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호랑이 종 보전 기관 될 것" 백두대간에는 산군(山君)이 산다

  • 남주원 기자
  • 2021.10.03 00:05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숲에 있는 호랑이 (사진 남주원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 남주원 기자] 인적 드문 첩첩산중.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에 위치한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는 '호랑이숲'이 있다. 우리 땅에서 사라진 지 100여 년이 된 백두산호랑이 보전을 위해 조성된 이 숲은 축구장 7개에 달하는 면적 4만 8000㎡로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예부터 우리 선조에게 호랑이는 두려움의 대상이자 동시에 경외감을 일으키는 존재였다. 조상들은 호랑이를 산을 지키고 다스리는 신, 즉 '산군'(山君)이라고 이르며 숭배했다. 각종 민화와 설화에는 호랑이가 무섭지만 매력적인 자태로 등장하곤 한다. 88서울올림픽 때는 '호돌이'라는 호랑이 캐릭터가 현상공모 1위를 거머쥐며 공식 마스코트로 당선됐을 만큼, 호랑이를 향한 한국 국민들의 관심은 지대하다. 

지난 겨울까지만 해도 국내 백두산호랑이계 맏형이었던 두만이가 살았고, 곧 에버랜드 인기스타 태범과 무궁이 옮겨 올 계획이라 엄청난 주목을 받고 있는 이곳. 뉴스펭귄은 드넓고 푸르른 백두대간의 정기를 받으며 지내고 있는 호랑이들을 보기 위해 직접 수목원 호랑이숲을 찾아갔다. 호랑이와 특별한 눈 맞춤을 나눈 기자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백두산호랑이보존센터에서 근무 중인 민경록(41) 주임으로부터 몇 가지 이야기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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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수목원 준비 기간부터 현재까지 일하고 있는 민 주임은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백두산호랑이보존센터에서 사육·기획·행정 등 업무를 맡고 있다. 호랑이에 대한 애착으로 이곳에 지원, 근무하게 됐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숲에 있는 호랑이 (사진 남주원 기자)/뉴스펭귄

민경록 주임은 "백두산호랑이보존센터는 국내에서는 이미 멸종된 호랑이의 종 보전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부서"라며 "자연에 가까운 시설을 구축하고 넓은 활동공간을 제공하는 등 호랑이를 위한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고, 동물 복지적 접근을 통해 시설을 관리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현재 백두산호랑이보존센터는 국내 호랑이 종 보전 역할을 수행하는 기관으로 발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면서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격려를 통해 최고의 호랑이 종 보전 기관으로 발돋움 하기를 기원한다"고 전했다. 

백두산호랑이보존센터는 원래 호랑이숲에서 '동물관리동'으로 불리는 시설이었다. 지난해 7월 29일 세계 호랑이의 날(International Tiger Day)을 맞아 '동물관리동'에서 '백두산호랑이보존센터'로 본격 탈바꿈했다. 이 같은 큰 변화는 호랑이숲 운영 목적을 '전시'를 뛰어넘어 '보전'으로 전환하려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측의 강한 의지로부터 비롯됐다.

지금까지는 호랑이가 그저 전시의 대상이었다면, 앞으로는 진정한 보존에 집중해 그들의 야생성 회복을 돕는 기관으로 거듭나고자 새롭게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이에 따라 행동풍부화 등 다양한 활동과 함께 이곳 호랑이들에게 최대한 자연 상태에 가까운 서식지를 제공하겠다는 입장이다.

물속에서 공놀이를 즐기고 있는 백두산호랑이 우리 (사진 '호시탐탐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 공식 유튜브 영상 캡처)/뉴스펭귄

행동풍부화란 호랑이에게 자연과 유사한 환경을 만들어 줌으로써 야생에서 보여줄 수 있는 행동을 유도하고 신체적·정신적 건강에 도움을 주는 동물복지 프로그램을 말한다. 먹이풍부화, 사회성풍부화, 환경풍부화, 인지풍부화, 감각풍부화, 놀이풍부화 등이 있다. 사육사들은 호랑이의 야생성은 물론 행복지수를 높여주기 위해 다양한 방식을 고민하고 있다. 

공놀이 또한 좋은 행동풍부화 중 하나다. 호랑이숲 생태관찰 공식 유튜브 채널인 '호시탐탐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를 보면 호랑이들이 공놀이를 즐기는 광경이 종종 나온다. 이처럼 백두대간의 호랑이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활동이나 컨디션이 좋을 때 보이는 행동이 있는지 민 주임에게 물었다.

