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석탄 선언 1000일'에 소송 당한 국민연금 임원들

  • 이수연 기자
  • 2024.02.22 16:11

석탄발전 인근 주민 35명, 국내 처음 개인상대 '기후책임' 물어

[뉴스펭귄 이수연 기자] 국민연금이 '탈석탄 투자'를 선언한 지 1000일이 지났지만 오히려 석탄투자액이 늘어난 가운데, 석탄발전소 인근 주민 등 35명이 국민연금 이사장 등을 상대로 소송을 냈다. 정책결정자 개인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취지다.

국민연금 가입자 35명은 김태현 국민연금공단(이하 국민연금) 이사장과 서원주 기금이사, 류지영 감사 등 3명을 상대로 22일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2021년 5월 28일 '신규 석탄투자 중단'을 선언한 이후 지금까지 관련 정책을 수립하지 않아 건강과 재무적 피해를 본다는 이유에서다. 석탄발전소가 초래하는 대기오염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치고, 전세계 탈석탄 흐름 속 석탄투자는 기금 손실로 이어진다는 것.

이들은 상법 401조와 공공기관운영법 35조를 근거로, 국민연금 임원들이 이사와 감사의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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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후소송에서 개인에게 법적 책임을 물은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날은 국민연금이 탈석탄을 선언한 지 1000일이 되는 날이다.

이번 소송에는 경상남도 석탄발전소 인근에 사는 주민 3명도 원고로 참여했다. 이들은 국민연금이 직간접적으로 투자해온 석탄발전소의 대기오염 물질로 각종 호흡기질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호소했다. 석탄발전은 온실가스 배출량이 큰 에너지원으로 '기후위기 주범'으로 꼽히며, 대기오염을 유발해 건강에 악영향을 미친다.

앞서 핀란드 에너지청정대기연구센터와 기후솔루션이 공동으로 수행한 연구는 국민연금의 석탄발전 투자로 발생한 2021~22년 건강피해액이 1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소송 원고로 참여한 김민 씨는 "내가 낸 보험료가 내 미래를 위협하는 곳에 쓰이는 상황에서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원망스러울 뿐"이라며 "국민연금은 우리가 낸 보험료를 화석연료가 아닌 재생에너지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소송을 담당한 기후솔루션 김현지 변호사는 "지금까지 기후소송들은 기업을 대상으로 했지만 실제 내부에서 중요한 결정을 하는 임원들에게 책임을 묻기 위해 처음으로 개인에게 소송을 제기했다"고 말했다.

원고들은 1인당 2050만원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2050은 국가 탄소중립 기본계획에 따라 온실가스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들기로 한 2050년을 상징하는 숫자다. 

이날 경남환경운동연합과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빅웨이브, 60+기후행동, 기후솔루션 등 5개 단체는 소송인과 함께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석탄투자 제한 정책 수립과 이행 △구체적인 금융 배출량 감축 계획 발표 등을 요구했다.

국민연금이 투자한 석탄발전소가 대기오염을 초래해 주민이 건강피해를 본다는 퍼포먼스. (사진 기후솔루션)/뉴스펭귄
국민연금이 투자한 석탄발전소가 대기오염을 초래해 주민이 건강피해를 본다는 퍼포먼스. (사진 기후솔루션)/뉴스펭귄

 

'탈석탄 선언 1000일'
한전채 보유액은 2배 늘어

실제 국민연금은 석탄발전 의존도가 높은 한국전력 투자를 계속해서 늘린 것으로 나타났다.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지난해 5월 기준 국민연금의 한전채 보유액은 15조2000억원으로, 탈석탄을 선언한 2021년 8조9900억원과 비교해 3년 만에 1.7배 늘었다. 2018년 5조5600억원과 비교하면 5년 만에 3배 늘어났다. 한국중부발전 등 한전 발전자회사에 대한 채권 투자액도 2018년 10조2400억원에서 지난해 5월 18조9800억원으로 85.4% 상승했다.

독일 환경단체 우르게발트가 발표한 2023년 '세계 석탄 퇴출 리스트'에서 국민연금의 석탄발전 투자액은 총 13조2090억원에 달한다. 세계 석탄 퇴출 리스트는 석탄발전 산업에 기여하는 전세계 기관과 기업을 공개하는 데이터베이스다.

2023 세계 석탄 퇴출 리스트에 올라온 국민연금 석탄투자액. (사진 기후솔루션)/뉴스펭귄
2023 세계 석탄 퇴출 리스트에 올라온 국민연금 석탄투자액. (사진 기후솔루션)/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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