제공하는 투어에는 트레킹이 없다. 코끼리 쇼도 제공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후 하나투어 태국법인은 상품 소개 이미지를 변경했다.
하나투어에 여행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한 협력사 관계자는 예약 진행을 자신들이 담당하는 것은 맞다고 전제하면서 "프로그램 관련 세부 내용은 하나투어에 확인하라"는 입장을 전했다.
하나투어 "직접 기획 아니지만 관리 미진"... 트레킹 상품 삭제
조일상 하나투어 홍보팀장은 <뉴스펭귄>과의 통화에서 협력사의 실수와 하나투어의 미진한 관리로 발생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조 팀장은 “하나투어는 동물학대 투어 전면 폐지를 선언한 이후 협력사들에도 같은 내용을 전달했다”며 “협력사 두 곳이 실수로 코끼리 트레킹과 공연 상품을 등록한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해당 상품이 언제부터 판매되고 있었는지는 모른다. 지난 4월 자체 내부점검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점검은 정기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지난 4월 이전 점검 여부에 대한 기록은 없다고 덧붙였다.
조 팀장은 “하나투어가 직접 기획하지는 아니지만, 해당 상품들은 동물학대 프로그램 폐지를 선언한 하나투어 플랫폼에서 판매되지 않았어야 한다”며 “관리가 미진했던 것은 맞다. 앞으로는 이런 상품이 판매되지 않도록 더욱 신경 쓸 예정”이라고 전했다.
5일 현재 하나투어 홈페이지에서 코끼리 트레킹과 공연이 포함된 상품은 삭제된 상태다.
노랑풍선, 마이리얼트립도 코끼리 트레킹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국내 여행 업체들에는 트립어드바이저와 익스피디아의 동물복지 정책과 같은 가이드라인이 없는 것으로 확인된다. 이와 관련해서 조 팀장은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은 조심스럽다. 코끼리 관광 같은 경우, 태국에서는 일반적”이라며 “동물보호단체의 주장도 있겠지만 나라마다 받아들이는 기준이 다르다”고 말했다.
한편 국제사회에서는 학대 없는 대체 체험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이어진다. 전문가들은 “코끼리와 진정한 교감을 원한다면 학대 없는 여행을 선택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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