민 주임은 "다양한 장난감 또는 특식을 숨기거나 제공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통해 호랑이들이 새로운 변화에 대한 적극적인 탐색 등을 즐기고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호랑이숲은 넓은 방사장에 풀과 나무가 풍부한 환경으로 구축돼 있어 아이들이 컨디션이 좋을 때는 방사장 안을 마음껏 질주하는 경우를 관찰할 수 있다"고 답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에서 지내고 있는 4마리 호랑이 (사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공식 홈페이지 캡처)/뉴스펭귄

현재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숲에는 한청(2005년 5월 8일생 암컷), 우리(2011년 9월 23일생 수컷), 한(2013년 10월 29일생 수컷), 도(2013년 10월 29일생 암컷) 총 4마리 백두산호랑이가 살고 있다. 국내 최장수 호랑이로 꼽히던 2001년생 수컷 '두만'은 이곳에서 함께 지내다 지난해 말 노환으로 생을 마쳤다. 

2020년 2월 태어나 에버랜드 타이거밸리에서 살고 있는 백두산호랑이 남매 '태범'과 '무궁'도 이달 중순 백두대간에 자리한 호랑이숲으로 옮겨올 예정이다. 에버랜드와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은 동식물 교류 및 생태 공동연구 MOU 협약을 체결함으로써 민관이 힘을 합쳐 멸종위기종 보전에 앞장 서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호랑이숲 야외 방사장은 대방사장, 소방사장, 간이 방사장 세 곳으로 나뉜다. 이 중 내실과 바로 연결된 간이방사장은 아직 합사가 이뤄지지 않은 개체들이 머무는 공간이다. 합사 전 호랑이들은 개체별로 따로 방사시간이 주어져 안전한 단독생활을 보장받을 수 있다.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숲 대방사장 앞 (사진 남주원 기자)/뉴스펭귄

관람객과 만날 수 있는 대방사장은 하절기(3월~10월)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동절기(11월~2월)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운영한다. 모든 호랑이가 다 나오는 게 아니라 2마리씩 번갈아 가며 대방사장을 사용한다.

민 주임은 "우리 호랑이들이 장시간의 환경 적응 기간을 원활하게 거쳐 처음으로 관람객분들에게 선보였을 때, 그리고 많은 분들이 감탄과 격려, 칭찬을 해주셨을 때 큰 보람을 느꼈다"고 전했다.

깊은 산속 호랑이숲까지 힘들게 찾아 간 관람객일지라도 호랑이들이 잠만 자는 모습을 보고 돌아가야 할 수도 있다. 호랑이는 최대 18~20시간을 잔다. 하지만 "편안함을 느끼고 자고 있는 호랑이를 깨우지 말아 주세요. 예쁜 눈으로 봐주세요 제발"이라는 문구가 적혀있는 안내판이 무색하게도, 일부 관람객은 성숙하지 못한 관람 태도를 보였다.

자고 있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들 (사진 남주원 기자)/뉴스펭귄
자고 있는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들 (사진 남주원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 기자가 호랑이숲을 방문했던 이날 역시 누군가는 박수 치고 큰소리를 내는 등 잠자는 호랑이를 억지로 깨우려 했다. 특히 유치원, 초등학생 저학년 정도 돼보이는 어린 관람객들이 심심찮게 호랑이를 향해 소리 지르곤 했는데, 바로 옆에 있는 부모들은 이를 말리지 않고 더욱 부추겼다. "네가 소리 지르니까 쟤네가 좀 반응한다야. 더 깨워봐 더!(웃음)", "야야! 일어나! 잠만 처자냐!" 

뙤약볕이 내리쬐는 날씨에 이 먼 곳까지 찾아와 깨어있는 호랑이를 보고 싶은 심정 자체는 백번 천 번 이해갔으나 이처럼 관람 수준이 낮은 몇몇 사람들을 실제 눈앞에서 목격하니 놀랍고도 씁쓸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저러면 안되는데... 앞에 안내판에도 버젓이 써있는데", "저 집 부모나 자식이나 똑같네. 아이들은 다 부모한테 보고 배운 대로 한단 말이지"라며 혀를 내둘렀다.

몇 시간 동안 조용히 자리를 지키며 기다렸던 기자는 소위 호랑이의 '눈키스'를 받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시끄러운 관람객들이 떠나자 호랑이는 방사장 밖을 오래도록 응시하더니 이내 몇 번이고 부드럽게 눈을 깜빡였다. 눈빛만으로도 굉장한 카리스마와 신비로움이 느껴져, 가히 '산군'이라 불릴만하다고 실감했다.

운이 좋다면 웃고 있는 호랑이를 볼 수도 있다. 호랑이는 '야콥손'이라고 불리는 보조 후각기관이 1개 더 있는데, 이를 통해 공기층에 있는 페로몬 등 여러가지 냄새를 맡을 수 있다. 예컨대 비가 내려 풀내음이 짙어지면 냄새를 맡으며 웃는 표정을 짓는 것이다. 이처럼 호랑이가 웃고 있는 현상을 '플레멘'(Flehmen) 반응이라고 한다. 독일어로 '윗입술을 들어올리다'라는 뜻이다. 

