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봄 사상 최대 규모의 산불이 경북 의성 등을 덮쳤다. 이후 최근에는 '괴물 폭우'와 산사태 등이 겹치면서 피해가 이어졌다. 기후변화에 따른 날씨재난이 곳곳을 할퀸 모양새다. 환경단체 등에서는 "재난 피해를 복구하고 대비하는 과정에서 생태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된다. 

산불과 폭우 등 여러 형태의 '기후재난'이 전국 곳곳을 할퀴고 있다. 환경단체 등에서는 '재난 대응 과정에서 생태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은 한 마을에서 산불로 소실된 주택을 철거하는 모습. (사진 산림청)/뉴스펭귄
산불과 폭우 등 여러 형태의 '기후재난'이 전국 곳곳을 할퀴고 있다. 환경단체 등에서는 '재난 대응 과정에서 생태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은 한 마을에서 산불로 소실된 주택을 철거하는 모습. (사진 산림청)/뉴스펭귄

지난 3월 22일 경상북도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이 거센 바람과 메마른 날씨를 타고 순식간에 경북 북부 전역으로 번졌다. 엿새를 넘겨 주불이 진화됐지만, 그 사이 피해는 컸다. 이 산불로 산림 9만 9,200헥타르가 소실됐는데 이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발생한 단일 산불 소실 면적 중 최대 규모다.

이후 지난 7월 16일부터 남부지역 등에 700mm 이상의 집중호우가 쏟아지면서 일부 지역에서는 산불로 인해 약해진 토양에 폭우가 덮쳐 산사태 등이 일어나기도 했다. 건강한 숲에서는 나무가 빗물 충격을 일부 막아주고 뿌리가 토양을 잡아줄 수 있는데 산불 피해지에서는 그 효과가 줄어든 탓이다. 기후변화가 심해지면서 산불과 집중호우가 겹쳐 일어나는 산사태 등의 재난이 앞으로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산불 피해목에서 생존해 있는 매개충 유충. (사진 산림청)/뉴스펭귄
산불 피해목에서 생존해 있는 매개충 유충. (사진 산림청)/뉴스펭귄

기후변화 속 산불이 온실가스에 미치는 영향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산불 발생 시기가 점점 더 불규칙해지고 규모는 커지고 있다. 미국의 비영리 기후 분석기관인 클라이밋 센트럴은 지난 봄 발표한 보고서에서 "3월 21일부터 26일까지 한국과 일본 전역에서 계절에 맞지 않는 높은 기온이 나타났고 이는 위험한 산불 조건을 유발했다"며 기후변화가 산불의 한 요소임을 지적했다.

이런 대형 산불은 온실가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산불은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나무와 숲이 사라지면서 산림이 가지고 있던 탄소 흡수 기능도 약해진다. 산불 피해를 입은 산림은 자연적으로 회복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탄소흡수 전략 마련이 필수적이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지난 3월 경북·경남·울산 지역 대형 산불로 배출된 약 764만 톤CO2-eq의 온실가스를 회복하기 위해 '산림 탄소흡수 증진 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산림과학원은 "산불피해지를 생태적으로 안정적인 산림으로 회복하기 위해 자연복원과 조림복원을 균형 있게 병행하고, 산불피해목을 목재자원으로 적극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산불 피해지역 고사목과 벌채목 등을 제재목, 섬유판 등 다양한 목재제품으로 활용하면 최대 156만 톤의 탄소 저장 효과가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 산불피해목을 폐기하지 않고, 목재 제품으로 활용해 탄소를 장기간 저장할 수 있다는 의미다.

김래현 산림탄소연구센터 센터장은 "피해목의 다각적 활용과 균형 있는 복원 방안을 마련해 산림의 탄소흡수 기능을 빠르게 회복할 수 있도록 지속적인 연구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산불 피해목으로 새 건물...잿더미 속 생태혁신

피해지역을 복구하는 과정에서도 생태적인 부분을 고려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산림청도 최근 산불 피해지역 피해목을 활용해 친환경 건축자원을 마련하는 등 관련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산림청은 산불발생 후 쓰러지거나 고사한 피해목 품질을 등급별로 분석해 건축용재나 연료용 등 상황에 맞는 용도로 사용할 수 있도록 산업계 등과 협력했다. 국립산림과학원 연구 결과, 산불 피해 소나무의 외부 탄화층을 제거하면 내부 재질은 피해를 입지 않은 소나무와 차이가 없다는 점이 확인됐다.

과거에도 그런 사례가 있었다. 지난 2022년 발생한 강원도 산불 당시, 피해목을 활용해 공공건축물(국가산림위성정보활용센터)을 건축한 사례가 있다. 산림청은 해당 사례 등을 검토해 이번에도 피해목 활용 계획을 세웠다.

