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곽은영 기자)/뉴스펭귄
(사진 곽은영 기자)/뉴스펭귄

미국 전체 와인의 80% 이상을 생산하고 있는 캘리포니아가 기후위기에 흔들리고 있다. 해마다 반복되는 기록적인 폭염, 길어지는 가뭄, 산불은 ‘신의 축복을 받은 땅’이라 불리던 캘리포니아의 포도밭 풍경을 바꿔놓고 있다. 캘리포니아뿐만 아니라 전세계 와인 지도가 재편되는 중이다.

캘리포니아 포도밭에서는 기후위기로 인한 와인 산업 붕괴가 현재진행형이다. 특히 기후재해로 꼽히는 대형 산불이 포도 재배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매년 캘리포니아를 뒤덮는 대형 산불은 재산 피해와 더불어 와인의 맛 자체를 변질시킨다. 연기에 포함된 화학물질은 포도 껍질에 흡착돼 이질적인 맛을 만들어내고 숙성해가던 와인 맛도 저하시킨다고 알려진다. 와인 한 모금의 맛을 기후가 결정하는 셈이다. 

고온 건조한 날씨도 포도 맛을 바꾸고 있다. 포도 생장이 앞당겨져 지나치게 당도가 높고 알코올 함량이 높은 와인이 만들어지게 되는 것인데, 반대로 늘어나는 수분 스트레스의 경우 포도알을 작게 만든다. 당도와 산도 균형이 무너지면 와인 풍미가 왜곡된다. 

기후학자들은 현재 캘리포니아에서 일어나는 변화가 앞으로 전 세계 와인 산지에서 나타날 예고편이라고 경고한다. 프랑스 보르도, 이탈리아 토스카나, 칠레, 호주 와인 벨트 역시 폭염과 가뭄, 산불에서 자유롭지 않다.

지난해 네이처(Nature)에 실린 연구에 따르면, 지구 평균 기온이 2℃ 오르면 전 세계 와인 재배지의 약 70%가 사라질 위험에 놓인다. 프랑스 보르도, 이탈리아 토스카나, 스페인 리오하 같은 전통적인 명산지가 더 이상 포도 재배에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보르도·부르고뉴 대학 연구진도 비슷한 경고를 내놨다. 기후가 지금보다 조금만 더 달궈져도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고급 와인의 29%는 사실상 불가능해진다는 분석이다. 이는 단순한 생산량 감소를 넘어 와인의 정체성을 지탱해온 기후와 풍토의 붕괴를 의미한다.

실제로 최근 유럽 일부 산지에서는 20~30년 전보다 수확 시기가 보름 이상 빨라졌는데, 포도가 너무 빨리 익어버린 탓이다. 

로이터는 프랑스 정부가 올해 와인 수확량이 최근 5년 평균보다 13%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폭염과 가뭄이 겹친 탓이다. 그 결과 일부 지역에서는 포도밭 자체를 줄이는 정책까지 시행 중이다.

한편, 새로운 지역에는 바뀌는 기후가 기회가 되기도 한다. 기후가 북상하면서 영국·스칸디나비아·캐나다 같은 비전통적 지역이 새로운 포도밭의 황금지대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가디언은 지난해 영국 와인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생산량은 77% 증가, 수익은 15% 상승했다. 와인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전유물이던 시절과는 전혀 다른 그림이다. 

일부 와이너리들은 더 시원한 고위도 지역으로 재배지를 옮기거나 기후 적응력이 강한 새로운 포도 품종을 도입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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