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후림 기자] 꿀벌 집단실종이 기후위기 탓이 아니라는 농림축산식품부 설명을 반박하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달 22일 농림축산식품부(이하 농식품부)는 2022년 9월부터 11월까지 월동에 들어가기 직전 약 40만~50만 봉군이 사라진 것과 관련, 이번 피해는 기후위기와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다고 밝혔다. 벌통 하나당 평균 벌 2만마리가 서식한다고 가정하면 약 100억마리가 실종된 셈이다.
농식품부는 이번 실종의 원인을 꿀벌 기생충인 '응애' 방제 실패로 지목했다. 꿀벌 집단폐사 피해를 입은 양봉농가가 응애 방제를 제대로 하지 못해 발생한 일이라는 것이다. 아울러 이번 꿀벌 실종 사태가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보인다는 추측도 내놨다. 2022년 꿀 생산량이 평년보다 15% 높고, 자연 생태계에서는 양봉꿀벌이 아닌 나비, 야생벌 등에 의한 화분매개 비중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몇십년간 벌을 키워온 양봉농가들은 최근 몇 년 사이 일어나고 있는 대규모 꿀벌실종 사태가 최초라는 점을 강조하며 특히 기후위기에 주목하고 있다. 이상기후에 여왕벌이 일찍 산란하면서 날씨를 착각해 활동에 나선 꿀벌들이 집에 돌아오지 못하고 죽는다는 것이다. 온도 변화에 민감한 꿀벌 면역 체계가 이상기후로 무너지면서 바이러스가 쉽게 발현할 수 있다는 점도 이들이 기후위기에 주목하는 이유다.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도 이번 농식품부 발표에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번 꿀벌 실종사태가 기후위기와 직접적 연관성이 없다는 농식품부 주장과 달리 그린피스는 응애 피해 규모 증가는 기후위기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린피스는 2021년 국제학술지 '사이언티픽리포트'에 발표된 연구결과를 증거로 들며 기후위기로 응애가 활동하기 좋은 환경이 조성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꿀 생산량이 증가한 사실을 고려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는 판단에도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꿀 생산량이 증가한 건 지난해 역대 가장 낮은 강수량으로 꽃대 발육과 벌 성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지, 이를 곧 종 다양성 지수 등 생태계를 평가하는 지표로 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특히 꿀 생산량은 양봉산업의 지표일 뿐, 꿀 생산량이 높다고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이 적다고 분석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린피스는 "이번 발표를 분석한 결과, 농식품부가 꿀벌을 가축 산업의 일종으로만 인식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며 "그러나 꿀벌 실종으로 인한 자연 생태계 붕괴는 농업은 물론 우리 세대와 후손의 생존마저 위협하는 중차대한 문제인 만큼 현재 꿀벌 실종사태를 다방면으로 분석하고 해결책을 강구하기 위해 '꿀벌 살리기 위원회' 설립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 역시 이번 사태가 기후위기와 연관성이 없다는 농식품부 주장에 의문을 표했다. 최근 국내에서 일어나는 꿀벌 실종 사태는 단지 한두가지 요인에 의해 좌우된다기보다 기생성 응애, 말벌과 같은 해충 위협, 질병, 봉군 과밀로 인한 경쟁과 과로, 영양 부족, 농약 같은 화학오염 등 복합적 요인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고, 여기에는 기후위기도 포함된다.
안동대학교 식물의학과 정철의 교수는 8일 <뉴스펭귄>에 "농식품부가 응애를 지목한 배경에는 직접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현장에서 조절 가능한 요인이기 때문이라 판단된다. 그러나 그 측면에는 다양한 부가적인 요인이 있을 수 있는데, 그중 하나는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이상기후 현상과 같은 기후위기"라며 "인과관계를 쉽게 구명하거나 경로를 특정하기는 어렵지만 기후위기는 분명 꿀벌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고 말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기후위기가 꿀벌뿐 아니라 꿀벌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각종 화분매개곤충들에게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정 교수는 "화분매개곤충 밀도가 많이 떨어지고 있다. 이는 곧 농업생태계뿐 아니라 야생생태계를 약화시킬 수 있다는 신호탄"이라며 "꿀벌 대량 폐사 영향은 상대적으로 야생생태계보다 농업생태계에서 더욱 크게 나타날 수 있지만 중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결국 야생생태계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최근 서울대 연구진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꽃벌 130여종뿐 아니라 양봉꿀벌 또한 산속 다양한 식물과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다. 전체 식물 33%에는 양봉꿀벌이 더 많이 방문했고 나머지 67%에는 야생벌 방문 빈도가 더 높았다.
정 교수는 "당장 시급한 것 중 하나는 정부가 꿀벌 폐사 손실로 당장 생계를 위협받는 양봉농가 고통을 이해해 주는 것"이라며 "동시에 구체적인 실태조사와 영향평가가 이뤄져야 한다. 문제가 생기고 나서 취하는 대응적 방안도 중요하지만, 지금 나타나고 있는 실태 요인을 파악할 수 있는 조사와 통계분석, 더불어 중장기적인 안정화 계획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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