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유일한 자생지인 구상나무는 IUCN 적색목록 멸종위기종(EN)이다. (사진 국립생물자원관)/뉴스펭귄
한국이 유일한 자생지인 구상나무는 IUCN 적색목록 멸종위기종(EN)이다. (사진 국립생물자원관)/뉴스펭귄

[뉴스펭귄 곽은영 기자] ‘메리 크리스마스’는 ‘즐거운 크리스마스 보내세요’라는 의미의 인사말이다. 여기에서 메리(Merry)는 ‘즐거운, 행복한’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정작 크리스마스를 상징하는 트리 ‘구상나무’는 지금 행복할 수 없는 상황이다. 왜일까?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면 북유럽 어딘가가 고향일 것 같지만 의외로 유일하게 우리나라가 자생지인 고유종이다. 제주 한라산이 고향으로 덕유산, 지리산 등 해발 1000m 이상 산지에 분포한다. 구상나무의 이름은 제주도에서 ‘쿠살낭’이라고 부르던 데서 유래됐다. ‘쿠살’은 성게를 뜻하는 제주 말로 쿠살낭은 ‘잎이 성게 같은 나무’라는 의미다.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된 건 영국의 식물분류학자 어니스트 헨리 윌슨이 1920년대 학계에 구상나무의 존재를 소개하면서다. 겨울에도 푸르고 가시가 없으면서 가지가 산처럼 뻗어 있어 크리스마스 장식을 걸기에 제격인 구상나무는 곧 크리스마스 트리로 사랑받기 시작했다. 이후 90종 이상의 품종으로 개량됐다. 

그러나 구상나무가 세상에 소개되고 100년 사이 최대 서식지인 한라산의 구상나무는 숲 면적의 절반이 줄어들 만큼 심각한 상황에 놓여 있다. 푸른 빛도 잃어가고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서는 멸종위기종(EN)으로 분류하고 있다. 

 연구에 따르면 구상나무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 것은 기온 상승과 태풍, 가뭄과 같은 기상 현상이다. (사진 국립생물자원관)/뉴스펭귄
연구에 따르면 구상나무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 것은 기온 상승과 태풍, 가뭄과 같은 기상 현상이다. (사진 국립생물자원관)/뉴스펭귄

지난 9월 18일 제주도 세계유산본부는 1918년 1168.4ha에 달하던 한라산 구상나무 숲이 2021년 606ha로 약 48% 줄었다고 밝혔다. 무려 562.4ha가 감소한 것인데 이는 축구장 804개를 합친 것과 맞먹는 면적이다. 

구상나무의 수를 반토막 내고 푸른 빛을 앗아간 범인은 이상기후다. 연구에 따르면 구상나무 생태계에 영향을 미친 것은 기온 상승과 태풍, 가뭄과 같은 기상 현상이다. 여기에 구상나무를 목재로 활용하고 군락지를 방목지를 이용하는 것과 같은 요인도 더해졌다. 

구상나무의 서식지와 개체수 이상은 이번에 처음 제기된 게 아니다. 지난해 4월 제주도 세계유산본부가 발표한 ‘제22호 조사연구보고서’에 따르면 2022년 8월 한라산 영실 병풍바위 일대 구상나무에서는 잎녹병이 처음으로 발견됐다. 기온 상승으로 병원균이 확산된 것이다. 

시사위크는 지난해 5월 말 “지리산과 제주도 등 서식지에서 허옇게 죽어버린 구상나무 고사목이 즐비하다. 특히 지리산의 경우, 반야봉 일대 구상나무 숲 절반 이상이 고사했다. 심한 곳은 90%까지 집단 고사가 일어났다”고 보도했다. 

고사의 주된 이유는 역시 기후위기였다. 전문가들은 지구 가열화로 병원균이 확산하는 등 서늘한 곳에서 서식하는 구상나무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주는 요인이 증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구상나무의 열매와 잎은 여러 곤충의 먹이가 되고 수액은 토양 미생물의 양분이 된다. 구상나무의 존재 자체가 산림 생태계 건강과 직결되는 만큼 종 보존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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