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기후위기 전문매체 뉴스펭귄이 인물 인터뷰 코너 [뉴펭의 지구인’터뷰]를 새로 시작했다.
[뉴펭의 지구인’터뷰] 시리즈는 지구를 구하기 위해 분투하는 인물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자 기획됐다. 지구'인(人)'을 만나 '인(In)'터뷰 하겠다는 중의적인 뜻을 담았다.
뉴스펭귄은 지난해 1월부터 ‘#지구해요’(지구를 구해요)를 슬로건 삼아 다양한 기사들을 다뤄왔다. 지구를 구하기 위해 행동하는 인물, 즉 지구인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집중적으로 조명하고자 한다.
[뉴스펭귄 남주원 기자] 코로나19 팬데믹, 모두에게 위기로 다가온 이 시기에도 기회를 만들어낸 사람이 있다. 계원예술대학교 리빙디자인과를 졸업한 1998년생 김하늘 디자이너다. 그는 속수무책으로 버려지는 플라스틱 마스크를 재활용해 의자, 벤치, 책 선반, 조명 등 작품을 만든다.
국내뿐만 아니라 뉴욕타임스와 로이터를 비롯해 각종 해외 유명 매체가 앞다투어 이 젊은 작가를 조명했다. 독일 재활용 디자인 어워드인 'Recycling Designpreis'에서 대상을 수상해 마르타헤르포드 미술관에서 전시를 했으며 2021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d-Revolution Award' 총감독상을 거머줬다.
가장 최근에는 현대자동차와 협업으로 카타르 월드컵 경기장 옆 피파 뮤지엄에 들어가는 큰 벤치들을 작업했다. 그 외에 무인양품, 아모레퍼시픽, 무신사, 록시땅, 이니스프리, 우리은행 등 기업들과 활발히 협업하고 다수의 강연과 다큐멘터리에 출연했다.
단연 요즘 가장 주목받는 가구 디자이너라고 할 수 있는 '슈퍼루키' 김하늘 씨를 무인양품 롯데월드몰점에서 만났다. 이곳에도 그가 만든 의자들이 설치돼 있다. 폐마스크 판재는 등받이와 좌판으로, 무인양품의 물푸레나무는 프레임으로 재탄생해 공간을 가득 채웠다.
학창 시절 내내 생활기록부 장래희망란에 '대통령'을 적어내던 소년은 어쩌다 '지속가능성'을 말하는 디자이너가 됐을까. 인터뷰를 하는 동안 시종일관 차분하면서도 힘이 느껴졌다. 어머니와 대학교 은사님, 친구들 이야기에는 애정 어린 따뜻함이 배어 나왔다.
스스로의 별로였던 모습마저 솔직하게 고백하는 그는 모순을 멀리하고 진실을 좇는 사람이었다. 가식 없고 꾸밈없는 모습에 어쩐지 이 신예 디자이너의 앞날이 더욱 기대됐다. 지금의 김하늘 작가가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를 부디 평생 간직하길 바라며,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Q. 폐마스크를 재활용한 작업,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A. "처음 마스크를 재활용해서 의자를 만들었던 때가 2020년도 연말이었어요.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졸업반이었죠. 졸업전에 출품할 작품을 연구하고 있는데 당시 코로나가 완전히 심각해질 무렵이었어요. 뉴스 등을 통해 코로나와 그로 인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환경오염 이슈를 자연스럽게 접하게 됐어요.
코로나 때문에 집안에 사람들이 머물게 되면서 배달 음식을 많이 시켜 먹고, 플라스틱 용기와 마스크를 매일 쓰고 버리는 문제가 생겼는데요. 저는 마스크 폐기 문제가 가장 충격적이었어요. 전 세계적으로 한 달에 1300억장 가까이 버려지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냥 많이 버려져서 문제가 되는 건지 또 다른 이유가 있는지 궁금해서 관련 기사들을 찾아봤어요. 마스크가 플라스틱 소재로 만들어져서 썩지 않고 해양까지 가는 큰 문제라는 사실을 알게 됐죠. 저는 마스크가 플라스틱이라고 생각을 못 했으니까 그 사실이 흥미로웠어요.
코로나 전에도 플라스틱 재활용 이슈는 굉장히 대두되고 있었어요. 그런데 플라스틱은 재활용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플라스틱 소재로 만든 마스크는 왜 재활용하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고, 그때부터 뭔가 될 것 같다는 생각에 시작을 하게 됐죠."
