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방 부문 탄소배출을 '제로' 수준으로 낮추려는 국제사회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2년 전 3가지 방향의 냉방 분야 탄소저감 전략이 제안된 바 있는데 해당 내용에 대한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논의한다는 취지다.
유엔환경계획(UNEP)이 11일(현지시간) 제30차 유엔기후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서 'Global Cooling Watch 2025' 보고서를 발간한다. 의장국인 브라질과 함께 '극한 폭염 대응 이행 추진(Beat the Heat)' 계획도 발표한다. 2023년 COP28에서 63개국이 서명한 '지구 냉방 서약(Global Cooling Pledge)' 이행 2년차를 맞아, 국가-지역 간 협력과 재정·정책 실행 방안이 공개될 예정이다.
지구 냉방 서약은 2050년까지 냉방 관련 배출량을 68% 감축하고, 2030년까지 신규 에어컨의 전 세계 평균 효율을 50% 향상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11일 발간되는 보고서는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경로와 함께, 2050년까지 거의 제로에 가까운 배출(near-zero emissions)을 실현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2023년 시작된 지구 냉방 서약
지구 냉방 서약은 2023년 두바이 COP28에서 시작됐다. 당시 UNEP이 발표한 'Global Cooling Watch' 보고서는 2050년 냉방 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이 전 세계 배출량의 1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냉방 장비는 현재 전체 전력 소비의 20%를 차지하며, 2050년에는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시 보고서는 세 가지 핵심 감축 방안을 제시했다.
첫째, 냉방장치의 에너지 효율 기준을 강화한다. 에어컨과 냉장고에 최저 효율 기준을 설정해 일정 수준 이하 제품은 판매를 금지하고, 이 기준을 정기적으로 높여간다. 고효율 제품 구매를 지원하는 보조금이나 세금 감면 같은 금융 수단도 활용한다. 개발도상국으로 선진국에서 쓰던 저효율 중고 제품이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는 규제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2050년 전 세계 냉방장치 평균 효율을 현재보다 3배 높일 수 있다.
둘째, 냉매를 친환경 물질로 전환한다. 현재 에어컨과 냉장고에 쓰이는 수소불화탄소(HFC)는 이산화탄소보다 지구가열화 효과가 수백~수천 배 강하다. 냉방장치를 사용하다 냉매가 새어나가면 기후위기는 가속화된다. 몬트리올 의정서 키갈리 수정안에 따라 2047년까지 HFC를 단계적으로 줄이고 있다. 신규 장비에 친환경 냉매를 빨리 적용하고 기존 냉매 관리를 철저히 하면 2050년 HFC 배출량을 키갈리 일정보다 빠르게 절반으로 줄일 수 있다.
셋째, 신축 건물 설계 단계에서 냉방 부하 자체를 줄인다. 두꺼운 단열재로 외부 열 침투를 막고 처마나 차양으로 직사광선을 가린다. 자연 환기가 잘 되도록 창문을 배치하고 건물 외벽을 밝은색으로 칠해 열 흡수를 줄인다. '패시브 쿨링'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2050년 냉방 용량 수요를 24% 줄이고, 이산화탄소 13억 톤을 감축할 수 있다.
이 세 가지 조치를 모두 이행하면 2050년 냉방 부문 배출량을 현재 추세 대비 60% 감축할 수 있고 여기에 전력망 탈탄소화를 더하면 96% 감축이 가능하다. 2050년까지 추가로 35억 명이 냉방 혜택을 받고, 최종 사용자는 연간 1조 달러, 전력 부문은 최대 5조 달러를 절감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아랍에미리트와 UNEP이 주도한 지구 냉방 서약에는 63개국이 서명했다. 각국 정부뿐 아니라 도시, 기업, 시민사회 단체 등이 참여하는 '냉방 연합(Cool Coalition)'도 출범했다. 당시 보고서는 냉방 서약이 실제 이행되면 2050년까지 약 38억 톤의 온실가스 배출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이행 2년차, 구체화되는 실행 방안
11일 발간되는 2025년 보고서는 2023년 프레임워크를 바탕으로 실행 방안을 구체화한다. '지속가능한 냉방 위계(Sustainable Cooling Hierarchy)'와 '단계별 접근 프레임워크(Tiered Access Framework)'라는 새로운 개념을 도입한다. 건물·도시·냉장 공급망 전반의 통합 솔루션을 제시한다.
