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운영하던 대표 기후정보 사이트가 사실상 폐쇄 수순에 들어가는 등 트럼프가 '기후 지우기'에 몰두하는 사이 한국을 포함한 주요국들은 오히려 기후위기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영국은 정권 교체를 계기로 대응 수위를 높이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최근 가디언 등 외신은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이 운영하던 대표 기후정보 사이트 'Climate.gov'가 사실상 문을 닫는다고 보도했다. 이 사이트는 2010년부터 과학자들이 기후위기 정보를 제공해왔고, 매달 수십만 명이 방문하는 공신력 있는 곳이었다.
그러나 2월부터 인력 감축이 시작됐고 지난달 말에는 모든 직원의 계약이 종료됐다. 익명을 요구한 전직 직원에 따르면 직원들이 미리 만들어둔 자료만 이번 달 올라올 예정이며 다음 달부터는 새 정보가 올라오지 않을 예정이다.
레베카 린지 전직 프로그램 매니저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과학 기관이 대중에게 정보를 전달하지 못하게 하는 느리고 조용한 방식"이라며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정확한 정보만 전달하려고 애썼지만 결국 표적이 됐다"고 비판했다.
전직 직원들은 앞으로 이 사이트가 반기후·반과학 플랫폼으로 악용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동안 기후위기 허위 정보를 바로잡아온 인력이 모두 빠지면서, 잘못된 주장에 대응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기후변화' 단어도 금지
예산 삭감, 기관 축소 잇따라
이른바 '기후 지우기'는 이뿐만이 아니다. 미 국토부는 공식 문서에서 '기후변화'라는 용어 사용을 금지하는 지침을 내렸고, 농무부는 기후정보 사이트를 삭제했다가 농민들의 소송으로 복구하는 소동을 겪었다.
일론 머스크가 이끌던 정부효율부는 국립해양환경청 직원 1000명을 해고했고, 환경보호청장으로 임명된 리 젤딘은 31개 환경 규제를 줄줄이 철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협정 재탈퇴를 선언하며 화석연료 지원에 다시 불을 붙였다.
이처럼 미국이 정권 교체 이후 기후위기 대응에서 뒷걸음치는 사이, 한국과 영국은 새 정부 출범을 계기로 기후위기 대응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권 바뀐 한국, 영국
기후대응 속도
영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7월 키어 스타머 총리가 취임한 뒤 청정에너지에 대한 민간 투자가 348억 파운드(약 62조 원)에 달했다. 같은 해 11월 스타머 총리는 2035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 대비 81% 감축하겠다고 상향 조정했는데, 이미 절반 가까이 줄인 상태다. 14년 만에 정권 교체에 성공한 스타머는 2030년까지 영국을 청정에너지 강국으로 만들겠다고 밝힌 바 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걸었던 '기후에너지부' 신설이 조만간 윤곽을 드러낼 전망이다. 그동안 기후위기 대응이 환경부 안에서만 다뤄져 한계가 크다는 지적과 함께 온실가스 배출량 대부분이 에너지 분야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논의가 시작됐다. 산업부의 에너지정책실과 환경부의 기후탄소정책실을 통합해 경제와 환경을 아우르는 '기후 컨트롤타워'를 본격적으로 가동할 가능성이 크다.
국회미래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기후와 에너지 정책을 하나의 부처로 통합하면 균형 있는 기획과 집행력이 높아지고, 정책 이행 효과도 커진다"며 기후에너지부 신설을 제안했다. 실제 덴마크, 영국, 독일, 네덜란드처럼 기후와 에너지 부처를 통합한 국가는 온실가스 감축 성과가 뚜렷했다.
연구원에 따르면 이들 국가는 부처 통합 전후 5년간 온실가스 배출 저감률이 평균 5%에서 18%로 뛰었다. 반면 미국이나 일본처럼 기존 부처를 기후 전담으로 지정한 국가는 오히려 저감률이 감소하는 등 효과를 보지 못했다.
미국은 발 뺐지만
흔들림 없는 기후 질서
미국은 전세계 기후 질서에서 이탈했지만, 주요국들은 흐름을 이어가는 추세다.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노르웨이 국부펀드는 미국의 압박 속에서도 ESG 기준을 고수하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블룸버그는 미국 증권사 제프리스의 보고서를 인용해 "약 2605조 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노르웨이 국부펀드가 ESG 데이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ESG 기준을 지켜왔다"고 전했다.
노르웨이 국부펀드의 카린 스미스 이헤나초 거버넌스·컴플라이언스 최고책임자는 "최대 수익을 창출하되 책임 있는 소유자가 되는 것이 우리의 의무"라고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밝혔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8일 유엔해양총회를 앞둔 연설에서 "기후위기가 의견일 뿐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과학적 사실"이라며 "며칠 안에 몇몇 정부와 함께 강력한 결정을 내리겠다"고 밝히며 기후위기를 '의견 차이'로 여기는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했다. 미국은 이 총회에 대표단을 보내지 않았다.
중국도 재생에너지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체 전력의 26%를 태양광과 풍력으로 생산하며 재생에너지 발전 비용도 10년간 60% 낮췄다. 올해만 1373조 원에 이르는 재생에너지 투자가 예정돼 있다. 지난해 재생에너지 산업은 중국 GDP의 10%, 경제성장률의 26%를 차지했다.
사이먼 스틸 유엔기후변화협약(UNFCCC) 사무총장은 "중국과 브라질, 인도 등 주요 신흥국들이 적극적으로 탄소 감축 목표를 설정하고 기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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