Q. 스툴(등받이와 팔걸이가 없는 의자)에 나사가 하나도 안 들어간다고 들었다.
A. "네 맞아요. 당시에 제가 조금 고집했던 것이 '100% 재활용'이에요. 사실 다리랑 좌판을 나사로 결합해도 되는데 그땐 1%라도 다른 소재가 들어가지 않길 바랐죠. 처음에는 나사나 접착제를 써보기도 했는데, 하다 보니 충분히 나사 없이 마스크로만 결합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결합까지도 마스크를 재활용해서 만들면 더 자신 있게 작품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Q. 하나의 작품이 완성되기 위해 어떤 식으로 작업이 진행되나.
A. "초반에는 학교에 마스크 수거함을 직접 설치했어요. 그렇게 모은 마스크를 귀에 거는 고무 끈과 코 부분을 조이는 철사를 제거하고, 플라스틱 소재인 마스크 필터만 따로 분리했습니다.
먼저 컴퓨터로 의자 좌판과 다리 모양으로 디자인 설계를 해요. 그런 다음 CNC 커팅이라는 기술을 사용해 설계한 도면대로 도려내서 나무 합판 위에다가 올려놓습니다. 원래 기존 의자는 그렇게 해서 나온 좌판이랑 다리들을 조립해서 완성되는 방식인데, 저는 그것들을 버리고 남겨진 틀을 거푸집으로 활용한 거죠.
틀 안을 얇은 알루미늄 테이프로 붙인 다음 마스크를 녹여요. 그 모양대로 공간을 가득 채울 때까지 마스크들을 틀 안에 넣고 녹인 다음에 천천히 식히고 굳혀요. 그것들을 꺼내면 다리가 완성됩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다리들을 좌판 쪽에 끼워놓고 또다시 마스크를 채워서 녹이면, 나사나 접착제 등이 없어도 좌판과 다리가 결합되는 거죠."
Q. 스툴 하나에 들어가는 마스크 양은.
A. "마스크마다 부피가 조금씩 다르니까 차이가 있겠지만 대략 1500장 정도 들어가요. 다리가 3개인 스툴의 경우 다리 하나에 250장 정도, 좌판에는 750장 정도 소요돼요."
Q. 마스크를 기부하고 싶다고 하는 분들도 굉장히 많다. 기부도 따로 받나.
A. "아니요. 기부는 받지 않고 있어요. 처음 작업할 때는 그냥 마구잡이로 버려진 마스크를 수거했어요. 그런데 제 작업이 조금씩 화제가 되면서 위생에 대한 걱정, 2차 감염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죠. 그런 이야기들을 무시하지 않았어요. 실제로 당시 작업을 다 중단하고 하나하나 말씀드리며 마스크 수거와 기부 요청을 거절했어요.
그러다 어떤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면서 경기도 화성시에 있는 마스크 제조 공장을 가게 됐는데 거기서 버려지는 마스크 쓰레기양이 엄청난 거예요. 두루마리 휴지처럼 커다란 롤에서 제조되는데, 마스크로 만들어지는 필터 이외에 발생하는 자투리 원단은 전부 버리더라고요. 폐기 업체에 그대로 넘겨서 소각하거나 매립한대요.
비교적 작은 공장인데도 불구하고 한 달에 거의 1톤 넘는 자투리 원단이 버려진다니 굉장히 심각하다고 생각했죠. 그때부터 공장에서 자투리 소재를 수급 받아서 지금까지 작업하고 있어요. 그러면서 위생이나 2차 감염에 대한 걱정을 잡을 수 있었고, 일정한 양을 꾸준히 받으니 계속해서 넉넉하게 작업할 수 있게 됐어요.
제일 중요했던 건 '버려지는 마스크'라는 같은 맥락이었기 때문에 작업을 할 수 있었죠."
Q. 작품 제작을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A. "기능적인 측면과 메시지적인 부분에서 말씀드릴게요. 우선 기능적으로는 실생활 속에서도 충분히 의자로써 기능할 수 있는 내구성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실제로 만지거나 앉아보지 못한 많은 분들이 '작품성은 강하지만 튼튼하지는 않겠어요', '실제로 앉을 수는 없는 거 아니에요?'라고 걱정을 하세요. 기성품처럼 완전 튼튼해서 평생 쓰는 목적으로 만드는 의자는 아닐지라도 내구성을 인정받는 일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작품 활동을 통해서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계속해서 변하는 듯해요. 지금으로서는 사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가장 친환경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우리는 무언가를 낭비해야 하니까... 사람들에게 경각심을 주려면 움직여야 하죠.
