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세먼지 없는 맑은 하늘은 왠지 기후위기 걱정을 덜어줄 것처럼 보이지만, 최근 연구 결과는 전혀 다른 흐름을 보여준다. 대기오염이 줄어도 지구는 더 뜨거워졌다. '깨끗한 공기'가 오히려 지구를 덥히는 '기후 역설'이 관측된 것이다. 다만, 이 역설은 미세먼지를 줄인 것이 원인이 아니라 온실가스를 줄이지 못해 숨겨진 열이 드러났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미세먼지는 대기 중 부유입자인 '에어로졸'의 일종이다. 건강 위해 요인이기도 하지만, 햇빛을 차단해 지구를 식히는 역할도 한다. 최근 국제학술지 'Communications Earth & Environment'에 발표된 두 연구 결과에서 대기오염물질이 급격히 줄어든 이후 지구온난화 속도가 빨라지고, 폭염 체감 강도도 심화됐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노르웨이 CICERO 국제기후환경연구소 등 국제 공동연구진은 동아시아의 에어로졸 감축이 지구온난화 속도를 빠르게 했다고 밝혔다. 지난 10여 년간 동아시아 지역에서 미세먼지 주요 원인물질인 이산화황 배출이 약 75% 줄어들면서 대기 중 황산염 에어로졸 농도가 크게 감소했다.
이 과정에서 태양빛을 차단하던 에어로졸 효과가 약해지면서, 2010년 이후 지구 평균기온 상승 속도가 연간 약 0.07도 더 높아졌다. 이는 180년 동안 1.3~2도 상승한 지구 평균기온 증가 폭 기준에서 보면 매우 빠른 변화다. 연구진은 북태평양과 북극 등 인근 지역에서도 이 영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폭염을 더 체감하는 현상도 확인됐다. 광주과학기술원(GIST) 윤진호 교수 연구팀은 인구 14억 명 밀집 지역인 인도-갠지스 평원(IGP)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지난 60년 동안 여름철 상대습도가 평균 10.3%포인트 상승했다고 밝혔다. 대기 중 에어로졸이 줄면서 햇빛 차단 효과가 줄었고, 이로 인해 증발량이 감소하면서 대기 중 수증기가 축적된 결과다.
상대습도는 공기 중 수증기가 얼마나 가득 찼는지를 백분율로 나타낸 지표다. 습도가 높을수록 땀 증발이 어려워지고 체온 조절이 힘들어져, 같은 온도에서도 더 덥게 느껴진다. 윤 교수팀은 에어로졸 저감으로 인해 이 지역에서 땀 증발이 방해받고 폭염 체감이 심해지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대기질과 온실가스 함께 관리해야"
기상청에 따르면 에어로졸은 온실가스와 반대로 기후를 냉각시키는 역할을 한다. 반대로 온실가스는 열을 가두어 지구를 더 덥게 만든다. 두 연구 결과에서 공통으로 드러난 핵심은 미세먼지와 같은 에어로졸만 줄이면 숨겨졌던 온실가스 효과가 드러나고, 단기적으로는 지구온난화와 폭염이 심화될 수 있다는 점이다. 대기질 개선과 온실가스 감축이 반드시 병행돼야 함을 시사한다.
윤진호 교수는 <뉴스펭귄>과의 통화에서 "에어로졸이 없었다면 산업혁명 이후 지구는 훨씬 더 더웠을 것"이라며 "미세먼지 감축만 집중하고 온실가스를 줄이지 않으면 숨겨졌던 열이 빠르게 드러난다"고 말했다. 그는 "수많은 오염물질 중 하나만 줄이면 온난화가 더 심해질 수 있어 대기질과 온실가스를 함께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함께 줄이지 않았기 때문에 지구온난화 속도가 더 빨라지는 현상이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세먼지는 눈에 바로 보이고, 건강에 직접 영향을 주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줄이는 건 맞다"며 "온실가스를 함께 줄이지 않으면 기후위기는 더 빨라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진짜 기후위기를 막으려면 대기질 개선과 함께 온실가스 감축이 병행되는 통합 전략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전 세계 통틀어 이를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툴을 국가별로 마련 중이다. 윤 교수는 "전 세계에서 많이 사용하는 SSP 시나리오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국가별로 어떤 속도로 얼마나 줄여야 하는지 정교하게 살펴볼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SSP 시나리오는 미래 인구와 경제성장, 에너지 사용 변화 등을 가정해 온실가스 배출 경로를 전망하는 국제 표준 시나리오다. 국가별로 마련된 시나리오 안에서 기후변화를 예측하고, 그에 맞는 정책 입안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환경부 '제3차 대기환경개선 종합계획(2023~2032)'에 따르면 "대기오염물질과 온실가스를 연계한 통합관리체계 구축"을 목표로 제시하며, 대기질 개선과 탄소 감축 동시 달성을 위해 정책 방향을 연계한다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윤 교수는 "현재 한국에서도 기후와 대기를 함께 분석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툴 개발이 진행 중이고, 이를 통해 맞춤형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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