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Cricket Australia)/뉴스펭귄
(사진 Cricket Australia)/뉴스펭귄

지구촌 곳곳에서 역대급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야외 스포츠 현장들이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선수나 심판이 경기 중 탈진하거나 병원으로 실려가는 일도 잇따르고 있다. 인도와 영국의 국민 스포츠 '크리켓'에서는 선수가 경기 도중 열사병으로 쓰러져 사망하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영국 지속가능스포츠협회, 인권단체 프론트러너스 등은 극한 기후가 크리켓 경기에 영향을 주고, 재정과 참여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크리켓(cricket)은 우리에겐 낯선 스포츠이지만 전세계에서 축구 다음으로 인기 있는 스포츠로 꼽힌다. 400년 전 영국에서 시작된 크리켓은 11명으로 이뤄진 두 팀이 교대로 야구처럼 방망이로 공을 치는 경기다. 경기 시간이 매우 길어 하루에 걸쳐 2회전으로 치러진다. 국제 경기에서는 한 시합이 일주일간 이어지기도 한다.

그중 인도 크리켓 리그인 인디언 프리미어 리그(IPL)는 세계 최고의 스포츠 리그 중 하나다. 경기당 매출액은 세계 4위로, 영국 프리미어 리그를 앞설 정도다. LG, 삼성, 롯데푸드 등 우리나라 기업들도 IPL 투자와 후원에 나서고 있다. 

(사진 IPL)/뉴스펭귄
(사진 IPL)/뉴스펭귄

크리켓은 보통 여름에 치러지는데, 기온 상승이 국제 대회는 물론 지역 경기까지 모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2025년 IPL 기간 치러진 65경기 중 절반 이상이 열지수 '매우 주의' 또는 '위험' 단계에서 진행됐다. 절반 이상의 경기가 선수들이 열사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은 환경에서 진행됐다는 의미다. 단 9개 경기만 더위 경고를 받지 않았다.

실제 지난 3월 애들레이드 크리켓 선수 주나이드 자파르 칸은 41.7도의 더위 속에서 경기 도중 열사병으로 쓰러져 사망했다. 인도 크리켓 선수 이샨트 샤르마는 지난해 IPL 경기에서 열사병으로 경기를 중단했으며, 그 전년도에는 IPL 결승전 도중 열사병으로 입원했다. 

지난해 인도는 야외 활동이 제한되는 37도 이상 기온을 기록한 날이 총 52일이었으며 지난 5년 평균인 46일보다 증가한 수준이다. 호주도 연평균 46일, 파키스탄은 83일 극심한 고온을 기록했다. 이에 호주 애들레이드크리켓협회는 경기 중 선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42도가 넘으면 경기를 취소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잉글랜드 크리켓 국가대표 마이아 부시에는 "경기 시작 후 높은 습도로 숨을 쉴 수 없어 어지러웠고, 결국 15분간 앉아 있어야 했다"며 "경기를 치르기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경기 취소에 어린 선수들 직격탄
"모든 스포츠에 경종 울린다"

폭염 문제는 스포츠 꿈나무들에게도 직격탄이다. 지난 2년간 호주 청소년 크리켓 대회가 최소 4번 취소된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크리켓 코치 사이먼 카티치는 "경기가 계속 취소되면 어린 선수들이 기술력을 향상하기 어렵다"며 "극한 기후가 다음 세대와 스포츠의 미래에 미치는 영향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영국 포츠머스대 인간·응용생리학자 마이크 팁톤 교수는 "주요 크리켓 국가에서는 더 자주 극심한 더위가 나타나는 추세이며, 단순한 실적 문제가 아닌 선수 안전의 문제"라며 "기온과 습도가 오르면서 선수들은 불편을 넘어 생리적으로 위험한 환경에서 경기를 치르고 있다"고 말했다.

영국 지속가능스포츠협회 회장 러셀 시모어는 "이번 사태는 크리켓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에 경종을 울리는 사건"이라며 "로즈 크리켓 구장은 100% 풍력발전으로 전환하는 여정을 시작했지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훨씬 더 많다"고 말했다.

보고서는 인도국가스포츠연맹이 호주와 영국 크리켓위원회와 협력해 폭염 대책을 시행할 것을 권고했다. 또 국제크리켓위원회가 대기 질 기준을 마련하고, 유엔 기후변화협약의 스포츠기후행동협정에 가입해 구체적 기후대응 지침을 따를 것을 제안했다. 

야구·축구도 타격...
경기 도중 구토와 탈수

최근 살인적인 폭염으로 야구와 축구 등 주요 스포츠 현장도 큰 타격을 입고 있다. 선수는 물론 심판까지 경기 중 탈진하거나 병원으로 실려가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6월 메이저리그에서는 신시내티 레즈의 엘리 델라 크루즈가 구토 증세를 보여 팬들을 놀라게 했다. 당시 경기 시작 기온은 33도에 달했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구원투수 트렌트 손튼은 열사병 증세로 쓰러졌고, 응급처치를 받은 뒤 경기장을 떠났다. 같은 경기에서 심판 채드 휘트슨도 탈수 증상으로 구토한 뒤 경기 도중 빠져나왔다.

축구장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최근 FIFA 클럽 월드컵은 40도를 넘는 고온 속에서 낮 경기를 강행해 일부 선수들이 벤치를 떠나 라커룸으로 대피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한국 프로야구도 폭염을 피하지 못했다. 지난해 8월 2일, KBO 리그는 42년 만에 처음으로 폭염을 이유로 경기를 취소했다. 당시 구장 지면 온도는 50도에 육박했고, 다음 날에는 선수들이 어지럼증과 구토를 호소했다. 결국 이틀 뒤 울산과 잠실 두 곳에서 폭염으로 경기가 중단돼 '하루 2경기 동시 취소'라는 기록이 세워졌다.

이에 KBO는 폭염 대비에 나섰다. 경기 중 쉬는 시간을 늘리고, 경기 시간을 늦추는 등 운영 방침을 조정했다. 선수와 관중의 안전을 위해 각 구단에 냉방기기와 음료, 쉼터를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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