버려지는 것을 의자나 다른 작품들로 탄생시키면 작가의 메시지가 대중에게 조금이라도 영향을 끼칠 수 있잖아요. 일상 속에서 기본적인 분리배출이 될 수도 있고. 환경에 대한 작은 마음가짐이겠지만 그런 것들이 조금씩 바뀌어 나가면서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Q. 어렸을 적 꿈은.
A. "초등학생 때부터 중학생 때까지 9년 동안, 고등학생 때조차 계속 장래희망을 대통령이라고 적었어요.(웃음) 그런데 고등학생 때 선생님께서 장난치지 말라고 하시는 거예요. 장난 아니고 매번 이렇게 적어왔다고 말씀드렸더니, 제대로 된 걸 쓰라고 하셔서 싸우다가 그때 처음 디자이너라고 바꿨죠.
지금은 누가 대통령 시켜준다고 해도 하고 싶지 않아요. 장래희망을 대통령이라고 계속 적었던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어린 시절에는 대통령이 대중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선사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디자이너로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 '내가 왜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했을까' 생각을 해보면 나로 인해 주변이든 사회적으로든 좋은 변화를 주고 싶은 욕구가 그땐 대통령이 꿈이라고 착각했던 것 같아요. 제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닿았으면 좋겠고, 그럴 때 희열을 느끼기도 하고 더 열심히 작업하게 돼요."
Q. 부모님 영향을 많이 받았나.
A. "어머니가 올해로 15년째 목공방을 운영하고 계세요. 한 5년 전부터 제주도로 작업실을 옮기셨고요. 실제로 작업할 때 와서 봐주신다거나 조언을 해주세요. 애초에 어떤 소재를 다루는 디자이너든 나무 작업이 기본이 되기 때문에 기초적인 부분을 탄탄하게 잡을 수 있었죠.
무인양품과 협업했을 때는 나무를 결합하는 방식 등 어머니 조언을 들으러 제주에 내려가서 만들기도 했어요. 이 하얀 부분은 제가 한 거고 나머지는 다 어머니가 조언을 해주셨어요."
Q. 취미나 관심사는.
A. "뉴스를 많이 봐요. 솔직히 처음부터 환경 문제에 관심이 있던 건 아니에요. 오히려 지금의 작업을 시작하면서 공부하게 됐는데, 돌이켜보면 꼭 환경이 아니더라도 사회 전반적인 이슈에 대해서는 굉장히 호기심이 많았어요. 휴대폰으로라도 보고 TV에서 기술 관련해서도 자주 보고. 결국 사회 전반적인 문제에 환경도 포함돼 있으니까요.
요리도 취미예요. 마스크 재활용 작업을 통해 작품 활동을 하는 일도 저만의 레시피를 만들어가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요리처럼 레시피가 있는 것들을 순서대로 딱딱딱 맞춰서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에 흥미를 느끼는 듯해요."
Q. 존경하거나 혹은 닮고 싶은 인물이 있다면.
A. "황형신 작가. 작가님이자 대학교 때 제 교수님이신데 그분의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작업적으로도 굉장히 영감을 받았고 배웠지만, 실질적으로 제가 아무것도 몰랐을 때 현실적인 조언들을 많이 해주셨어요. 학생 시절에 수익이 생기면서 세금 같은 것들도 공부를 해야 되잖아요. 다른 작가님이나 누구한테 물어볼 수 없는 그런 것들. 작업뿐만 아니라 그 외의 것들을 모두 조언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또 누가 있을까 싶죠.
정말 아낌없이 알려주시고 따뜻하고, 그런 태도에서도 배울 점이 많은 분이에요. 저는 이제야 작업을 2년 했는데 그분은 거의 몇십 년을 하셨어요. 저도 한 번 이슈가 되고 휘발성인 작가가 아니라 교수님처럼 꾸준히, 묵묵하게 긴 세월 동안 활동하고 싶어요. 제가 정말 존경하고 닮고 싶은 사람이에요."
Q. 젊은 나이에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각종 유명 매체들과 인터뷰, 협업 이후 개인적으로 달라진 점이 있다면.
A. "자신감. 마스크로 하는 작업 전에도 개인적으로 어머니한테 많이 배워서 사업을 하기도 했고 다른 작품 활동도 했는데 이슈가 된 적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이제 시대를 잘 맞고 운이 따라주면서 제 작업이 사랑받으니까 자신감이 생겼어요.
