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곳곳에서 적조로 인한 대규모 생물 폐사가 되풀이되고 있다. 호주를 비롯해 미국, 중국, 영국, 한국 등 여러 국가에서 유사한 피해가 관측되며, 해양 열파와 수온 상승이 적조 발생의 배경으로 지목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현상이 해양 생태계 구조를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고 본다.
호주 남부 해안에서 발생한 독성 적조로 상어, 문어, 해룡 등 해양생물 200여 종이 집단 폐사했다. 이 가운데는 국제적으로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심해 상어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적조의 원인으로는 미세조류 ‘가레니아 미키모토이(Karenia mikimotoi)’가 지목된다. 이 조류는 어류의 아가미를 막고, 신경계를 공격해 질식사나 이상 행동을 유발하는 독성을 지닌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적조는 3월 중순 남호주의 플뢰리외 반도(Fleurieu Peninsula)에서 처음 관측된 후 남동부 해안 일대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됐다. 세인트빈센트만(Gulf St Vincent), 요크 반도(Yorke Peninsula), 캥거루섬(Kangaroo Island)까지 피해가 퍼졌다. 남호주 환경부는 수온이 평년 대비 2.5도 상승하고, 해류가 정체된 점이 조류 확산을 부추겼다고 설명했다.
환경단체 오즈피시(OzFish)는 시민 과학자 1,400여 명의 보고를 분석한 결과, 폐사한 생물 가운데 경골어류가 47%, 상어·가오리류가 26%, 문어·오징어 등 두족류가 7%, 게·랍스터·조개 등 십각류가 6%를 차지했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성어뿐 아니라 유어까지 폐사한 점에 주목하며, 개체군 단절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폐사 개체 중에는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지정 멸종위기종인 ‘백지느러미 스웰상어(Whitefin Swellshark)’와 ‘녹안 스퍼독 상어(Greeneye Spurdog)’가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이미 호주 정부가 어획을 금지한 종이다.
반복되는 전 세계 적조 피해
기후변화와 해양 열파가 적조 발생 조건으로 지목되는 가운데, 유사한 현상은 다양한 해역에서 반복적으로 보고되고 있다. 최근 수년간 세계 곳곳에서 유사한 적조 피해가 반복되고 있다. 기후변화와 해양 열파, 수온 상승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적조 발생 조건을 만들고 있다는 해석도 잇따르고 있다.
2018년 미국 플로리다에서는 ‘카레니아 브레비스(Karenia brevis)’가 대규모 적조를 일으켜 수천 톤의 해양 생물과 해양 포유류, 조류의 폐사를 유발했다. 적조는 관광업과 지역 경제에도 직접적인 피해를 끼쳤다.
2013년 한국 남해안에서도 대규모 적조로 양식어류가 대량 폐사해 약 1억 2,100만 달러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 당시에도 기온 상승과 정체된 해류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바 있다.
2024년 미국 캘리포니아 해안에서는 슈도-니츠시아(Pseudo-nitzschia)라는 조류에 의한 적조가 발생했고, 해당 조류가 생성한 신경독소 도모익산에 중독된 돌고래와 바다사자의 좌초 사례가 잇따랐다.
영국 북아일랜드 러프 니(Lough Neagh) 호수에서는 2023년부터 2024년까지 청록색 조류(Cyanobacteria)의 급속한 번식이 내륙 수계 생물다양성과 인근 주민 건강에까지 위협을 가했다. 이 현상은 기후 변화와 비료 유출 등 육상 기원의 영양염 증가가 배경으로 지목됐다.
중국 산둥성 연안에서는 2013년과 2015년에 걸쳐 수천 제곱킬로미터 규모의 녹조성 적조가 발생해 해양 생물뿐 아니라 어업과 관광업까지 광범위한 영향을 끼쳤다. 해당 지역에서는 여름철마다 이른바 ‘녹조 카펫’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생태계를 흔드는 조류
가레니아 미키모토이는 빛과 영양분 외에도 미생물을 섭취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일정 농도를 넘으면 적조로 전환되며, 어류의 호흡기와 신경계를 마비시킬 수 있다. 시드니 공과대학교(UTS)의 쇼나 머레이 교수는 “이 조류가 분비하는 활성산소는 아가미 세포를 손상시켜 어류의 호흡을 방해하고, 경우에 따라 뇌신경계까지 침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남호주 환경부는 피해 원인 조사를 병행하면서 어패류 양식장과 조개류 채취 구역을 일시 폐쇄했다. 수전 클로스 환경장관은 “피해가 최대 수심 20미터까지 확인됐다”며 “이처럼 광범위한 적조는 남호주에서도 전례 없는 일”이라고 밝혔다.
해류를 움직여 조류를 분산시킬 강한 서풍이 필요하다는 관측도 있다. 하지만 현재 고기압이 남호주에 장기간 머물면서 조류 확산을 막을 자연적 요인이 부족한 상황이다.
전문가의 분석과 과학적 해석
전문가들은 기후변화로 인한 해수온 상승과 해양 열파가 적조 발생을 유발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한다고 보고 있다. 해양 생태계의 교란뿐만 아니라 양식업, 연안 어업, 관광산업에도 연쇄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의가 요구된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은 중앙대학교와의 공동연구를 통해 적조 발생 이후 일부 해역에서 동물플랑크톤 종 다양성이 증가한 사례가 있었다고 밝혔다. 해당 연구는 2013년부터 2019년까지 통영 해역에서 적조 발생 전후의 플랑크톤 유전체 변화를 분석한 결과다.
이 내용은 국제학술지 'Environmental Pollution' 2024년 9월호에 게재됐다. 연구진은 이를 두고 '적조가 일시적으로 먹이망 구성에 변화를 줄 수는 있지만, 이는 해양 생태계의 불안정성을 보여주는 신호일 수 있다'고 해석했다. 이희승 KIOST 원장은 “적조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단순하지 않으며,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또한, KIOST가 발표한 '기후변화가 남해(북부 동중국해 포함) 해양생태계에 미치는 영향 평가' 보고서에서는 “기후변화로 인해 유해 적조 생물의 분포가 점차 북상하고 있으며, 이를 감지하고 대응할 수 있는 조기경보체계의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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