비가 내린 후 짙어진 풀내음에 '플레멘' 반응을 보이는 호랑이 (사진 '호시탐탐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안동MBC' 공식 유튜브 영상 캡처)/뉴스펭귄

국립백두대간수목원 호랑이들은 주로 닭고기와 소고기를 먹는다. 하루 평균 5~6kg 정도 고기를 섭취하며 개체별로 건강상태 등 컨디션에 따라 식사량이 조금씩 다르다. 백두산호랑이보존센터 사육사들은 매일 이곳 호랑이들이 먹이를 먹는 양과 남기는 양, 배변 상태를 세세하게 기록한다.

각각의 호랑이를 구별하려면 줄무늬를 보면 된다. 호랑이의 줄무늬는 사람으로 따지면 마치 지문과 같은 역할을 해 이를 통해 각 개체를 구별할 수 있다.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 호랑이도 개체별로 줄무늬 모양이 다르다.

그렇다면 백두산호랑이는 왜 한반도 땅에서 사라지게 된 걸까. 먼저 한반도를 비롯한 동북아시아에 서식하는 호랑이를 백두산호랑이 또는 한국호랑이, 시베리아호랑이, 아무르호랑이 등으로 부른다. 지역에 따라 각기 부르던 이름을 형태적 특성이나 습성에 차이가 없어 합쳐 부르는 것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전국의 명산이면 어디에나 호랑이가 많았으므로 자연스레 유명한 산 이름을 따 붙였다. 백두산호랑이는 호랑이 중에서도 가장 큰 종으로 몸높이 약 120cm, 몸길이 약 240~330cm, 몸무게 약 180~360kg에 달한다.

“한반도 모양은 호랑이가 포효하는 모습”, “호랑이의 기상을 닮은 국민성”과 같은 말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 생활 곳곳에는 호랑이에 대한 애정이 녹아있다. 하지만 백두산호랑이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에 걸쳐 일제의 침략으로 멸종위기에 처하고 말았다. 일본은 사람과 재산에 해를 끼치는 동물을 몰아내 없앤다는 구실로 '해수구제'(害獸驅除) 정책을 펼쳤다. 신식총포로 무장한 호랑이 토벌대가 조직됐고 그들은 무자비한 살육을 일삼았다. 이때 호랑이를 비롯해 표범, 늑대, 곰, 노루 등 많은 야생동물이 멸종위기에 처하게 됐다.

백두산호랑이는 일제강점기 이후 남한에서 야생 상태로는 더이상 볼 수 없으며 북한의 경우 함경북도에만 소수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한국은 지역절멸로 판명된 백두산호랑이를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백두대간 호랑이의 보전 가치는 인문·역사·사회·경제적 측면에서 다양하게 살펴볼 수 있다. 위에서 알 수 있듯 호랑이는 우리나라 자체와 한민족의 기상을 상징하는 동물이다. 따라서 호랑이를 보전하는 일은 생명존중 사상을 실현할 뿐만 아니라 민족 정체성을 확립하고 자긍심을 고양시키는 효과를 갖게 될 것이다. 

특히 백두산호랑이가 멸종한 직접적 원인이 일본의 제국주의와 인간 이기심에 있는 만큼 호랑이 복원은 윤리적 당위성을 갖는다. 아울러 우리나라에서 호랑이가 속담, 설화, 민화 등을 통해 친숙하게 등장하는 만큼 교육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다. 문화·관광사업과 연결을 통해 지역 주민의 소득 향상에도 기여할 수 있다.

호랑이숲 올라가는 길 (사진 남주원 기자)/뉴스펭귄
호랑이숲 올라가는 길 (사진 남주원 기자)/뉴스펭귄

지금은 더 이상 우리나라 야생에서 볼 수 없는 백두산호랑이. 국립백두대간수목원 백두산호랑이보존센터가 한반도의 야생 호랑이 복원을 이끄는 진정한 '길라잡이'로 거듭나길 간절히 바라본다. 호랑이숲까지 올라가는 길, 곳곳에 힘을 북돋아주는 응원 메시지가 적힌 표지판들과 잠시 쉬었다 갈 수 있는 벤치, 바닥에 성큼성큼 새겨진 호랑이 발자국처럼 말이다. 

민 주임은 "백두산호랑이보존센터와 호랑이숲에 많은 관심과 사랑을 부탁드린다"면서 "앞으로도 호랑이를 위한 다양한 활동으로 호랑이들이 행복하게 지낼 수 있는 호랑이숲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며 말을 맺었다.

한반도의 극한호우는 지구가열화가 원인이라고 카이스트(KAIST) 연구진이 최근 발표했습니다. 이처럼 기후위기는 먼 나라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서 현재진행형으로 전개되는 급박하고 구체적인 위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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