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후림 기자] 선박과 충돌해 척추가 부러진 것으로 보이는 혹등고래가 포착됐다.

해양보호단체 태평양고래재단은 최근 멕시코 북서부 바하칼리포르니아수르주 앞바다에서 척추에 심각한 부상을 입은 혹등고래를 발견했다고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전했다.

이 혹등고래는 지난달 26일 다이버이자 수중사진작가인 알렉산더 슈미트가 처음 목격했다. 발견 당시 혹등고래의 꼬리쪽 척추는 S자로 심하게 휘어져 있었다. 슈미트는 이 장면을 드론 영상으로 촬영해 태평양고래재단에 보냈다.

당초 전문가들은 이 고래가 2022년 12월 발견된 '문(Moon)'이라는 혹등고래와 동일 개체일 것으로 추측했다. 문은 선박과 충돌로 등뼈가 부러진 채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에서 미국 하와이까지 4800㎞을 이동해 화제가 된 혹등고래다. 혹등고래는 여름에는 추운 알래스카에서 지내다 겨울철이 되면 짝짓기를 하거나 새끼를 낳기 위해 따뜻한 하와이와 멕시코 연안으로 이동한다.

문은 척추 부상으로 꼬리를 사용하지 않고 가슴지느러미만 사용해 먼 거리를 헤엄쳤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샀다. 당시 전문가들은 "기적 같은 일이지만 이후 알래스카로 다시 돌아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전문가 분석 결과 이번에 발견된 혹등고래와 문은 다른 개체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에 발견된 개체와 문을 비교한 이미지. 오른쪽이 문이다. (사진 태평양고래재단 인스타그램)/뉴스펭귄
이번에 발견된 개체와 문을 비교한 이미지. 오른쪽이 문이다. (사진 태평양고래재단 인스타그램)/뉴스펭귄

태평양고래재단 수석 생물학자 스테파니 스택 박사는 과학매체 라이브사이언스에 "정밀분석 결과 문과 다른 개체"라며 "문과 마찬가지로 척추가 심하게 변형돼 치명적인 부상일 가능성이 높고, 선박과 충돌하면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스택 박사는 "허리가 부러지면 정상적인 수영이 불가하고 이주, 먹이활동, 포식자를 피하는 능력이 떨어져 생존하기 어렵다"며 "심각한 스트레스와 통증에 시달리고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사진 알렉산더 슈미트 인스타그램 영상 캡처)/뉴스펭귄
(사진 알렉산더 슈미트 인스타그램 영상 캡처)/뉴스펭귄

이처럼 선박과 고래가 충돌하는 사건은 한 해 수만 건 이상 발생한다. 국제 비영리단체 '바다의 친구(Friend of the Sea)'에 따르면 매년 고래 수천 마리가 선박과 충돌로 목숨을 잃는다. 심각한 부상을 입은 고래는 고통 속에 천천히 굶어죽게 된다.

선박 사고는 특히 미국 서부 해안에서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멸종위기에 처한 고래종이 선박과 부딪혀 죽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미국 국립해양대기청(NOAA)은 길이 20m가 넘는 선박의 경우 특정 구역에서 속도 18.5㎞/h 또는 10노트를 넘지 않도록 하는 규정을 시행하기 이르렀다.

스택 박사는 "선박 충돌은 지금 고래가 직면한 가장 심각한 위협"이라며 "이번 사례는 매우 비극적이지만 향후 고래 사망을 예방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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