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상괭이 뱃속에 4개의 낚싯바늘… 말없는 돌고래의 증언

  • 최나영 기자
  • 2022.07.21 09:00

제주 연안서 발견된 상괭이 부검 현장
'멸종위기' 상괭이 두 종의 사인은 ‘질식사’…그물에 걸렸을 가능성 높아

상괭이 (사진 고래연구센터)/뉴스팽귄
상괭이 (사진 고래연구센터)/뉴스팽귄

[뉴스펭귄 최나영 기자] 인도태평양상괭이 위장을 가르자 셀 수 없이 많은 기생충이 쏟아져나왔다. 연구원과 학생들이 기생충 뭉치를 살금살금 살펴봤더니 그 사이로 낚싯바늘과 낚싯줄의 형체가 조금씩 확인되기 시작했다. 이후 얽히고설킨 기생충과 낚시줄 뭉치를 몇 차례를 씻어내자 갈고리 모양의 낚싯바늘과 낚싯줄이 온전히 제 모습을 드러냈다. 확인된 낚싯바늘의 개수는 총 4개. 그 중 가장 긴 낚싯바늘은 5㎝였고, 4.5㎝짜리 낚싯바늘도 두 개나 됐다. 나머지 하나는 3㎝였다. 낚싯줄 길이는 2m에 달했다.

지난 19일 제주도 제주시 한국수산자원공단 제주본부에서 진행된 ‘2022 제주권역 해양포유류 부검교육’ 현장에서다. 이번 부검교육은 제주 연안에서 죽은 채 발견되는 해양포유류의 폐사 원인 분석과 이를 통한 해양포유류 전문가 양성을 위해 진행됐다. 제주대 고래‧해양생물보전연구센터와 서울대 수의학과 주관으로 전국 10개 대학 수의과 대학 학생과 연구원 등 26명가량이 참여했다. 한국수산자원공단 제주본부 관계자는 “공단 제주본부는 해양포유류 부검교육을 위한 장소를 대학 등에 매년 제공하고 있다”고 전했다. 지난 18일 시작한 올해 부검교육은 22일까지 진행된다.

 

지난 19일 수의학과 학생과 연구원 등이 인도태평양상괭이를 부검한 결과, 위장에서 낚싯바늘 4개가 나왔다. (사진 최나영 기자)/뉴스펭귄
수의학과 학생과 연구원 등이 지난 19일 인도태평양상괭이를 부검한 결과, 위장에서 낚싯바늘 4개가 나왔다. (사진 최나영 기자)/뉴스펭귄

제주 연안서 발견된 인도태평양상괭이 사체
낚싯바늘 삼켜 약해진 상태서 그물 걸려 ‘질식사’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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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에서 첫 부검이 진행된 이 날은 총 3마리의 돌고래 사체가 부검대에 올랐다. 상괭이, 남방큰돌고래, 인도태평양상괭이 각 1개체씩이었다. 이 중 위장에서 4개의 낚싯바늘이 발견된 개체는 지난 3월16일 제주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 해안에서 죽은 채 발견된 인도태평양상괭이다. 이 개체는 길이가 171㎝로 외형은 비교적 깨끗한 상태였다.

인도태평양상괭이는 주로 남중국해역이나 인도양을 비롯한 해역에 분포하는 종으로, 한반도 인근 해역에서는 흔하게 발견되지 않는 개체다. 이번 행사에서 돌고래 부검을 총괄한 이성빈 서울대 수의과대학 수생생물의학실 수의사는 “이 개체는 크게 부패되지 않고 신선한 상태로 발견된 것으로 봐서 살아 있는 상태에서 제주도 해역 인근까지 온 것 같다”며 “기후변화로 인한 수온 변화의 영향으로 제주 해역까지 왔을 수도 있고 먹이를 찾아서 왔을 수도 있지만 정확한 원인은 확실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수의학과 학생과 연구원 등이 지난 19일 한국수산자원공단 제주본부에서 인도태평양상괭이를 부검하고 있다. (사진 최나영 기자)/뉴스펭귄
수의학과 학생과 연구원 등이 지난 19일 한국수산자원공단 제주본부에서 인도태평양상괭이를 부검하고 있다. (사진 최나영 기자)/뉴스펭귄

이 개체는 다소 마른 상태였다. 낚싯줄과 낚싯바늘을 삼킨 탓에 제대로 먹지 못한 것으로 분석됐다. 소화 속도가 느려 위에 있는 내용물이 쌓이고 면역력이 약해져 기생충도 위장에 가득 찼던 것으로 보인다.

