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방으로 배출되는 탄소를 줄이는 방법은 세 가지다. 에어컨 효율을 높이고, 지구가열화를 일으키는 냉매를 바꾸고, 건물 자체가 덜 더워지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2023년 63개국이 2050년까지 냉방 부문 배출을 68%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2년이 지난 지금, 세 가지를 모두 실천하는 나라는 54개국이다. 가장 뒤처진 건 건물 설계다. 차양만 달아도 에너지를 15% 절감할 수 있지만, 이를 의무화한 나라는 19개국에 불과하다. 유엔환경계획은 2050년 감축 목표의 65%가 이 '패시브 쿨링'에서 나온다고 분석했다.
3대 핵심 전략 효율·냉매·건물 설계
2023년 두바이 COP28에서 63개국은 2050년까지 냉방 부문 온실가스 배출을 68% 감축하겠다고 서약했다. 당시 UNEP 보고서는 현재 추세대로라면 2050년 냉방 부문 배출량이 전 세계 배출량의 10%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냉방 장비는 현재 전체 전력 소비의 20%를 차지하며, 2050년에는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서약 이행의 핵심은 세 가지다. 에어컨과 냉장고의 효율 기준을 높이고, 지구온난화지수가 이산화탄소보다 수백~수천 배 높은 수소불화탄소(HFC) 냉매를 친환경 물질로 전환하며, 건물 설계 단계에서 차양과 단열로 냉방 부하 자체를 줄이는 것이다.
2년이 지난 지금, 세 가지 핵심 정책을 모두 갖춘 나라는 54개국이다. 구체적인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국가 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나 국가 적응 계획(NAP) 같은 기후 전략에 명시한 나라는 29개국에 그쳤다. 전략은 있지만 실행 계획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서약 참여 여부와 관계없이 167개국이 이미 에어컨과 냉장고의 효율 기준을 보유하고 있다. 제품을 규제하는 방식이라 상대적으로 도입하기 쉽기 때문이다. 반면 패시브 쿨링 건축 기준은 훨씬 뒤처진다.
선도국의 비결: 차양 의무화부터
일부 국가는 적극적으로 나섰다. 파키스탄은 2023년 에너지 절약 건축 기준을 업데이트하면서 건물 방향, 이중 유리, 외부 차양을 의무화했다. 세계은행 분석에 따르면 이 조치로 냉방·난방 에너지 수요를 최대 4.5% 줄일 수 있다.
케냐는 지구 냉방 서약의 일환으로 2024년 7월 국가 건축 기준을 출시했다. 차양, 자연 환기, 단열, 반사 표면을 의무화하며, 저소득·중간소득 국가 중 선도적 사례로 평가받는다.
미국 캘리포니아는 2023년 신축 건물에 '쿨 루프' 설치를 의무화했다. 태양 복사를 차단하는 지붕으로, 열섬 효과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다.
영국 맨체스터는 취약 가구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외부 창문과 벽에 차양을 설치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결론을 얻었다. 내부 차양은 비용 대비 효과가 낮았다. 저비용 조치와 행동 변화를 조합하는 것이 최적이라는 제안이 나왔다.
가장 쉬운 '차양' 의무화, 고작 19개국
건축 기준 개선은 비교적 복잡하다. 건물을 새로 짓거나 개보수할 때 적용하는 규정이라 건설업계와 조율이 필요하다. 전 세계적으로 주거용 건물 기준을 보면, 69개국이 건물 외피 개선을 의무화했고, 63개국이 지붕 단열을, 58개국이 유리창 기준을 의무화했다. 하지만 차양 설치를 의무화한 나라는 19개국에 그쳤다. 비주거용 건물도 비슷해서 차양 의무화는 23개국뿐이었다.
지역별로도 격차가 뚜렷했다. 유럽은 38개국이 건축 기준을 보유한 반면, 아프리카는 9개국에 불과했다. 냉방 수요가 급증하는 지역일수록 정책이 부족한 역설적인 상황이다.