작가하겠다는 선배, 형 누나들 보면 아직까지도 이슈가 안 돼서 힘들어하다 결국 포기하고 다른 길로 나가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저도 올해 안 되면 다른 길을 알아봐야겠다고 생각하던 타이밍이었죠.
그전에도 자신감은 있었지만 자신감만으로는 언젠가 꺾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제는 바쁘게 작업도 하고 '내가 이렇게 작품 활동을 하는 게 맞았구나'라는 확신을 느끼면서 더 당당하게, 열심히 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자신감과 자만, 한 끗 차이일 것 같다.
A. "너무 집중을 받으니까 자만해서 한번 크게 흔들리고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왔던 적이 있어요. 예전부터 같이 살았고 지금은 팀원인 친구가 있는데요. 그 친구랑도 공감하는 게, 학교 다닐 때는 너무 돈이 없어서 맨날 라면 먹고 월세 15만원짜리 살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작업이 이렇게 이슈가 되고 현실적으로 그때보다는 여유가 생기니까 사람이 순간 자만을 하게 되더라고요.
물론 지금은 잘 컨트롤하고 밸런스를 맞추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당시에는 괜히 친구들 연락이 와도 '나 지금 좀 바빠' 그런 적도 있었고. 한때 한순간이었지만 내가 최고라는 생각도 했어요.
그때 친구가 저한테 정신 차리라는 얘기를 굉장히 많이 해줬어요. 초심을 잃으면 당연히 누구든 끝난다는 사실을 저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잠깐 취했다가 다시 돌아왔죠. 제일 중요한 건 누가 뭐라고 해도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면 바뀌지 않는데, 어느 순간 저도 '이거 잃어버리면 난 아무것도 없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묵묵히 자만하지 않고 열심히 작업하는 태도가 진짜 맞다는 걸 깨달았죠."
Q. 작업을 하며 힘든 순간과 행복한 순간이 있을 텐데.
A. "시작과 끝에서 가장 큰 행복을 느껴요. 누구나 당연히 그 과정은 힘드니까. 프로젝트가 성사됐을 때와 이후 힘든 과정을 통해서 멋있게 결과로 만들어놨을 때 가장 기쁘고 희열을 느끼죠. 하나를 잘 끝마치면 잠깐 성취감을 느끼잖아요. 무척 짧기는 하지만 그 덕분에 또 다른 작업을 하고 공부하게 되는 것 같아요.
힘들 때는 아무래도 그 과정에서 최소 다섯 번은 삐끗해요. 그때마다 너무 힘들죠. '안 되겠다. 포기하자' 하다가도 이렇게 저렇게 조치하고 만회하죠. 여태까지는 잘 해내왔다고 생각하는데, 어떤 프로젝트에서는 결과조차도 조금 만족스럽지 못한 적이 있어요. 유일하게 성취감을 느낄 때인데 그러지 못하니까 힘들었죠."
Q. 영감은 주로 어디서 얻나.
A. "제가 애초에 모방을 싫어하기도 하고, 내가 이렇게 하면 잘 되겠다는 걸 한번 느끼고 나서부터는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참고 정도만 하고 따라 하려고 하지는 않아요.
갑자기 떠오르는 영감에 대해 메모했던 수첩이라든지 어머니한테도 영향을 많이 받고요. 또 아예 가구가 아닌 다른 것들에서 영감을 받아요. 만약 어떤 새로운 의자를 만들려고 하면, 다른 의자의 디자인을 참고하기보다는 다른 사물이나 형태에서 캐치해요. 그럴 때 뭔가 새로운 게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Q. 업사이클링 작품 활동 외에도 일상 속에서 환경보호를 실천하고 있는지.
A. "아직까지도 거짓말을 너무 못해서... 100% 매뉴얼에 맞게 분리배출을 하고 있지는 못한 것 같아요. 예전에는 분리배출을 아예 신경도 안 썼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제가 강연에서 환경을 주제로 낮에 막 떠들고 왔는데, 저녁에 떡볶이를 배달해서 먹고는 그냥 뚜껑 닫고 던져놓는 거예요. 그때 갑자기 스스로에 대해 현타가 세게 왔어요. '객관적으로 봤을 때 나 너무 별로다...' 하고 말이죠.