폐와 기도에서는 포말(거품)이 발견돼 직접적인 사인은 질식사로 추정됐다. 어업활동을 위해 던져진 그물에 걸려 익사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연구진은 추측했다. 해당 개체가 인간이 던져 놓은 낚싯바늘을 삼켜 약해진 상태에서, 역시 인간이 어업활동 과정에서 쳐 놓은 그물에 걸려 질식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상괭이는 머리 위쪽에 있는 숨구멍으로 숨을 쉬기 때문에 호흡을 하기 위해 주기적으로 수면 위로 올라와야 하는데, 그물에 걸리면 제대로 숨을 쉬지 못해 질식사할 수 있다.

이 수의사는 “해당 개체가 낚싯줄과 낚싯바늘을 삼켜 제대로 먹지 못해 야위고, 면역력이 약해져 위장 내 기생충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상태에서 그물에 걸려 질식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연구진들은 해당 상괭이가 국내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드문 만큼, 이 개체의 골격을 고래연구센터에 보내 연구자료에 활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또다른 상괭이도 36㎝ 태아 품은채 ‘질식사’

또 다른 상괭이의 사인 역시 질식사로 추정돼, 혼획(어업 활동 중 우연히 걸려 포획)돼 죽었을 가능성이 제시됐다. 이 상괭이의 폐와 기관에서도 포말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개체는 길이가 148㎝ 가량으로, 12월20일 제주시 협재해수욕장 부근에서 발견됐다. 토종 돌고래인 이 상괭이는 피부가 벗겨지고 왼쪽 안구가 소실될 뿐 아니라 곳곳이 골절된 상태였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이 개체는 새끼를 임신한 상태였다는 점이다. 이날 부검에서 수의학과 학생과 연구진들이 상괭이의 자궁을 열자 36.5㎝ 가량의 수컷 상괭이의 모습이 드러났다. 상괭이는 임신 기간이 약 10개월인데, 이 태아는 4~5개월 정도 어미의 자궁 속에서 자라고 있었던 것으로 연구팀은 추정했다. 그밖에 남방큰돌고래는 자연사 또는 원인불명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지난 4월 제주시 한림읍 월령리 포구에서 발견된 이 남방큰돌고래는 부검된 다른 두 상괭이보다 회색빛이 짙고 몸집도 더 컸다.

 

제주 연안에서 발견된 상괭이 사체 부검 전 찍은 CT 촬영에서 태아가 확인됐다. (사진 서울대 수의과대학 수생생물의학실 제공)/뉴스펭귄
제주 연안에서 발견된 상괭이 사체 부검 전 찍은 CT 촬영에서 태아가 확인됐다. (사진 서울대 수의과대학 수생생물의학실 제공)/뉴스펭귄

상괭이‧남방큰돌고래 사체 제주 연안서 최근 꾸준히 발견돼
주된 사인은 인간의 '어업활동' 가능성 높아

연구진들은 이번 부검 사례를 포함해, 부검을 했을 때 상괭이의 사인이 질식사로 밝혀지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인간의 어업활동 과정에서 다수의 상괭이가 혼획된 뒤 바다에 버려져 죽고 있을 가능성이 높게 제기되는 이유다. 이번 행사를 주도한 김병엽 제주대 해양과학대학 교수는 “해양포유류 부검교육을 2015년부터 하고 있는데 부검을 한 개체의 60~70%는 사인이 질식사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상괭이는 해양수산부가 지정한 해양보호생물이자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에 따르면 국내 해역에서 서식하는 상괭이 개체 수는 2005년 3만6000마리에서 2011년 1만3000마리로 64%가량 감소했다. 김 교수는 “지난 3년 동안에도 제주 연안에는 상괭이 사체가 지속적으로 발견되고 있다”고 전했다.

