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갈지자 정책에 세계 경제가 출렁인다. 이런 가운데 파리협정 탈퇴 등 그의 '반환경' 행보에 국제사회 탄소중립 흐름에 빨간불이 켜지고 있다. 미국의 탈퇴가 공식적으로 이뤄지면 글로벌 기후재원이 쪼그라들고 이로 인해 개발도상국이 큰 피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지난 7월 "기후대응은 모든 국가의 의무"라고 권고한 가운데, 세계 2위 온실가스 배출국인 미국의 역행은 국제 기후 공조의 신뢰성과 동력을 흔들고 있다. 각국이 2035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유엔에 제출해야 하는 시점과 맞물리면서,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와 후퇴가 국제사회의 감축 의지를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7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국제해사기구(IMO)가 선박 온실가스 배출 제한을 도입하려 하자 찬성국 상대로 관세, 비자 제한, 항만 수수료 보복을 경고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산유국과 손잡고 국제 플라스틱 오염 협약에도 반대했으며, 무역 협상에서는 상대국에 미국산 원유와 가스 구매를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 행보는 트럼프 1기 시절 파리협정 탈퇴 선언을 넘어 더 조직적이고 공세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는 최근 내각회의에서 "국가들이 풍력으로 자멸하고 있다. 화석연료로 돌아가길 바란다"고 말했고, 유럽연합 회담에서는 풍력을 "사기극"에 빗대며 비난했다. 뉴욕타임스는 "세계 최대 경제를 무기화해 다른 나라들까지 화석연료 사용을 늘리게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국내 법률업계에서도 같은 시각이다. 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4월 발간한 뉴스레터 '트럼프 2기, 기후변화 정책전망과 시사점'에서 트럼프 2기 공약집(Agenda 47)에 '기후'나 '환경'이라는 단어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점을 지적했다. 취임 직후에는 바이든 행정부의 친환경 정책 78건 철회하는 행정명령을 발표했고, 석유·가스·원자력 확대를 주요 기조로 삼았다.
에너지부 장관에는 석유기업 CEO 출신, 내무부 장관에는 화석연료 개발 확대를 공언해 온 인물, 환경보호청(EPA) 청장에는 친환경 규제에 반대해 온 인물을 각각 임명했다. 주요 내각 인선부터 화석연료 이해관계자 중심으로 짜여있다는 점에서 정책 방향성이 분명하다는 평가다.
미국 내에서도 트럼프 역행 직격탄을 맞고 있다. 로이터는 지난달 에너지 분석기관 우드매켄지(Wood Mackenzie)와 로듐(Rhodium)의 전망을 인용해 "트럼프 행정부의 보조금 삭감으로 향후 미국 내 태양광 신규 설치가 약 17% 줄고, 풍력도 약 20% 감소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로 인해 26조3천억 달러 규모의 청정에너지 투자와 1100억 달러 제조업 투자가 위협받으며, 2035년까지 가정 전기요금이 연간 280달러가량 오를 수 있다는 분석도 함께 제시됐다.
파리협정 탈퇴로 재원 끊는 미국, 화석연료에 발목 잡히는 세계
트럼프는 1기 집권 당시 파리협정 탈퇴를 선언했고, 뒤이어 바이든 행정부가 복귀를 결정하며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50~52% 감축이라는 높은 수준의 NDC를 제출했다. 그러나 트럼프는 올해 2기 취임 직후 다시 파리협정 탈퇴를 공식화했고, 미국의 기후 목표는 사실상 백지 상태가 됐다. 2026년 1월부터 미국은 파리협정 의무가 없는 나라다.
트럼프 행정부의 협상 방식은 각국의 불만을 자아내지만, 무엇보다 파리협정에서 이탈한 사실 자체가 국제사회 감축 동력을 약화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파리협정은 모든 국가가 NDC를 제출하고 이행하도록 한 첫 전 지구적 합의다. 이 협정에는 선진국들이 개도국의 감축과 적응을 지원하기 위해 매년 1천억 달러 규모의 '기후재원(유엔 녹색기후기금,GCF 등)'을 마련해야 한다는 약속이 있다. 노동운 한양대 글로벌기후환경학과 교수는 "가장 큰 건 돈이다. 선진국은 자체 재원으로 감축을 진행하지만 개도국은 유엔 기금을 통해야 하는데, 미국이 파리협정에서 탈퇴한다는 건 가장 큰 재원을 끊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개도국은 자력으로 NDC를 수립·제출할 역량이 부족하다. 미국의 불참은 결국 개도국의 기후대응을 지연시키고, 전 세계 감축 흐름을 늦출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한국과 일본에 알래스카산 액화천연가스(LNG) 구매를 압박하고, 유럽연합과는 3년간 7500억 달러 규모의 석유·가스를 사도록 조건을 걸었다. 노동운 교수는 "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하는데 무역 압박으로 여전히 화석연료에 발목 잡히고 있다"며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에 파리협정 탈퇴는 각국의 목표를 느슨하게 만들고, 국제 공조 자체를 어렵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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