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우다영 기자] "돈쭐내다"

'돈으로 혼쭐을 내주다'는 의미로 좋은 가게나 선한 기업을 응원할 때 쓰이는 말이다. 그런데 환경에도 '돈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있다. 좋은 취지의 지출을 아끼지 않는 것 처럼 환경을 살리는 데에도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다. '자연금융'이라고도 부르는데 도대체 무슨 개념일까? 

최근 '기후솔루션' 주관으로 열린 <기후 및 생물다양성 위기 대응을 위한 자연금융 확대 토론회>에서 위와 같은 '자연금융(Nature Finance)'이 그 해법으로 제시됐다. 다만 한국에서는 아직 걸음마 단계라는 지적도 나온다.

'자연금융'이라는 개념이 국내 새롭게 논의되고 있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자연금융'이라는 개념이 국내 새롭게 논의되고 있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자연금융, 도대체 뭐길래?

자연과 금융. 어색한 조합의 두 단어다. '자연금융'은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돈이 흘러가는 방향을 바꾸는 개념이다. 기존 기후금융이 탄소 배출 감축에 집중했다면, 자연금융은 더 나아가 생물다양성 보전과 생태계 복원을 위한 투자를 포함한다.

프랑크 리스버만(Frank Rijsberman)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 전 사무총장은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위기는 연결돼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자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후위기 대응에 탄소 배출 감축이 필수적이지만, 자연 생태계 복원 역시 중요하다. 그는 자연기반해법(NBS)이 전체 기후 해결책 3분의 1을 차지할 수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탄소 감축뿐만 아니라 생물다양성 보전을 위한 금융 투자가 필수적이다"라고 말했다. 산림 보호, 해양 생태계 복원이 기후위기 해결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의미다.

1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기후 및 생물다양성 위기 대응을 위한 자연금융 확대 토론회' 현장 (사진 우다영 기자)/뉴스펭귄
11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기후 및 생물다양성 위기 대응을 위한 자연금융 확대 토론회' 현장 (사진 우다영 기자)/뉴스펭귄

자연금융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

이날 토론회에는 금융권, 연구원, 환경단체 등 다양한 관계자가 머리를 맞댔다. 자연금융이 가진 가능성과 한계를 두고 여러 의견이 오갔다.

국내 '자연금융 격차 진단' 보고서를 발표한 엘레오노라 파산(Eleonora Fasan)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한국의 자연금융 규모가 여전히 미미하다고 분석했다. 연구에 따르면, 한국이 연간 약 5조5500억 원을 자연 보전에 투자해야 하지만, 현재 투자 수준은 한참 못 미친다.

그는 "한국 금융기관들은 자연금융을 ESG(환경·사회·지배구조)의 부차적 요소로만 보고 있으며, 대규모 자금이 온실가스 감축 사업에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구경아 한국환경연구원 연구위원은 "자연금융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정책적 기반이 먼저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생물다양성에 유해한 보조금은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생태계 보전을 위한 지원 정책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해한 보조금', 즉 유해보조금은 국가가 지원하는 특정 산업이 생태계 파괴를 초래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대규모 개발 사업, 농업 보조금이 '농약 지원' 등 환경을 해치는 방식으로 운용되는 경우를 말한다.

반면 금융권에서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말했다. 김경남 KB금융그룹 ESG상생본부장은 "기후위기가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영향을 인지하고 있지만, 자연금융에 대한 체계적인 접근은 아직 부족하다"고 인정했다. 현재 일부 금융기관들이 환경을 고려한 투자를 시도하고 있지만, 대부분 개별적인 프로젝트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다.

예를 들어 KB금융은 꿀벌 개체 수 회복, 사막화 방지 숲 조성, 해양 생태계 복원 프로젝트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들이 금융권 전체로 확신되려면 보다 체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조대현 아시아기후변화투자자그룹(AIGCC) 매니저는 자연금융이 기후금융보다 뒤처진 이유로 "측정 가능성과 경제적 논리 부족"을 꼽았다. 그는 "한국에서도 금융기관이 자연 관련 리스크를 보다 적극적으로 분석하고 공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연금융이 활성화되려면 기업과 투자자들이 자연 보전에 미치는 영향을 명확하게 측정하고 공개해야 한다는 의미다.

황재학 금융감독원 수석조사역은 "네덜란드 중앙은행이 2018년 기후 스트레스 테스트를 처음 시행했고, 7년이 지난 지금 주요 금융기관들이 이를 따르고 있다. 자연금융도 유사한 흐름을 따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생물다양성이 기후위기와 반드시 같은 경로를 따르지 않는다"며 정교한 정책 설계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걸음마라도 떼려면"

이날 논의된 '자연금융 활성화'를 위한 방안은 ▲명확한 법·제도 정비 ▲민간 투자 확대 ▲데이터와 평가 기준 마련 ▲자연 기반 금융상품 확대 ▲정부 역할 확대다.

신재은 풀씨행동연구소 캠페이너는 자연금융의 핵심을 이렇게 정리했다. "공공과 민간이 생물다양성을 해치는 곳이 아니라 보전이 필요한 곳에 돈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가 차원에서 예산을 전면 재검토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하면서 "(예를 들어) 남획을 조장하는 유류비 지원, 농약·살충제 보조금을 유지하는 대신, 이를 생태계 보전으로 전환하는 방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정부가 산업을 지원할 때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으면, 결국 생태계 파괴는 가속한다는 의미다.

민간 기업의 역할에 대해서는 "탄소 배출량처럼 기업이 생물다양성에 미치는 영향도 정량적으로 평가하고 투자자들에게 공개해야 한다"며 "투명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해외 연기금 같은 주요 투자자들의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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