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최나영 기자] “장 내부에서 그물이랑 비닐 같은 것이 나왔거든요. 매우 수척한 상태로 죽은 채 발견됐는데요. 이런 플라스틱 폐기물을 삼켜 소화불량으로 먹이도 잘 먹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26일 이성빈 서울대 수의학과 수생생물의학실 수의사가 최근 올리브각시바다거북을 부검한 결과를 설명하며 말했다. 서울대와 제주대를 비롯한 10여개 대학 학생과 연구원들은 지난 21일 제주도 제주시 한국수산자원공단 제주본부에서 폐사 원인 분석을 위해 바다거북 사체 4마리를 부검했다. 부검한 바다거북은 푸른바다거북, 붉은바다거북, 올리브각시바다거북, 매부리바다거북 각 1개체씩이었다. 모두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4월까지 제주 연안에서 죽은 채 발견된 개체들이다.
인간이 버린 플라스틱 삼킨 상태에서
인간이 친 그물에 걸려 질식사했을 가능성 높아
부검 결과 올리브각시바다거북 장 내부에서 초록색 그물과 스티로폼, 고무를 비롯한 폐기물이 발견됐다. 59㎝ 길이의 이 개체는 지난해 11월 제주 연안에서 수척한 상태로 발견됐다. 이 수의사는 “그물 등을 삼켜 소화불량 때문에 잘 못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궤양으로 의심되는 출혈도 보였는데 이 또한 먹이를 잘 먹지 못하게 된 원인 중 하나인 것 같다”고 추정했다.
기관과 폐에서는 포말성 액체(거품)이 발견됐다. 이를 통해 직접적인 사인은 질식사로 추정됐다. 바다거북은 폐호흡을 하기 때문에 그물에 갇히면 수면 위로 나가 호흡을 할 수 없어 익사한다. 결국 인간이 만들고 버린 폐기물을 먹고 약해진 바다거북이 인간의 어업 활동 과정에서 혼획(그물에 우연히 걸려 잡힘)돼 익사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붉은바다거북 사체의 경우 오른쪽 앞다리에 굵은 낚싯줄이 꽁꽁 감겨 있었다. 기관 내에는 끈적한 액체와 혈액이 차 있었다. 질식사 가능성이 제시됐다. 정원준 서울대 수의학과 수생생물의학실 수의사는 “확실하진 않지만 이 개체 또한 그물에 의해 질식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바다거북의 길이는 114.2㎝였다. 매부리바다거북은 부패가 심해 사인 추측이 어려웠다. 푸른바다거북은 식도가 주먹 크기만큼 부어 있었다.
“폐어구‧혼획으로 죽은 바다거북 최근 부쩍 많이 발견돼”
바다거북 분별 능력 떨어져 비닐을 먹이로 착각하기도
이번 부검에서만이 아니다. 바다거북이 인간이 버린 해양쓰레기로 인해 위협받는 정황이 발견된 사례는 적지 않다. 한국해양과학기술원(KIOST)은 국내 연안에서 혼획‧좌초‧표류한 바다거북 사체 중 34마리를 2017년부터 최근까지 부검한 결과 28마리가 해양 플라스틱을 섭식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지난달 밝혔다. 바다거북 뱃속에서 발견된 주로 발견된 플라스틱은 육상에서 바다로 유입된 일회용 포장재와 어업 기원 쓰레기였다.
상업적 어업활동 과정에서의 혼획‧폐어구도 바다거북을 위협하는 주된 요인으로 꼽힌다. 김병엽 제주대 해양과학대학 교수는 “최근에 혼획‧폐어구로 인해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바다거북이 부쩍 많이 발견되고 있다”며 “부검을 했을 때 질식사 소견이 나오는 개체도 있고 그물에 걸린 채 죽어서 발견되는 개체도 있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그물에 걸린 뒤 꼬여가는 그물에) 다리가 잘려서 발견되는 개체도 있고, 그물에 걸렸지만 다행히 산 채로 뭍으로 나와서 구조되는 개체도 있다”고 덧붙였다.
국립해양생물자원관에 따르면 바다거북은 물에 들어갈 때 콧구멍 근육을 써서 콧구멍을 막는 탓에 냄새를 맡지 못해 비닐류를 먹이로 착각해서 먹게 되는 경우가 많다. 김 교수도 “주파수를 통해 사물을 구분하는 고래와 달리 바다거북은 사물을 잘 분별하지 못하는 편”이라며 “비닐 같은 경우는 해파리나 해초 같은 것으로 착각해 먹어버리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국내 서식 바다거북 5종도 모두 해양보호생물
현재 바다거북은 전 세계에 7종이 분포한다. 이 중 국내 해역에서는 붉은바다거북, 푸른바다거북, 매부리바다거북, 장수거북, 올리브각시거북 등 총 5종이 서식하고 있다. 해양수산부는 5종을 모두 해양보호생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따르면 바다거북 7종은 모두 멸종위기 범주에 포함된다.
한편 이번 부검은 제주대 고래‧해양생물보전센터와 서울대 수의학과가 주관한 ‘2022 제주권역 해양포유류 부검교육’의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진행됐다. 교육 기간은 지난 18일부터 22일까지였다. 지난 19일엔 돌고래 부검이 이뤄졌는데, 결과 상괭이 위장에서 낚싯줄과 낚싯바늘이 발견됐다. <'상괭이 뱃속에 4개의 낚싯바늘… 말없는 돌고래의 증언' 기사 참조> 직접적 사인은 질식사였다. 낚싯바늘을 삼겨 몸이 약해진 상태에서 그물에 걸려 죽었을 가능성이 제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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