차양 의무화 국가가 19개국에 그친다는 현황은 가장 쉽고 효과적인 조치조차 제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에어컨 켜기 전 전략이 65% 효과낸다
패시브 쿨링은 건물 설계 단계에서 단열, 차양, 자연 환기 같은 방법으로 냉방 부하 자체를 줄이는 기술이다. 에어컨을 가동하기 전에 건물이 덜 더워지도록 만드는 것이다.
증발 냉각 기술은 에너지를 56% 절감하고 실내 온도를 7.4도 낮출 수 있다. 자연 환기는 기계식 냉방 수요를 25% 줄인다. 차양만 설치해도 에너지를 15% 절감할 수 있다. 회수 기간도 2~8년으로 짧다. 건물을 지을 때나 개보수할 때 추가 비용이 크지 않다는 의미다.
도시 전체로 보면 효과는 더 크다. 나무, 녹지, 반사 표면 같은 방법을 결합하면 도시 열섬 효과를 10~25% 감소시킬 수 있다. 에어컨 수요 자체를 줄이거나 아예 없앨 수도 있다는 뜻이다.
UNEP 보고서는 2050년까지 8억 가구가 여전히 적절한 냉방에 접근하지 못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들은 주로 에어컨을 살 여력이 없는 저소득층이다. 패시브 쿨링과 저에너지 솔루션이 이들에게는 유일한 선택지다. 보고서는 2050년 냉방 부문 배출 감축의 65%가 패시브 쿨링과 저에너지 솔루션에서 나온다고 분석했다. 에어컨 효율 개선과 냉매 전환은 나머지 35%를 차지한다.
에어컨 온도 2.5도 올리고 선풍기 틀었더니 에너지 32% ↓
이번 보고서는 저에너지 솔루션을 새롭게 강조했다. 선풍기, 하이브리드 에어컨, 증발식 냉각기 같은 기술이다. 특히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주목받는다.
싱가포르의 한 오피스 실험에서 에어컨 설정온도를 24도에서 26.5도로 올리고 천장 선풍기를 함께 사용했더니 에너지가 32% 절감됐다. 직원들의 만족도는 비슷했고, 일부는 오히려 높은 온도를 선호했다. 에어컨을 아예 끄는 게 아니라 선풍기와 함께 쓰면 에너지를 크게 줄이면서도 쾌적함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에너지 솔루션이 중요한 이유는 형평성 때문이다. 저소득층은 에어컨을 소유할 가능성이 가장 낮다. 이들에게는 선풍기나 저비용 냉방 장치가 가장 빠르고 저렴하게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다.
2030년까지 18% 감축, 지금 속도로는 불가능
보고서는 2050년까지 냉방 부문 배출을 97% 감축할 수 있다고 제시했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2050년 배출량은 7.2억 톤에 달하지만, 지속가능한 경로를 따르면 2.6억 톤으로 줄일 수 있다. 여기에 전력망 탈탄소화를 더하면 거의 제로에 가까운 배출을 달성할 수 있다.
중간 목표도 제시했다. 2030년까지 2022년 대비 18%, 2040년까지 55% 감축이 필요하다. 경제적 혜택도 크다. 2050년까지 에너지 비용 17조 달러, 전력망 투자 26조 달러를 절감할 수 있고, 30억 명이 추가로 냉방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속도가 문제다. 기술과 정책 수단은 이미 존재하는데 2030년 18% 목표 달성을 위한 이행이 지지부진하다.
COP30 의장국인 브라질과 UNEP는 'Beat the Heat(폭염에 맞서기)' 이행 추진을 발표했다. 지구 냉방 서약을 지역 차원에서 실행하고, 정책·재정·실행 격차를 해소하기 위한 집단 노력이다. 폭염 대응을 긴급 재난 관리에서 벗어나 체계적 완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무 심기, 녹지 조성, 공공건물 차양 설치 같은 조치는 지방정부가 주도할 수 있는 영역이다.
잉거 안데르센 UNEP 사무총장은 "에어컨에만 의존해서는 열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며 "(에어컨 의존은) 온실가스 배출을 더욱 증가시키고 비용을 높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패시브, 고효율, 자연기반 솔루션이 증가하는 냉방 수요를 충족하면서도 사람과 식량 공급망, 경제를 열로부터 안전하게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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