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연구진이 두 마리 범고래가 다시마의 일종인 불 켈프 줄기를 서로의 몸 사이에 끼우고 천천히 문지르는 행동을 포착했다.(사진 Manufacture and use of allogrooming tools by wild killer whales - Current Biology)/뉴스펭귄
해외 연구진이 두 마리 범고래가 다시마의 일종인 불 켈프 줄기를 서로의 몸 사이에 끼우고 천천히 문지르는 행동을 포착했다.(사진 Manufacture and use of allogrooming tools by wild killer whales - Current Biology)/뉴스펭귄

미국 고래연구센터가 범고래들이 해조류를 이용해 서로 몸을 문지르는 장면을 포착했다. 단순한 놀이가 아니라 도구사용 또는 사회적 유대 행동일 수 있다고 연구진은 해석했다. 이번 연구의 대상이 된 범고래는 해당 지역에서 개체수가 매우 적은 종이고 이들이 사용한 해조류는 기후변화 등의 영향으로 생존 위협에 놓인 상태다. 일각에서는 범고래 보전을 위해 해조류 생태계까지 통합적으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국 고래연구센터(Center for Whale Research)와 영국 엑서터대학교(University of Exeter) 연구팀은 워싱턴주 앞 세일리시해(Salish Sea)에서 고화질 드론을 이용해 남부 거주 범고래 개체군의 행동을 관찰하던 중, 두 마리 범고래가 다시마의 일종인 불 켈프(Bull Kelp) 줄기를 서로의 몸 사이에 끼우고 천천히 문지르는 행동을 반복적으로 포착했다.

범고래가 해조류를 사용하는 모습 자체는 새로운 발견이 아니다. 과거에도 범고래가 해조류 숲 속으로 헤엄쳐 들어가 몸에 비비거나, 떠 있는 해조류를 감싸는 방식의 ‘켈핑(kelping)’ 행동이 관찰돼 왔다. 이러한 행동은 주로 개인적인 자극이나 놀이의 일종으로 해석돼 왔다. 

그러나 범고래들이 해조류를 단지 자신에게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개체와 함께 사용하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나타난 것은 이번 관찰이 처음이다. 연구진은 두 마리의 범고래가 함께 협력해 해조류를 선택하고, 떼어내고, 길이를 조절해 서로에게 문지르는 방식은 단순한 놀이 이상의 목적성을 띠고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연구진은 이 같은 타인을 대상으로 한 ‘사회적 켈핑’을 기존의 켈핑과 구분해 ‘알로켈핑(allokelping)’이라고 명명했다.

연구진은 이 같은 타인을 대상으로 한 ‘사회적 켈핑’을 기존의 켈핑과 구분해 ‘알로켈핑’이라고 명명했다. (사진 Manufacture and use of allogrooming tools by wild killer whales - Current Biology)/뉴스펭귄
연구진은 이 같은 타인을 대상으로 한 ‘사회적 켈핑’을 기존의 켈핑과 구분해 ‘알로켈핑’이라고 명명했다. (사진 Manufacture and use of allogrooming tools by wild killer whales - Current Biology)/뉴스펭귄

연구진에 따르면 실제로 이러한 알로켈핑은 무작위로 일어나지 않고, 대부분의 경우 가까운 모계 친척이나 또래 개체들 사이에서 관찰됐다. 이는 사회적 유대와 관련돼 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엑서터대학교의 마이클 바이스 박사는 “범고래가 해조류를 마치 도구처럼 직접 떼어내고 조작한 뒤, 짝과 함께 사용하는 모습을 처음 보았을 때 매우 놀랐다”며 “이 행동은 도구 제작과 공동 사용에 가까우며, 해양 포유류에서 처음 확인된 사례일 수 있다”고 말했다.

범고래들이 사용하는 불 켈프(bull kelp)는 유연하면서도 단단하고 겉면이 미끄러워 피부를 자극하는 데 적합하다. 바이스 박사는 “불켈프는 마치 물을 채운 정원용 호스처럼 탄성이 있고, 문지르기 좋은 특성을 지녔다”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 같은 물리적 특징 외에도, 범고래가 해조류를 이용해 죽은 피부를 벗기거나 피부 건강을 증진시킬 수도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실제로 불 켈프에는 항균·항염 성분이 다량 포함돼 있다.

연구진은 알로켈핑이 특정한 상황에서만 나타나는 일회성 행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했다. 전체 관찰일 중 약 3분의 2에 서 이 행동이 기록됐다는 것이다. 또한 어린 고래부터 성체까지, 수컷과 암컷을 막론하고 모든 연령대의 개체가 알로켈핑에 참여하고 있는 것을 확인, 알로켈핑이 이들 범고래 집단 안에서 널리 공유되는 보편적인 문화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다.

한편 범고래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멸종위기 적색목록에 '자료 부족'으로 분류돼 있지만, 미국, 뉴질랜드 등 여러 국가에서 멸종위기종으로 보호받고 있다. 특히 이번에 연구 대상이었던 범고래 개체군은 다른 범고래 집단과는 유전적 교류가 없고 개체수가 단 73마리에 불과해 지역에서 멸종될 위기에 처해 있다. 이들의 먹이인 시누크 연어는 기후변화, 남획, 서식지 파괴 등으로 급감하고 있고, 선박 소음과 산업 오염도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아울러 이번 관찰에서 범고래가 사용하는 것으로 확인된 해조류 자체도 생존의 위협에 놓여 있다. 불 켈프 군락이 해수 온도 상승과 생태계 변화로 점차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연구진은 범고래 보전을 위해 해조류 생태계까지 통합적으로 보호하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번 연구는 지난 23일 국제학술지 생물학 저널(Current Biology)에 발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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