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렵 막으려 뿔 자르자, 코뿔소 자신감 '뚝' 꺾였다

  • 남예진 기자
  • 2023.06.14 14:15
검은코뿔소는 밀렵에 의해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이다. (사진 flickr Derek Keats)/뉴스펭귄
검은코뿔소는 밀렵에 의해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이다. (사진 flickr Derek Keats)/뉴스펭귄

[뉴스펭귄 남예진 기자] 코뿔소를 밀렵으로부터 구하기 위한 뿔 제거가 오히려 코뿔소의 자신감을 꺾어 서식 범위를 축소하고, 상호작용을 줄였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스위스 뇌샤텔대학교 생물학연구소는 이러한 연구결과를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1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전세계에 5종의 코뿔소가 현존하지만, 코뿔소의 뿔을 장신구로 가공하거나 항암, 정력 등에 좋다는 잘못된 정보가 확산되면서 코뿔소는 밀렵의 위협 아래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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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코뿔소의 밀렵을 막기 위해 '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종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CITES)'에선 코뿔소의 뿔 거래를 불법으로 규제하고 있지만, 아직도 암암리에 거래되는 상황이다.

이에 남아프리카공화국, 케냐, 보츠와나 등에선 야생 코뿔소의 뿔을 인위적으로 잘라내 밀렵 위협을 최소화하고자 시도한 결과, 코뿔소 밀렵 행위가 감소했다고 밝혔다.

다만 코뿔소의 뿔은 손톱처럼 계속해서 자라나기 때문에 18~24개월마다 제거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큰 비용이 소모되며, 뿔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코뿔소와 작업자 모두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게다가 코뿔소가 자신과 새끼를 보호하고, 영역 경쟁 등을 위해 뿔에 의존하는 만큼 뿔을 자름으로써 코뿔소들이 큰 행동 변화를 겪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연구진인 검은코뿔소 36%가 서식 중인 남아프리카공화국 내 보호구역 10곳에서 지난 15년간의 관찰 자료를 활용해 뿔을 제거한 전후로 검은코뿔소에게 어떤 변화가 나타났는지 조사했다.

관찰 대상으로 선정된 검은코뿔소들은 2013년까지 뿔이 잘린 개체가 없었지만, 2020년을 기준으로는 63%가 뿔이 잘린 상태다.

조사 결과 뿔을 잃은 코뿔소들의 서식 범위가 급격히 축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컷과 암컷의 서식 범위가 각각 38%, 53% 줄어들었으며 일부 수컷의 경우 서식지가 82%까지 축소됐다.

반면 뿔이 잘리지 않은 코뿔소들은 서식 범위를 50% 확장된 것으로 파악됐다.

또 뿔이 제거된 코뿔소들이 의도적으로 서로를 기피하면서, 뿔이 없으면 상호작용이 37% 감소한 것으로 확인됐다.

검은코뿔소. (사진 flickr Danielle Brigida)/뉴스펭귄
검은코뿔소. (사진 flickr Danielle Brigida)/뉴스펭귄

나미비아의 동물보호단체 '코뿔소 살리기 협회(Save the Rhino Trust)'의 과학 고문인 제프 먼티퍼링(Jeff Muntifering)은 "뿔을 제거하는 것이 코뿔소의 행동에 이 같은 차이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예상치 못했다"고 말했다.

연구를 이끈 박사과정 학생 버네사 두테(Vanessa Duthé)는 "코뿔소들이 주무기인 뿔이 사라지자 자신감을 잃었고, 결국 탐험이나 타인과 상호작용할 용기를 잃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세계자연보전연맹의 코뿔소 전문가 마이클 나이트(Michael Knight)는 "코뿔소의 뿔을 제거하는 행위가 밀렵의 위협을 피하게 해주지만, 간접적으로 야생성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연구진은 "코뿔소의 행동 변화가 나타나더라도, 인력 부족 등의 이유로 동물들에 대한 보존 조치를 즉각 강화하기 어려운 지역에선 뿔 제거가 여전히 효과적인 보호 대책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클 나이트는 "가장 중요한 것은 뿔 제거가 번식에 미칠 영향을 정확히 밝혀내기 위해 추가 연구를 진행할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해 5년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짐바브웨 '로울벨드 코뿔소 협회(Lowveld Rhino Trust)'의 라울 뒤 투잇(Raoul du Toit) 박사는 "수컷은 나이가 들수록 서식지가 감소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짐바브웨에서 시행된 다른 연구에선 코뿔소의 뿔 제거가 암컷의 서식지 감소에 영향을 미쳤다는 상황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게다가 검은코뿔소들 간의 상호작용 대다수가 야간에 발생하는 만큼, 이번 연구 결과 만으론 뿔을 자르는 것이 코뿔소의 행동에 영향을 미쳤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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