산림청은 지자체 등과 협력해 피해목 중에서 건축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소나무 등을 적극 활용하기로 결정했다. 피해목을 제재목으로 가공해 공공부문 건축 사업에 활용하는 계획이다. 이를 통해 서울 국립목재문화체험장, 경기 광주 목재교육종합센터, 충북 충주 목재문화관, 충북 제천 월악산 관광안내센터에서 추진하는 공공 목조건축 사업에 이용한다.

박은식 산림청 산림산업정책국장은 "올해 발생한 대형산불 피해지역을 다시 울창한 숲으로 복원하기 위해 위험목 제거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간기업, 지방자치단체와 힘을 모아 산불피해목의 자원가치를 높이기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라고 밝혔다.

이상민 국립산림과학원 목재공학연구과 과장은 "산불 피해목을 건축용재로 활용하는 것은 탄소 저감과 자원 재활용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실현할 수 있는 해법이다. 산불 피해목의 다양한 활용 방안을 마련해 국가적 재난을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산불 피해목으로 지은 국가산림위성정보활용센터. (사진 산림청)/뉴스펭귄
산불 피해목으로 지은 국가산림위성정보활용센터. (사진 산림청)/뉴스펭귄

"생물다양성 높은 숲으로 '천연 방패막' 만들어야“

산불 피해 등을 예방하기 위해 단일수종 숲 말고 생물다양성이 높은 숲을 조성해야 한다는 주장도 들린다. 이와 관련, 경북 의성군에서 일어난 산불이 침엽수 단순림이 산불 피해를 키웠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그린피스가 폴란드 아담 미츠키에비치 대학 연구진과 숲의 형태별 산불 시뮬레이션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산림 연료습도가 낮을 때 침엽수 단순림은 산불 시작 2시간 뒤 시점에서 전체 산림의 30% 가량의 바이오매스가 연소됐다. 반면 혼합림은 20% 수준의 바이오매스 피해에 그쳤다.

그린피스는 "같은 침엽수 종이라 해도 단순림 내 피해가 혼합림 내 피해에 비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단일림 구조가 상대적으로 산불에 취약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수종 다양성이 높은 숲이 산불 피해를 효과적으로 막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최태영 그린피스 생물다양성 캠페이너는 해당 조사에 대해 "생물다양성이 높은 숲이 산불을 막는 천연 방패막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산림의 생물다양성 유지는 경제적인 면에서도 중요하다. 국립산림과학원이 산림의 공익기능 중 하나인 산림생물다양성 보전 기능의 가치를 평가한 결과 12조 6천억 원 규모로 평가(2023년 기준)됐다. 이는 2020년 기준 평가액인 11조 6천억 원보다 1조 원(8%) 증가한 규모다.

산림과학원은 "산림생물다양성 보전 기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확대하기 위해서는 숲가꾸기를 적기에 추진하고, 산불 및 산림병해충 등으로 인한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리고 "산지가 산림 용도 외의 목적으로 사용되거나, 형질이 변형되는 것을 억제하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김기동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전략연구과 연구사는 "기후위기 시기에 산림생물다양성 보전 기능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산불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주왕산 국립공원 내 너구마을. (사진 그린피스)/뉴스펭귄
산불 피해가 상대적으로 적었던 주왕산 국립공원 내 너구마을. (사진 그린피스)/뉴스펭귄

"재난 시 동물 구호와 대피 관련 제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산불 같은 대형 재난 상황에서 동물 구조와 대피 관련 규정이 미비하다며 관련 정책을 꼼꼼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국내에서는 2019년 강원도 고성 산불을 계기로 재난 동물 구호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일어났지만 아직 획기적인 진전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한국동물보호연합은 "재난, 재해 시 사람뿐만 아니라 수많은 동물도 고통받고 희생되지만 현행 법에서 재난 동물 구호 및 대피에 관한 제대로 된 내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소방청 등이 재난 동물의 구호와 대피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난이 일어나면 인간뿐 아니라 동물도 법적으로 구호의 대상에 포함하고, 재난 동물에 대한 대피소 제공 등도 법적으로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호 동물의 범위에 반려동물뿐 아니라, 유기 유실 동물, 농장동물, 야생동물 등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했다.

연합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동물의 생명이 소중하게 여겨지는 사회가 되어야, 인간의 생명도 존중받을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다. 매년 반복되는 재난과 재해 속에 사람뿐 아니라, 동물들의 희생이 최소화되도록 법과 제도의 정비와 이의 실행을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이원복 한국동물보호연합 대표는 "매년 반복되는 산불 재해에서 동물을 보호하자는 인식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인간의 생명이 소중한 만큼 동물의 생명도 함께 존중해야 한다는 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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