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잣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설악산 대청봉 일대에 유일하게 자생하고 있다. 중청대피소와 대청 사이, 해발고도 1650m 부근에 10헥타르 미만의 지역에 적게 분포하고 있다. (사진 국립산림과학원)/뉴스펭귄
눈잣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설악산 대청봉 일대에 유일하게 자생하고 있다. 중청대피소와 대청 사이, 해발고도 1650m 부근에 10헥타르 미만의 지역에 적게 분포하고 있다. (사진 국립산림과학원)/뉴스펭귄

지구온난화가 심화되면서 그야말로 벼랑 끝에 놓인 나무들이 있다. 바로 높은 산에서만 사는 침엽수종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높은 곳에 사는 눈잣나무는 멸종이 코앞에까지 다가온 상황. 이들을 지키기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국내 과학자들이 오랜 연구 끝에 조금씩 희망을 보고 있다.

눈잣나무는 해발 1,500m 이상의 고산지대에 서식하는 희귀 침엽수종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설악산 대청봉 일대에 유일하게 자생하고 있는데, 중청대피소(1600m)와 대청(1700m) 사이, 해발고도 1650m 부근에 10헥타르 미만의 지역에 적게 분포하고 있다.

가문비나무, 구상나무 등과 함께 우리나라 7대 고산 침엽수종 중 하나인 눈잣나무는 우리나라 분포 침엽수종 중에서는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고도에서 살고 있어, 기후위기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예측되는 나무이기도 하다. 과학자들이 기후변화 시나리오 모델을 돌려본 결과, 2050년에는 눈잣나무가 더 이상 우리나라에 살지 않을 것으로 예측됐다.

국립산림과학원과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는 2016년에 본격적으로 대청봉 일대에서 눈잣나무 복원 사업을 시작했다. (사진 국립산림과학원)/뉴스펭귄
국립산림과학원과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는 2016년에 본격적으로 대청봉 일대에서 눈잣나무 복원 사업을 시작했다. (사진 국립산림과학원)/뉴스펭귄

국립산림과학원과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는 2011년부터 공동으로 유전다양성 보전 전략을 수립하고 눈잣나무 종자 수집 및 증식을 추진해왔다. 2016년에는 본격적으로 대청봉 일대에서 눈잣나무 복원 사업을 시작했다.

복원 사업을 시작하고 9년이 흐른 지난해 드디어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식재한 어린 눈잣나무의 생존율이 안정적으로 45%를 기록하며 일부 개체가 60cm 이상까지 자라 자생지 환경에서 잘 적응해가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과학자들이 주목한 것은 주변 관목 식생인 털진달래였다.

과학자들이 눈잣나무를 지키기 위해 낸 아이디어 '털진달래'

2024년에 촬영한 설악산 눈잣나무 복원 시험지. (사진 국립산림과학원)/뉴스펭귄
2024년에 촬영한 설악산 눈잣나무 복원 시험지. (사진 국립산림과학원)/뉴스펭귄

복원 사업을 시작할 당시 전문가들은 눈잣나무의 서식 고도가 너무 높아 한겨울에 찬바람이 강해 어린 나무들이 활착하기 어려울 것이라 우려했다. 국립공원이라는 특성상 인위적으로 방풍책을 만드는 것도 어려운 상황. 이때 과학자들이 주목한 것이 바로 털진달래였다.

국립산림과학원 임효인 연구관에 따르면 당시 자생지 환경에서 눈잣나무는 관목들과 군락을 형성하고 있었는데, 그중 대표적인 관목이 털진달래였다. 이들은 원래 자연스럽게 섞여 군락을 형성하는 관목 식생인 털진달래를 찬바람을 막는 방풍책으로 활용해보자는 아이디어를 냈고, 주변에 자라던 털진달래를 이식하게 됐다.

연구진이 훼손지에 식재한 어린 눈잣나무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털진달래 등 주변 식물을 바람막이로서 활용한 결과, 3년 후 생존율은 50%까지 올라갔다. 바람막이를 설치하지 않은 대조구의 생존율 0%와 대비되는 획기적인 성과였다.

눈잣나무를 위협한 것은 비단 찬바람뿐만은 아니었다. 2011년부터 쭉 자생지를 살펴온 임 연구관에 따르면, 당시 자생지 내에는 어린 눈잣나무가 없었다. 여러 해 동안 관찰했음에도 어린 나무가 나타나지 않은 것에 문제가 있다고 여긴 과학자들은 조사 끝에 잣까마귀, 들쥐 등에 의한 구과 섭식 피해가 있다는 것을 밝혀냈고, 이후 보호망 등을 설치해 비로소 온전한 구과를 수집할 수 있었다.

현재 연구진은 채집한 종자를 바탕으로 설악산 자생식물증식장에서 후계목 300개체를 증식해 보유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증식해 보전복원에 활용할 예정이다. 또 2025년 ICT 기반의 스마트 증식장과 신축하는 중청대피소 내 기후변화스테이션을 조성해 서식지 보전에 힘쓴다는 계획이다.

임 연구관은 "작년에 발견한 구과 결실 부진 문제를 해결하고 9년 동안 연구한 내용을 확대 적용해 설악산에 눈잣나무를 회복시키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며, "설악산 눈잣나무가 소멸하지 않고 잘 유지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최종적인 목표"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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