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남주원 기자]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일은 정말 어렵죠. 그런데 그런 기적 같은 순간을 지켜볼 때 가장 행복해요. 예컨대 처음에는 숲속의 벌레를 무서워하거나 징그럽다고 죽이고 싶어 하던 아이들이, 나중에는 손바닥에 올려놓고서 '자세히 보니까 귀여워요'라고 말하는 순간들처럼요."
지구인터뷰 열네 번째 주인공은 생명다양성재단 성민규(25) 연구원이다. 생명다양성재단은 이화여자대학교 최재천 에코과학부 석좌교수가 제인 구달(Jane Goodall, 저명한 동물학자이자 환경운동가) 박사와 뜻을 함께해 2013년 설립한 비영리 공익재단이다.
사실 성 씨와의 인연은 이달 초 시작됐다. 재단 측이 주최하는 제인 구달 박사의 방한 행사를 앞두고 용기 내어 연락을 했었다. 몇 차례 메시지와 메일을 주고받으며 '이 사람, 자기가 하는 일에 진심이구나'하고 느꼈다. 알고 보니 뉴스펭귄 열린독자위원회 위원 중 한 명이기도 했다.
뙤약볕이 내리쬐는 유월의 끝자락, 이화여대 종합과학관에 있는 생명다양성재단 사무실에서 성민규 연구원을 직접 만났다. 그는 인터뷰 시종일관 진중한 목소리와 눈빛으로 자신만의 이야기를 차분히 풀어나갔다. '이끼'처럼 살고 싶다는 그였지만 분명 태산 같은 열정을 품고 있는 청년이었다. 다음은 성민규 연구원과 나눈 일문일답이다.
제1장. 목도(目睹)
Q. 어쩌다 생명다양성재단에서 일하게 됐나.
A. "조금 긴 이야기다.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다. 서울에서 태어나 경기도 부천에서 초·중·고를 나왔는데, 청소년기에 자연을 관찰하던 소중한 장소가 있었다. 서울과 부천, 인천이라는 대도시들 사이에 있는 김포공항 근처 습지다.
멸종위기종이 30종 넘게 살아가는 생물다양성의 보고였다. 늘 책으로만 보던 한국의 야생동물들을 그 습지에서 처음 실제로 봤다. 그런데 현장에서 생태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항상 하는 걱정이 있다. 너무 좋은 장소를 발견하면 '여기가 언제 또 파괴될까' 이런 고민을 하는 거다. 아니나 다를까, 그 습지가 골프장으로 개발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생물학자'라는 그의 어릴 적 꿈이 바뀐 건 그때였다. 간절히 지키고 싶은 장소가 사라질 위기에 처하자, 학자가 아닌 활동가가 되어야만 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성 씨는 '일단 뭐라도 해봐야겠다'라는 마음으로 친구들을 모았다. 교복을 입은 채 습지 보호를 위한 전단지를 만들어 뿌렸고, 골프장 개발 관련 공청회에 나가 어른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목소리를 냈다.
"그때만 해도 순진하게 그 습지가 지켜질 줄 알았다. 왜냐하면 우리는 교과서에서 멸종위기종을 지켜야 한다고 배우지 않나. 현실 세계에서도 이들이 법적으로 보호되고 있으니까 '나라에서 지키겠지. 골프장이 정말 지어지진 않겠지' 하고 순진하게 믿었던 것 같다."
학생들의 믿음이 무색하게도 습지는 결국 골프장이 됐다. 성 씨는 고라니와 너구리를 처음 봤던 갈대 밭과 아카시아 덤불이 불도저에 밀려버리는 장면을 두 눈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비록 습지는 사라졌지만 당시 고등학생인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도와준 손길이 있었으니, 바로 생명다양성재단이다. 성 씨는 재단으로부터 크고 작은 도움들을 받으며 '진심으로 우리를 도와줄 수 있는 어른들이 있구나' 하고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후 그는 대만에 있는 대학교에서 생물학보다 조금 더 실천적이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 환경 전반을 폭넓게 공부하는 '지속가능발전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와 생명다양성재단에서 인턴을 시작했고, 인연이 이어져 어느덧 3년째 몸담고 있다.
제2장. 알면 사랑한다. 사랑하면 표현한다.
