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UNHCR, Ala Kheir)/뉴스펭귄
(사진 UNHCR, Ala Kheir)/뉴스펭귄

지난 10년간 강제로 고향을 떠난 사람이 한국 인구 5배를 넘겼다. 전쟁과 폭력보다 기후재난이 더 많은 사람을 밀어내고 있다.

전 세계에서 기후재난으로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이 지난 10년간 2억5천만 명에 달한다는 유엔난민기구(UNHCR) 분석이 나왔다. 하루 평균 7만 명이 홍수·폭풍·가뭄 등 극단적 기상으로 집을 떠나야 했다는 의미다.

UNHCR은 최근 보고서 <No Escape II: The Way Forward(도망칠 곳 없는 현실2: 앞으로의 길)>에서 기후위기가 강제이주를 폭발적으로 늘리고 있다고 밝혔다. 홍수와 폭풍 같은 급성 재난뿐 아니라 사막화, 해수면 상승, 생태계 붕괴처럼 서서히 진행되는 환경 변화까지 겹치면서 식량·물 부족과 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 간 분쟁과 폭력으로 이미 집을 떠난 사람도 올해 중반 기준 1억1700만 명을 넘었는데, 이 위기 역시 기후재난이 더 큰 불안정과 이동을 촉발하고 있다. 보고서는 기후위기가 기존 취약성을 확대하는 '위험 증폭자'라며, 재난과 분쟁이 겹쳐 발생하는 국가 수가 2009년 이후 세 배 이상 늘었다고 지적했다.

기후위기 노출이 큰 국가일수록 재정 여건은 더 취약하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분쟁이나 빈곤으로 불안정한 국가들이 주로 난민을 수용하고 있지만, 이들 국가가 실제 필요로 하는 기후재원은 4분의 1만 지원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UNHCR이 긴급사태를 선포한 사건 중 3분의 1은 홍수, 가뭄, 폭염, 산불과 같은 기상이변이 난민과 실향민에게 다시 피해를 준 사례였다. 분쟁으로 흘러 들어온 난민 캠프가 극한 폭염을 겪거나, 가뭄으로 식수가 사라져 이동이 반복되는 상황이 상당수였다.

보고서는 재난 취약 지역에 사는 난민과 실향민이 점점 더 큰 위험에 노출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현재 난민 4분의 3 이상이 기후위험이 큰 국가에 머물고 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동일한 재난으로 여러 차례 대피를 반복하는 일이 잦아졌다.

기후재난으로 급격한 이탈이 나타난 사례도 있다. 정치적 불안정과 기후노출이 모두 심한 차드는 2024년 한 해에만 홍수로 130만 명이 살던 곳을 떠났는데, 이는 지난 15년을 합한 수치를 넘는 규모다. 수단 난민의 경우 하루에 쓸 수 있는 물이 10리터도 되지 않는 지역이 많아, 기초적인 생존조차 어려운 조건이 이어지고 있다.

수단, 시리아, 아이티, 콩고민주공화국, 레바논, 미얀마, 예멘 등 세계에서 기후위기에 가장 취약한 국가 상당수는 분쟁과 기후위기를 동시에 겪고 있다. 온실가스 배출 기여도는 미미하지만, 기후재원 접근성이 낮아 적응조차 어려운 지역들이다.

UNHCR은 "지금 속도라면 2050년에는 일부 난민캠프가 연간 200일 가까이 심각한 열 스트레스를 겪을 수 있다"며 "이 경우 기존 거주지가 사실상 사람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보고서는 30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서 정치권이 강제 이주 문제를 핵심 의제로 다뤄야 한다고 촉구했다. 필리포 그란디 UNHCR 최고대표는 "분쟁과 극한기후, 재난이 난민과 실향민을 받아들이는 지역사회에 주는 압박은 해마다 더 커지고 있다"며 "동시에 효과적인 방안도 분명해지고 있다. 과감한 투자, 포용적 대응, 당사자 공동체에 대한 신뢰가 그 해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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