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 산불 속의 개농장에서 구조된 7마리 개 중 하나 (사진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뉴스펭귄.
안동 산불 속의 개농장에서 구조된 7마리 개 중 하나 (사진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뉴스펭귄.

[뉴스펭귄 임정우 기자] 지난 경북 산불로 700마리 개가 불에 타 숨진 사고가 있었다. 이를 두고 재난 상황에서의 동물 구조 체계가 법적으로 제대로 잡혀있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사육 동물이 행정안전부의 구조 대상이 아니어서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문제의식이다.

지난 3월 경북 북부 지역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이 안동·청송·의성 일대에 큰 피해를 안겼다. 강한 바람과 건조한 날씨 속에 수많은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발생했다. 이런 가운데 동물 사육시설도 피해를 입었다.

당시 안동에는 약 700마리의 개들이 사육되던 대형 개농장이 있었다. 해당 개농장이 식용 목적으로 개들을 사육하는 개농장인지는 공식 확인된 바 없다. 산불이 농장까지 번졌을 때, 농장주는 개들을 철제 우리에 가둔 채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묶여 있던 개들은 불길을 피하지 못하고 철창 안에서 대부분 숨졌다. 살아남은 개는 8마리였는데 구조된 다음날 한 마리가 숨지면서 7마리만 남았다.

산불 당시 개농장은 전소될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 (사진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뉴스펭귄.
산불 당시 개농장은 전소될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 (사진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뉴스펭귄.

현장에서 구조 활동에 나선 동물권행동 카라에 따르면, 농장 측은 당시 구조 요청을 하지 않았고, 구조를 위한 초기 대응도 없었다. 농장주는 구조단체의 접근을 강하게 거부해 단체 활동가들은 현장에서 물러나야 했다.

농장 측에서 단체의 접근을 거부한 이유는 명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카라 측은 복합적인 이유가 작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민간 동물단체에 대한 불신이나 사유재산 침해에 대한 경계심 등 여러 부담감이 작용했을 것이라는 추측이다.

"재난 상황 속 동물 구조에 대한 제도적 준비 미흡"

카라는 "정부나 지자체의 현장 개입이 없는 상황이어서 단체의 구조 활동은 농장주의 동의 여부에 전적으로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구조 여부가 공적 절차 대신 민간단체와 농장주 간의 사적 협의에 따라 좌우되는 현실 자체가 재난 상황에서의 동물 구조에 대한 제도적 준비가 미흡하다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신주운 카라 팀장은 “농장주는 끝까지 개들을 넘기지 않겠다는 태도를 보였다”며 “(농장 측은) 사유지 안에서 활동가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문제 삼았는데, 개들을 구조하게 되면 이후 책임 소재가 어떻게 될지도 부담스러웠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다행히 남은 개들에 대한 구조는 이뤄졌다. 자원봉사자가 “남은 개들을 내가 책임지고 잘 보호하겠다”며 농장주를 설득했고, 이후 단체와 농장주 사이에 제한적인 협조가 이뤄진 덕이다.

하지만 구조된 개들 상태는 심각했다. 신 팀장은 “대부분 화상을 입었고, 몇몇은 탈진하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였다”며 “그렇게 살아남은 개가 8마리였고, 구조 다음날 한 마리가 끝내 사망했다”고 말했다.

구조된 7마리 개들은 치료 후 미국으로 이송될 예정이다 (사진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뉴스펭귄.
구조된 7마리 개들은 치료 후 미국으로 이송될 예정이다 (사진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뉴스펭귄.

카라 측에 의하면, 동물에 대한 구조가 어려운 이유는 인명이나 재산피해 대응에 비해 제도적으로 우선순위가 밀려있기 때문이다. 신 팀장에 따르면 개들의 대피는 사람과 달리 행정안전부가 아닌 농림축산식품부 관할이다. 

신 팀장은 “농식품부가 동물 동반 대피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긴 했지만 실행할 공간도, 시뮬레이션도, 시스템도 없는 실정”이라며 “행안부 등과의 연계도 없어 사실상 재량과 민간에만 의존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뉴스펭귄과의 통화에서 “현재 유예기간 동안 식용 목적으로 사육되는 개는 ‘식용 목적의 가축’으로 분류돼 농식품부가 관할한다”고 밝혔다.

해당 개농장이 식용 목적으로 개를 길렀는지는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 다만 카라 측은 구조된 개들이 대부분 대형 도사견이었고, 한국에서 주로 입양되지 않는 ‘맹견’으로 분류되는 견종이라는 점, 그리고 화재 이후 농장주가 생존한 7마리의 개들을 다시 식용으로 판매하려 한 정황이 있었다는 점 등을 근거로 '식용으로 길러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농식품부 역시 해당 농장 개들이 어떤 목적으로 사육됐는지를 정확히 확인한 건 아니다. 이 관계자는 해당 농장의 개들이 실제로 '식용 목적으로 사육되는 개'의 분류에 포함되는지에 대해서는 확인이 어렵다고 했다. 관계자는 “현재 경북 지역 (광범위한) 산불피해로 인한 혼란 때문에 개별적인 농장의 사례를 집어서 이야기하기는 어렵다”고 설명했다.

"구조도 어려웠지만, 어디로 가야하는지도 숙제"

구조 이후에도 숙제는 남았다. 개들을 돌볼 곳이 마땅치 않아서다. 이상경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 캠페인 팀장은 “구조 과정 자체로도 벅찼지만, 개들을 어디로 보내야 할지가 더 큰 문제였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구조된 개들이 대부분 대형견인 도사견인데 입양 가능성은 극히 낮다"고 말했다. 특히 화상 피해까지 더해지며 국내 입양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살아남은 7마리 개들은 미국으로 이송된다. 이상경 캠페인 팀장은 “장기 보호도 어렵고 공공 보호소의 공고 기간도 짧기 때문에, 미국 이송이 유일한 대안이었다”고 말했다.

이 개들은 메릴랜드 주의 재활 보호 센터로 이동해 치료를 받고, 이후 입양을 기다리게 된다. 해당 단체는 오는 5월 충북 청주의 또 다른 폐개농장에서 남은 70여 마리 개들에 대한 추가 구조도 준비 중이다.

이번 구조는 현장에서 구조 활동을 벌이던 동물보호단체 연대조직인 '루시의 친구들'의 긴급 구조 요청으로 시작되었다. (영상 휴메인 월드 포 애니멀즈)/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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