Q. 이 일을 하며 가장 행복한 순간은.
A. "학생들을 데리고 야외에서 생태 현장 교육을 하다 보면 무더위, 모기떼 습격, 가시덩굴 이런 것들로 불만이 폭주한다. 그런데 '벌레 너무 징그러워요', '죽이고 싶어요' 외치던 아이들이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이렇게 수업을 거치면서 달라지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뿌듯하다. 처음에는 벌레가 무서워 거의 주저앉을 뻔한 아이가 나중에는 손에 올려놓고 '자세히 보니까 너무 귀여워요'라고 말할 때, 이 어린아이의 생태 감수성이 시작된 순간을 지켜볼 수 있어서 기쁘다. 환경운동이라고 하는 건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변하게 만드는 일이지 않나. 정말 어려운 일인데, 그런 기적 같은 순간들을 볼 때 행복하다."
Q. 반대로 힘든 순간은 언제인가.
A. "힘든 순간도 똑같이 현장에 갈 때다. 왜냐하면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너무 좋은 자연을 만나면 여기가 언제 파괴될지 모른다는 걱정과 불안감부터 들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괴의 현장을 목도하는 일은 정말 잔인하다."
생명다양성재단은 △생물과 환경에 대한 연구 및 연구 지원 △자연 보전 교육 △예술 워크숍 등 시민참여활동 △지역 활동가들과 연대와 같이 크게 4가지 방면에서 서식지 보호에 앞장서고 있다. 성 씨는 때로는 선생님, 때로는 연구자, 때로는 MC가 되기도 하며 여러 가지 직업을 경험하고 있다.
Q. 재단의 표어가 "알면 사랑한다"이지 않나.
A. "최재천 교수님의 좌우명이 '알면 사랑한다'이다. 재단은 이를 확장해 '알면 사랑한다. 사랑하면 표현한다'라는 정신을 좌우명으로 삼았다. 표현이라는 것은 내가 알게 되고 사랑한 존재들을 지키는 활동이 될 수도 있고, 그것들을 예술적으로 표현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우리도 사랑하면 표현을 많이 하지 않나. 사랑하는데 표현을 아예 안 하는 경우는 없으니까. 편지를 쓰든지 선물을 주든지 기념일을 챙기든지 말이다. 이처럼 표현까지 이끌어내는 것이 우리 재단 활동의 목적이다."
Q. 환경 관련 일을 하며 가장 필요한 덕목이나 역량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A. "계속해서 희망을 가지는 것. 왜냐하면 절망 속에 빠지기 너무 쉽다. 그러다 보면 다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고, 완전 비관론에 빠지거나 반대로 완전 낙관론에 빠져서 '어떻게든 되겠지. 신경 쓰지 말자. 책임지지 말자' 이렇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 사이에서 계속 나아가게 만드는 힘이 희망이다."
제3장. 기승전 '골프장'
인터뷰 내내 성 씨의 입에서 가장 많이 나온 단어 중 하나는 '골프장'이었다. 어린 날 그가 지켜내지 못한 아름다운 습지 역시 골프장으로 변했으니, 차분했던 그의 목소리가 골프장 이야기를 할 때만큼은 힘이 들어갔다.
Q. 현재 일어나고 있는 환경문제 중 무엇이 가장 심각하다고 생각하나.
A. "요즘 가장 심각하게 여기고 관심 갖고 있는 문제는 골프장이다. 골프장 산업을 알면 알수록 너무 심각하다. 물 낭비, 농약과 제초제·살충제 과다 사용, 야간조명 그리고 서식지 파괴 문제… 그런 것들이 총체적으로 정말 심각하다. 우리 국장님은 골프장을 '인간이 발명한 놀이 중 가장 환경 파괴적인 놀이'라고 표현한다.
특히 코로나 이후 사람들이 자연을 찾고 야외에서 활동하고 싶어 하는 욕구가 커졌다. 그런데 진짜 자연을 찾아다닌다기보다는, 그런 욕구가 많아지면서 골프 인구가 폭증했다. '골프장' 하면 자연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거다. 정부는 늘어난 골프 수요에 비해 골프장이 부족하다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으로 골프장 진흥 정책을 발표하기도 하고, 지자체마다 '친환경 골프장'을 내세우기도 한다. 친환경이라는 말은 골프장 앞에 절대로 붙일 수 없는데 말이다. 친환경 골프장은 기존에 악랄하게 파괴했던 것보다 조금 낫다는 얘기다. 이걸 어떻게 친환경이라고 부를 수 있나."
성 씨는 그의 또래 세대까지 골프 문화가 깊숙이 침투했다며 낯빛이 어두워졌다. 인스타그램을 켜면, 골프 산업이 얼마나 환경 파괴적인지 모르는 젊은 친구들의 골프 사진과 영상이 허다하다. 그는 골프장을 '녹색 사막'에 비유하며 하반기부터는 골프장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겠다고 선언했다. "골프 치는 행위가 부끄럽다는 인식이 확대될 수 있도록 가열차게 활동할 거예요." 성 씨의 얼굴에서 학창 시절 골프장 건설을 막아내지 못해 빚진 마음이 드러났다.