패시브 쿨링 평가 방법을 개선하고 저에너지 및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대한 내용을 추가했다. 2023년 보고서가 2050년까지 60~96% 감축 가능성을 제시했다면, 2025년 보고서는 거의 100%에 가까운 감축 경로를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 발간과 함께 브라질 COP30 의장국과 UNEP 냉방 연합이 주도하는 'Beat the Heat' 이행 추진도 공개된다. 이는 극한 폭염 대응과 지속가능한 냉방을 위한 국가-지역 협력, 재정·정책·실행 격차 해소를 위한 집단 노력이다. 잉거 안데르센 UNEP 사무총장은 "지속가능한 냉방은 기후변화 적응과 품위 있는 삶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길"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한국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한국은 냉방 장비 효율 개선과 친환경 냉매 전환, 건물 에너지 관리 강화로 냉방 부문 탄소 감축에 나서고 있다. 2023년 지구 냉방 서약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에너지 효율 관리 강화
한국은 에어컨, 냉장고 등 냉방 관련 제품에 1~5등급의 효율등급을 표시한다. 최저효율기준을 설정해 일정 수준 이하 제품의 판매를 금지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에너지 소비가 큰 공기청정기, 제습기, 전기밥솥 등의 효율 기준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있다. 2022년에는 식기세척기, 이동식에어컨 등을 효율등급제 적용 대상에 추가했다.
건물 에너지 관리도 강화되고 있다. 연면적 3,000㎡ 이상 상업·공공건물에 대한 에너지 효율 관리 권한이 지자체로 이양됐다. 건물별 에너지진단을 통해 기준 통과 시 세금을 감면하고 미달성 시 개선명령과 과태료를 부과한다.
친환경 냉매 전환, 비용과 기술 과제 남아
한국은 2022년 키갈리 수정안을 비준했다. HFC는 오존층 파괴 물질인 염화불화탄소(CFC)를 대체하기 위해 도입됐지만, 이산화탄소보다 수백 배에서 수천 배 높은 지구온난화지수를 갖고 있다.
한국은 선진국 그룹에 속해 2036년까지 HFC 생산과 소비를 2011~2013년 평균 대비 85% 감축해야 한다. 기후에너지환경부는 HFC 생산·수입량을 할당하는 총량관리제를 운영하고 있다.
다만 친환경 냉매로의 전환은 쉽지 않다. HFC 대체 냉매로 거론되는 자연냉매(암모니아, 이산화탄소, 탄화수소 등)는 독성이나 가연성 문제가 있고, 새로운 합성냉매(HFO 등)는 비용이 높다. 기존 장비를 새 냉매에 맞게 개조하거나 교체하는 데도 비용이 든다.
제로에너지 건축물 의무화 민간 확대
정부는 제로에너지 건축물(ZEB) 의무화를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있다. ZEB는 고단열·고기밀 자재로 에너지 부하를 최소화하는 패시브 기술, 고효율 설비로 에너지 소요량을 줄이는 액티브 기술, 각종 신재생에너지를 결합한 건축물이다.
2017년 ZEB 인증제가 시행된 이후 2020년 연면적 1,000㎡ 이상 공공건축물, 2023년 500㎡ 이상 공공건축물과 30세대 이상 공공 공동주택이 의무 인증대상이 됐다. 올해부터는 민간으로 본격 확대됐다. 1월 1일부터 연면적 1,000㎡ 이상 민간 건축물과 30세대 이상 공동주택은 ZEB 5등급 수준 설계가 의무화됐다.
2030년에는 민간 건축물 500㎡ 이상으로, 2050년에는 공공건축물 1등급 수준으로 단계적으로 기준이 강화될 예정이다. 2017년부터 2023년까지 ZEB 인증 건수는 총 4,915건으로, 이 중 본인증은 966건이다. 2020년 기준 전체 건물 에너지 사용량 중 주거용 건물이 약 60%를 차지한다.
신축 건물의 패시브 쿨링, 확산은 더뎌
ZEB 정책의 한 축인 패시브 쿨링은 신축 건물 설계 단계에서 단열, 자연 차양, 환기 등을 통해 냉방 부하 자체를 줄이는 방식이다. 한국 전통 건축인 한옥에도 이런 원리가 적용됐다. 처마가 여름철 태양을 가리고 마당과 뒤뜰이 대류 현상을 활용한다. 마루는 바람을 통하게 한다.
현대 건축에서는 독일의 패시브하우스 개념이 2000년대 후반부터 도입됐다. 2017년 경남 거창, 충북 청주 등 일부 시범 단지가 조성됐지만 높은 건축 비용과 정보 부족으로 확산이 더디다. (사)한국패시브건축협회에 따르면 현재 전국에 271채가 등록됐다. 이미 지어진 기존 건물에는 적용이 어렵다는 근본적 한계도 있다.
COP30에서 확인해야 할 것들
Global Cooling Watch 2025 보고서는 2023년 프레임워크가 지난 2년간 어떻게 구체화됐는지 보여줄 것으로 예상된다. 새롭게 도입되는 '지속가능한 냉방 위계'와 '단계별 접근 프레임워크'의 실제 내용, 패시브 쿨링 평가 개선과 저에너지·하이브리드 시스템의 구체적 방안, 거의 제로에 가까운 배출(near-zero emissions)로 가는 경로가 주목된다.
COP30에서는 지구 냉방 서약 이행 방안도 논의될 전망이다. 2023년 63개국이 서명한 이후 참여국이 늘어날지, 각국의 구체적 이행 계획은 무엇인지 확인이 필요하다. 한국이 이 서약에 참여할지도 주목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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