마스크를 재활용하면서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왔는데 정작 분리배출은 제대로 안 하고 있는 거죠. 갑자기 밀린 숙제를 하듯 공부하고 뒤늦게 노력하고 있어요. 제가 이렇게 생활하면서 주변에 분리배출을 잘 안 하던 지인들에게도 작은 변화가 생기고 있고요."
Q. 팀 '서버번피플(Suburbanpeople)'을 꾸렸다. 어떻게 탄생하게 됐나.
A. "일이 막 들어오는데 혼자서 쳐낼 역량이 안 됐어요. 처음에는 혼자 밤새우고 해봤는데 역부족이어서 당시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이 도와주는 식으로 계속 같이 작업했어요. 그런데 너무 잘 맞는 거예요. '우리 그냥 같이 해보자' 해서 그때부터 하나의 팀이 돼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있어요.
서버번피플은 직역하면 '도시 외곽에 있는 사람들'이라는 뜻이고 의역하면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저희가 환경, 업사이클링, 지속가능성과 관련한 작업들을 하다 보니까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가 생겼어요. 직군, 나이, 성별 이런 것들 다 불문하고 당연히 같이 동참하고 고민해야 하는 문제라고.
우리만 이렇게 특별하게 하는 활동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었어요. 우리는 평범한 사람들이고 누구나 당연히 해야 하는 일들을 해나가고 있다고요. 팀원은 원래 4명인데 한 명이 해외로 공부하러 나가서 지금은 3명이 하고 있어요."
Q. 고민이 있다면.
A. "친환경이나 지속가능성을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정말 근본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사실 이것도 환경을 위한 행위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버려지는 소재를 재활용해서 의자나 가구 등 다른 기능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고 있지만 결국 그것도 버려지게 되잖아요.
그럼에도 하고 있는 이유는 아까 말씀드렸듯이 메시지를 줄 수 있으니까. 우리는 움직이지 않을 수 없고 세상은 돌아가니까. 그 안에서 어쩔 수 없이 우리가 해야 하는 활동이라면 조금 더 낭비하지 않고, 모순되지 않고 진정으로 업사이클링 하는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 그게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Q. 본인만의 철학이나 삶의 모토는.
A. "모순되지 않는 사람. 제가 모순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데, 제 작업 활동을 하면서도 마찬가지예요.
예전에 어떤 기업과 협업해서 폐박스를 재활용하는 업사이클링 프로젝트를 했어요. 그런데 기업에서 저희 작업실로 보내준 박스들이 폐박스가 아니라 완전 새 박스인 거예요. 박스에 기업 로고가 떡하니 박혀 있고 한 박스도 아닌 백 박스가 이렇게 정말 높게 쌓여져 있는데... 그때 그 기업의 태도가 싫었어요.
제가 이 작업을 해야 된다는 스스로의 모습도 싫었죠. 그건 진짜가 아니니까. 그때 또 느꼈었던 것 같아요. 이걸 돈벌이로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안타까우면서도, 혹시 나도 그렇게 비칠 수도 있겠다는 생각. 걱정도 많이 했지만 나는 저렇게 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죠."
Q. 환경보호 작가로서 행보, 계속 이어나갈 생각인가.
A. "저도 아직은 예측하지 못할 것 같아요. 내년 여름까지 일정이 잡혀 있어서 일단은 잘 헤쳐나가는 게 저의 임무라고 생각을 하고요. 그때마다 저도 계속해서 느끼게 되는 것들이 있을 테니까.
다만 '친환경', '환경오염' 이런 키워드보다는 '지속가능성'이라는 키워드에 조금 더 초점을 두고 활동하고 싶기는 해요. 지속가능하다는 이야기는 업사이클링이 될 수도, 우리 생활 방식에 대한 태도가 될 수도, 사람 간의 오고 가는 감정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지금까지는 버려지는 마스크를 활용해서 주로 작업하고 있지만 또 다른 폐소재에 대한 지속가능한 연구도 동반하면서 조금 더 폭을 넓혀가려고 해요."
Q.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는.
A. "아직까지는 의자나 벤치, 조명 같은 가구 카테고리 안에서 작업하고 있는데 나중에는 공간을 만드는 것에 대한 욕심이 있어요. 지속가능한 소재로 하나의 커다란 공간을 디자인하는 것.
더 나아가서는 작품성보다는 제품성이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지금은 수공으로 하면서 작품성이 조금 짙은 작업들을 해내고 있는데, 더 만질 수 있고 막 다룰 수 있어서 진짜 대중 곁에 있을 수 있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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