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는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기후위기에 취약한 국가다. 고온과 가뭄, 물 부족으로 농업 기반이 흔들리는 가운데, 기후위기 대응 체계에서도 여성은 보이지 않는다. 최근 국제구호단체 옥스팜(Oxfam)은 보고서를 통해 이라크 농촌 여성들이 기후위기 대응 과정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된다고 지적했다.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사진 Pixabay)/뉴스펭귄
독자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으로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사진 Pixabay)/뉴스펭귄

보고서 <The Private Sphere Trap>에 따르면 이라크 여성은 전통적으로 가사·양육·돌봄 등 '사적 영역' 책임을 맡으며, 공적 영역 의사결정에 참여하지 못하는 구조에 놓여 있다. 이는 기후위기 대응 계획과 실행에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여성들은 농업에 참여하면서도 어떤 작물을 심을지, 어떻게 판매할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빠져 있다.

이라크 농업은 전체 GDP의 5.9%, 고용에서 9%를 차지한다. 하지만 91%가 관개(농지에 물을 인공적으로 공급)에 의존하고 있어 물 부족에 매우 취약하다. 보고서는 농민들이 겪는 주요 기후 스트레스로 수자원 고갈, 작물 생산성 저하, 농자재 비용 상승, 병해충 확산 등을 꼽았다. 특히 소농은 기후변화에 적응할 자원과 기술이 부족하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여성은 대응 역량을 기르기 어려운 상황에 놓인다. 대부분 정보나 교육, 재정 지원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으며, 기술 훈련이나 정부 프로그램에 접근하지 못한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전화번호 대신 남편이나 자녀의 번호를 적어내는 등 디지털 접근성도 낮은 상태다.

보고서에 따르면 현지 여성은 기후대응 논의에서 주로 의견을 제시하는 수준에 머물며, 결정 과정에서는 배제된다는 평가가 나온다. 실제 결정은 남성이 내려서다. 가정 내에서 양육·음식 준비 등 돌봄을 위한 결정은 여성이 담당하지만, 재정이나 생계 관련된 결정은 대부분 남성 몫이다. 시장·공공회의 등 정보와 결정이 이뤄지는 장에도 여성은 접근이 제한된다. 혼자 외출조차 허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보고서는 이렇듯 여성의 참여를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로 '경험 부족'이 아닌, '경험이 허용되지 않은 구조'를 지적했다. 참여 기회가 없기 때문에 경험을 쌓지 못하고,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배제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적 배제는 여성에게 더 큰 기후위기 피해로 돌아온다. 농촌 여성은 가족농에 참여하면서도 임금을 받지 못하고, 기후변화로 인해 수입을 잃어도 대체 수단이 없다. 무더위 속 노동으로 건강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일부 지역에서는 물 사용량이 기준보다 초과되면 남성이 여성에게 벌을 주는 관행도 있다.

기후위기로 인한 이주도 여성에게는 또 다른 위기다. 남성이 도시로 이주해 여성이 홀로 남거나, 가족 전체가 이주할 경우 여성은 새로운 공동체에서 사회적 연결망 없이 지내며, 취업도 어려워진다.

보고서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후위기 성별 영향을 분석하고 반영한 정책 설계 △여성 농민을 위한 맞춤형 정보·기술·재정 지원 △포용적 참여 공간 조성 △여성 리더십 강화 및 지역 여성 간 지식 전달 체계 구축 등을 제안했다. 특히 공동체 내에서 존경받는 여성을 리더로 세워 사회 인식을 바꾸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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