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동재 기자] 꼭 외계에서 온 것 같은 기이한 모습의 식물이 뜻밖에 등산로 근처에서 발견됐다. 랜턴 모양을 닮아 ‘요정 랜턴(fairy lantern)’으로도 불리는 이 식물은 여러 차례의 조사에도 단 5개체만이 발견돼,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멸종위기 적색목록 위급(CR) 단계로 분류됐다.

디스미아 알리아시아이. (사진 Siti-Munirah MY, Mohamad Alias S)/뉴스펭귄
디스미아 알리아시아이. (사진 Siti-Munirah MY, Mohamad Alias S)/뉴스펭귄

이 식물이 처음 발견된 것은 2019년 말레이시아 트렌가누 주의 체머롱 숲 생태공원. 당시 현장 조사를 하던 말레이시아 트렌가누 산림청 소속 연구원 모하맛 알리아스 샤크리는 산악 트레킹 코스 가장자리에서 낙엽을 뚫고 솟아난 신비로운 식물을 발견했다.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었지만, 어째서인지 누구도 이 식물의 존재를 알아채지 못했다. 외형은 마치 땅속에서 빛을 내는 등불처럼 보였고, 꽃의 구조도 기존 식물들과는 확연히 달랐다. 샤크리는 이것이 신종일지도 모른다고 직감하고 관찰 내용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표본 확보는 쉽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체머롱의 높은 산지, 깊은 낙엽층 아래에서만 자라는 이 식물이 해마다 언제 어디서 꽃을 피우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코로나19 팬데믹이 찾아오면서 현장 조사마저 수년간 지연됐다. 연구팀은 결국 2024년이 되어서야 집중 탐사를 재개할 수 있었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 디스미아 알리아시아이(Thismia aliasii)라는 이름의 새로운 식물이 드디어 과학적으로 기록됐다. 식물의 이름은 최초 발견자인 알리아스 샤크리의 이름을 따 붙여졌다. 연구는 말레이시아 산림연구소의 식물학자 시티 무니라와 트렌가누 산림청 알리아스 샤크리 공동 연구팀에 의해 진행됐으며, 2025년 3월 국제 학술지(PhytoKeys)에 정식 게재됐다.

디스미아 알리아시아는 광합성을 하지 않고 뿌리 주변의 균류와 공생하며 영양분을 얻는 균류기생 식물이다. 땅 위에 잎도 줄기도 드러내지 않다가 극히 짧은 개화기에만 지표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 PhytoKeys - Thismia aliasii (Thismiaceae), a new species from Terengganu, Peninsular Malaysia)/뉴스펭귄
디스미아 알리아시아는 광합성을 하지 않고 뿌리 주변의 균류와 공생하며 영양분을 얻는 균류기생 식물이다. 땅 위에 잎도 줄기도 드러내지 않다가 극히 짧은 개화기에만 지표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 PhytoKeys - Thismia aliasii (Thismiaceae), a new species from Terengganu, Peninsular Malaysia)/뉴스펭귄

디스미아 알리아시아는 디스미아(Thismia) 속 식물로, 광합성을 하지 않고 뿌리 주변의 균류와 공생하며 영양분을 얻는 ‘균류기생(mycoheterotrophic)’ 식물이다. 이 식물은 땅 위에 잎도 줄기도 드러내지 않다가 극히 짧은 개화기에만 지표면 위로 모습을 드러낸다. 통행이 많은 등산로 근처에 있으면서도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발견되지 않은 이유다.

디스미아 알리아시아 꽃은 환상적이면서도 기이한 느낌을 준다. 통처럼 생긴 투명한 꽃잎이 윗부분에서 둥글게 말리며 랜턴 모양을 이루고, 내부는 정교한 격자 구조를 갖고 있다. 현실감이 떨어지는 생김새로 인해 ‘외계 식물’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디스미아 알리아시아 꽃은 특별한 수분 시스템도 갖고 있다. 파리 같은 작은 곤충들이 수분을 담당하는데, 이를 위해 독특하고 정밀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정밀함은 곧 극심한 환경 민감성으로 이어져, 미세한 기온 변화나 토양 교란으로도 쉽게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

실제로 이번 조사에서 디스미아 알리아시아는 단 5개체만이 발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IUCN 멸종위기 적색목록 위급 단계로 평가된 이유다. 특히 이들의 문제는 서식지 특성에 있다. 이들이 발견된 체머롱 숲은 현지에서 인기 있는 산행지로, 연간 수천 명의 등산객이 오간다. 사람의 발길은 낙엽층을 교란하고, 작고 연약한 식물들이 자라는 미세 서식지를 쉽게 무너뜨린다.

연구진은 “디스미아 알리아시아는 꽃덮이 부속물의 길이가 안쪽과 바깥쪽에서 다르고, 수술의 결합부가 등 쪽으로 뚜렷하게 돌출된 갈비뼈 모양의 구조를 가진다”며 “이러한 형태는 디스미아 속 전체를 통틀어도 매우 드문 특징으로, 이 종의 독자성과 학문적 중요성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어 “2019년 이후 4헥타르 규모의 지역에서 여러 차례 조사를 진행했지만 이 식물은 단 두 차례밖에 관찰되지 않았고, 전체 개체수는 5개에 불과했다”면서, "이 종은 체머롱-베렘분-랑시르 산맥 정상으로 향하는 주요 등산로 인근에 서식하고 있어 등산 활동으로 인한 서식지 질 저하가 주요 위협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연구진은 추가 조사를 통해 개체군 규모를 정확히 파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디스미아 알리아시아는 트렌가누 지역에서만 발견된 고유종으로, 현재로선 단일 지점에서만 서식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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