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작은 뱀으로 알려진 '바베이도스 실뱀'(Tetracheilostoma carlae)이 약 20년 만에 공식 재발견됐다. 기후위기와 서식지 파괴, 외래종 확산 등 다양한 위협을 뚫고 살아남은 생명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올해 3월, 카리브해 섬나라 바베이도스에서 정부와 국제 보전단체 Re:wild가 함께한 생태조사 중, 섬 중심부 바위 아래에서 이 뱀이 발견됐다. 바베이도스 실뱀은 전 세계 과학자들이 찾던 종 가운데 하나로, 마지막 확인 이후 수십 년간 관찰되지 않아 사실상 멸종 상태로 여겨져 왔다.
이 뱀은 다 자라야 10cm 채 되지 않고 눈이 거의 퇴화해 있는 종으로, 주로 지하나 낙엽층 아래에 숨어 지낸다. 머리부터 꼬리까지 흐릿한 주황색 줄무늬가 이어지고, 코 부분에 있는 특이한 비늘이 특징이다. 그러나 바베이도스 외래종 '꽃화분뱀'과 매우 비슷해 현장에서 구별이 어렵고, 전문가들은 현미경 관찰을 통해 바베이도스 실뱀임을 확인했다.
발견 지역은 섬 북동부에 있는 '스코틀랜드 지구'로, 바베이도스에서 몇 안 남은 원시림이 있는 곳이다. 바베이도스는 서울 면적 4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작은 섬나라로, 지난 500년간 농업과 도시 개발로 인해 전체 원시림 98%가 사라진 상태다. 실뱀 주요 서식지인 토양과 낙엽층은 남은 숲 일부와 골짜기에서만 제한적으로 유지되고 있다.
실뱀은 오랜 세월 동안 발견된 기록 자체가 드물고, 번식력도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짝짓기를 통해 한 번에 단 하나의 알만 낳으며, 생존 경쟁에서 불리한 조건에 처해 있다. 바베이도스에는 과거 설치류 퇴치를 위해 몽구스를 도입한 적이 있는데, 이로 인해 바베이도스 고유의 다른 파충류와 포유류들이 멸종한 사례도 있다. 실뱀은 그중에서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종으로 평가된다.
이번 재발견은 기후위기와 서식지 파괴, 외래종 확산 등 다양한 위협을 뚫고 살아남은 생명이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바베이도스를 포함한 카리브 지역은 최근 수십 년간 해수면 상승과 열대폭풍 증가, 가뭄과 집중호우 등 기후위기에 특히 취약한 지역으로 평가된다. 강우 패턴이 불규칙해지고, 토양 침식과 수분 불균형 현상이 나타나면서, 땅속 환경에 의존해 살아가는 생물들은 큰 위협을 받고 있다.
실제로 바베이도스 정부는 "기후변화가 자연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은 해안선 침식과 해양 생물뿐 아니라 내륙의 미세 생물군에도 점차 확대되고 있다"며, 생물다양성 보호를 위해 남은 숲과 골짜기를 보존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카리브 지역 환경 네트워크(CANARI) 역시 "기후 변화는 단순한 날씨 문제가 아니라 생태계 전반을 흔드는 위협이며, 특히 소형 고유종(micro-endemics)의 생존 가능성을 위태롭게 한다"고 분석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과 세계자연기금(WWF) 등에 따르면 전 세계 야생 척추동물 개체수는 1970년 대비 약 70% 이상 감소했으며, 가장 급격한 감소가 나타난 지역이 남미와 카리브였다. 바베이도스 실뱀은 대멸종 흐름 안에서 존재가 확인된 몇 안 되는 고유 생물 중 하나로 여겨진다.
실뱀을 찾은 바베이도스 고유 파충류 보전 프로젝트(CBER)는 이후 섬 전역 숲과 미세 서식지를 조사해 정확한 분포 범위를 파악하고, 보전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조사에 참여한 Re:wild 소속 저스틴 스프링어는 "이 작은 뱀은 바베이도스가 아직 생명을 품고 있다는 상징"이라며 "남은 숲을 지키는 일은 실뱀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미래를 지키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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