Q. 한국 정부나 기업에 바라는 점
A. "제발 좀 거꾸로 가지 말자. 토지 효율 높이려는 시대착오적인 개발은 더 이상 그만해야 한다. 우리 정부와 기업이 제일 싫어하는 게 '노는 땅'이다. 땅은 다 생산성을 가져야 되고, 수익 가치를 창출해야 된다는 식의 과거 산업화 시대의 망령에 계속 사로잡혀서 여기도 개발, 저기도 개발이다. 온갖 곳에서 한시도 공사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세계 평균이라도 했으면 좋겠다. 사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다. 개발이나 환경 책임에 대해 면피하고 그린워싱하는 기업들은 더 이상 경쟁력이 없다. 국제 사회에서 우리가 진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그렇게 해야 되는데 거꾸로 가고 있다. 특정 정당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도 별로 선례를 찾아볼 수가 없다."
Q.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A. "골프를 치지 맙시다."
제4장. 이끼처럼 사는 삶
Q. '덕업일치'의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A. "그렇다. 어렸을 때부터 자연을 너무 좋아하다 보니, 공원에 보이는 벌레를 친구들에게 설명해줬던 기억이 생생하다. 관련 책이나 다큐멘터리도 많이 읽었다. 유치원 가기 전에 엄마한테 항상 EBS 동물의 왕국 다큐멘터리 비디오로 녹화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 비디오를 테이프 끊어질 때까지 돌려봤다. 항상 조금이라도 자연이 있는 공간에 가서 관찰한다. 봐도 봐도 생물은 너무 다양하고, 이들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것이 재밌다."
Q. 가장 애정하는 동물이나 식물이 있나.
A. "최근에 이 동물을 직접 보고 와서 생겼다. 눈표범이다. 몽골에서 겨울에 봤다. 영하 40℃ 추위에서. 눈표범이 세계에서 가장 보기 힘든 포유동물 중 하나라고 하지 않나. 당연히 볼 기대도 안 했고, 그저 눈표범이 사는 서식지만 보고 와도 너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에 운 좋게 만나고 왔다. 그것도 암컷과 수컷 두 마리를 동시에 말이다. 야생에서 보니까 정말 완전히 다른 존재였다."
Q. 개인적으로나 직업적으로나 고민이 있다면.
A. "다른 연구자들이나 생물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다들 본인만의 전문 분야가 하나씩 있다. 그런데 나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관심사도 넓어서 전문성이 약하다고 생각한다. 얇고 넓게 지식을 추구하는 성향이라, 어떤 특정 생물군에 대한 깊고 전문적인 지식이 좀 부족한 것 같다. 금박처럼 얇다.(웃음) 이렇게 얇게 알고 있는 사람들을 '금박'이라고 부르더라.
하지만 금박의 입장에서 말하자면 서식지 보호가 나의 강점이 될 수도 있다. 어떤 특정 종의 보전이나 보호가 아니라 여러 종을 두루두루 아니까. 그렇게 연결되는 지식들 덕분에 서식지를 보호할 때는 또 이런 성향이 강점으로 작용하더라. 최재천 교수님도 말씀하시길, 깊게 파려면 먼저 넓게 파야 된다. 삽이 처음부터 계속 깊게만 파면 무너져서 결국 못 파지 않나. 그래서 처음에는 넓게 파고 이후 깊게 들어가야 된다."
Q. 본인만의 철학이나 삶의 모토가 있나.
A. "최근에 계속 견지하고 있는 모토는 '가볍게 살자'다. 가볍게 살고 싶다. 이끼처럼 작고 얕게, 그리고 꾸준히 자라고 싶다. 또 이끼는 산불이 나거나 인간이 벌목해서 다 밀어버려도, 황폐화된 땅으로 먼저 날아와서 조금씩 잔잔바리로 살아간다. 그래서 다른 식물들이 그곳에 와서 살기 좋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끼처럼 이렇게 작게, 하지만 해나 폐 끼치지 않고 살고 싶다. 다른 생물들이 와서 잘 자랄 수 있도록 가볍고 선하게 말이다."
성 씨는 이끼 같은 삶의 태도가 절망을 이겨낼 수 있는 이유, 즉 희망의 이유이자 지속하는 힘이 되리라고 믿었다. 생명다양성재단을 이끌어가는 최재천 교수와 김산하 대표, 무엇보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로부터 가장 큰 영감을 받는다는 그였다. 절망이 팽배한 세상이지만 서로 멸종되지 않도록 잘 돌보자며 희망을 약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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