제주대 고래‧해양생물보전연구센터에 따르면 제주 연안에서 사체로 발견된 상괭이는 2019년 45마리, 2020년 55마리, 지난해 53마리, 올 들어 지난달까지 30마리 등이다. ‘웃는 돌고래’라고도 알려진 토종 돌고래 상괭이는 해양수산부가 지정한 해양보호생물이자 국제적 멸종위기종이다. 서남해에서 주로 서식하는데, 제주 해역에서도 서식하는 것이 확인됐다.

수의학과 학생과 연구원 등이 지난 19일 남방큰돌고래 사체를 부검하고 있다. (사진 최나영 기자) / 뉴스펭귄
수의학과 학생과 연구원 등이 지난 19일 남방큰돌고래 사체를 부검하고 있다. (사진 최나영 기자) / 뉴스펭귄

연구진들은 남방큰돌고래 보호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남방큰돌고래 사체도 최근 제주 연안에서 꾸준히 발견되고 있다. 김 교수는 “최근 6년 정도는 매년 평균 10마리 정도가 남방큰돌고래 사체가 제주도 연안에서 발견되는 것 같다”며 “제주 남방큰돌고래 개체 수가 120마리 정도에 그친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사체 수가 적은 것이 아니다”고 우려했다.

남방큰돌고래도 해수부 지정 해양보호생물이다. 한반도에서는 제주 연안에서만 서식한다. 제주 연안에 사는 남방큰돌고래는 약 100~120마리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교수에 따르면 제주 남방큰돌고래들도 부검을 하면 사인이 질식사로 확인되는 경우가 많다. 연안 가까이에 붙어서 사는 만큼 연안 개발로 인한 환경오염이나 소음 등도 남방큰돌고래의 개체 수 감소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수의사는 “질식사가 확인된 개체가 모두 그물에 걸려 죽었다고 확정은 못하지만, 그물이나 폐그물에 걸려 죽는 사례는 실제로 많은 만큼 개선책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고래는 생태계에서 중요하고 고래가 없으면 다른 어류 자원에도 문제가 생겨 사람에게 돌아오는 만큼 고래가 죽어 나가는 것을 방지하는 대책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주 남방큰돌고래 (사진 핫핑크돌핀스)/뉴스펭귄
제주 남방큰돌고래 (사진 핫핑크돌핀스)/뉴스펭귄

“상괭이‧남방큰돌고래 폐사 원인 연구할 인력‧예산 부족”

한편 일각에선 상괭이나 남방큰돌고래 같은 돌고래를 보호하기 위해선 돌고래 폐사 원인을 밝히는 연구가 더 활성화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연구진과 환경단체들은 돌고래 폐사 원인을 밝히는 연구를 위한 인력이나 예산이 부족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조약골 핫핑크돌핀스 대표는 “상괭이나 남방큰돌고래를 비롯한 돌고래 사체를 제주도에서 밝힐 만한 인프라가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다”며 “제주도에서는 이번 부검교육처럼 1년에 두 번 정도 수의과 학생이나 수의사가 와서 부검을 하는데, 돌고래 사체가 한 번 냉동되기 시작하면 밝힐 수 있는 부분이 줄어든다”고 말했다.

이어 “제주도에서 해양생물이 죽었을 때 사인을 밝힐 수 있는 체제가 마련되고 예산과 인력 등이 지원돼야 현장에서 상시적이고 적극적인 대처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부검교육에 사용되는 해양포유류들은 제주대가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제주도 연안에 사체로 밀려들어온 것을 확보해 공단 제주본부 냉동고에 보관해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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