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배출 미스터리] 종이팩 전용수거함 안 보이는 진짜 이유

  • 최나영 기자
  • 2022.07.07 09:17

종이류와 구분해 따로 배출하라면서…
'종이팩 전용수거함' 설치 지자체는 드물어

[뉴스펭귄 최나영 기자] 서울시 OO구 단독 주택에 사는 시민 A씨는 우유팩을 종이와 구분해 따로 ‘종이팩’으로 분리배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게 됐다. 이에 A씨는 우유팩을 종이팩 전용수거함에 한꺼번에 배출하기 위해 우유를 마시고 나면 우유팩을 씻어 말린 뒤 따로 모아두었다. 하지만 A씨는 우유팩을 가득 모아도 따로 분리배출할 수 없었다. 포털 사이트를 검색해 봐도, 동네 주변을 살펴봐도 A씨가 사는 OO구에서는 분리배출 전용수거함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수소문 끝에 A씨는 우유팩을 주민센터로 분리배출하도록 하는 지자체도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A씨는 반가운 마음으로 거주하는 지역의 주민센터에 종이팩을 가져가도 되는지 문의했지만, 해당 주민센터에서는 종이팩을 따로 받고 있지 않다는 답변만 되돌아 왔다. 결국 A씨는 모아두었던 우유팩을 기존처럼 다른 파지와 함께 문 앞에 분리배출해야 했다.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사진 클립아트코리아)/뉴스펭귄

종이팩을 제대로 재활용하기 위해서는 종이팩 전용수거함에 분리배출해야 하지만, A씨의 사례처럼 정작 시민들은 종이팩 전용수거함을 찾기 힘든 경우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주민센터를 통해 종이팩을 분리배출하도록 하고 있는 지자체도 있지만, 이 경우도 홍보가 부족해 시민들이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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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유 때문일까. 종이팩 재활용률은 최근 몇 년간 되려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다.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에 따르면 종이팩의 전체 출고량 중 재활용률은 2003년(22%)에서 2013년(35%)까지 증가 추세를 보였다. 하지만 이후 2018년 22%, 2019년 19%, 2020년 16%로 꾸준히 떨어졌다. 멸균팩을 포함해 종이팩 사용량은 늘어나는데 재활용을 위한 제도개선은 그대로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7일 <뉴스펭귄>은 종이팩 분리배출 실태와, 종이팩 분리배출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근본 원인을 살펴봤다.

 

우유팩, 일반 종이와 섞어 분리배출하면 재활용 어려워…
종이류 아닌 ‘종이팩’으로 전용수거함에 따로 배출해야

종이팩은 주로 위생적으로 안전이 필요한 우유‧음료 등을 포장하는데 사용되는 용기다. 음료를 보호하기 위해 비닐 재질인 폴리에틸렌(PE)을 양면에 덮는 탓에 일반 종이와 섞어 분리배출하면 재활용이 어렵다. 종이팩 중 안쪽에 알루미늄 코팅까지 더해진 멸균팩의 경우 재활용은 더욱 쉽지 않다. 종이팩을 일반 종이가 아닌 ‘종이팩’으로 따로 분류해 분리배출을 해야 하는 이유다. 실제 환경부는 ‘재활용가능자원의 분리수거 등에 관한 지침’을 통해, 종이팩을 다른 종이류와 혼합되지 않게 종이팩 전용수거함에 배출하도록 지자체에 분리배출 요령을 제시하고 있다.

우유팩은 일반 종이류와 섞이지 않게 따로 구분해 '종이팩 전용수거함' 등에 배출해야 재활용 가능성이 높다. (사진 최나영 기자)/뉴스펭귄
우유팩은 일반 종이류와 섞이지 않게 따로 구분해 '종이팩 전용수거함' 등에 배출해야 사실상 재활용이 가능하다. (사진 최나영 기자)/뉴스펭귄

물론 이 지침에는 종이팩 전용수거함이 없는 경우, 종이류와 구분할 수 있도록 가급적 끈 등으로 묶어 종이류 수거함으로 배출해도 된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종이팩을 종이류와 섞어서 같이 배출하면 재활용업체가 충분한 양을 모으기 힘들기 때문에 사실상 재활용이 안 될 가능성이 높다. 때문에 종이팩을 재활용하기 위해선 전용수거함 등을 통해 종이팩을 대량으로 모아서 배출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환경부, 종이팩 분리배출 현황조차 파악 못 해

하지만 다수의 시민들은 종이팩을 종이류와 따로 분리해 배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이 지난해 9월 시민 1001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설문 참여자의 50.5%는 종이팩류를 종이와 따로 분리배출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답했다.

그렇다면 종이팩 분리배출 방법을 인지하고 있다면 종이팩을 전용수거함에 제대로 배출할 수 있을까? 이 경우도 그렇지 못할 확률이 높다. 각 지자체의 종이팩 전용수거함 설치 현황을 정부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을 정도로 종이팩 분리배출 체계는 정돈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뉴스펭귄>과의 통화에서 “전국에 지자체가 229개 있고 또 한 구당 행정구역도 있는데다 (지자체에서 분리배출 관리를 하지 않는) 아파트 단지도 굉장히 많다”며 “그래서 각 지자체들이 종이팩 분리배출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에 대해 일일이 취합해 가지고 있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정음 서울환경운동연합 활동가는 "종이팩 분리배출이 실제로 가능한지 여부가 해당 지자체의 종이팩 담당 공무원 몇 명에 의해 결정되고 있는 실정"이라며 "환경부가 명확하게 인지해서 의무적으로 전용수거함도 설치하고 선별장에서 선별도 하게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표 서울환경운동연합)/뉴스펭귄
(표 서울환경운동연합)/뉴스펭귄

일부 지자체 "종이팩, 그냥 종이와 섞어 배출하라"
종이팩 전용 분리배출 창구 아예 마련 안 해 

지자체별로 중구난방인 종이팩 분리배출 실태는 <뉴스펭귄> 자체 조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뉴스펭귄>이 전국 지자체 중 일부를 무작위로 선정해 확인한 결과, 서울 은평구를 비롯한 일부 지자체는 종이팩 전용수거함 설치나 종이팩 수거보상제 실시와 같이 종이팩을 따로 분리배출할 수 있는 방법을 아예 마련하고 있지 않았다. 은평구민이 종이팩을 분리배출 하려면 종이와 섞어 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인 셈이다.

서울시 마포구‧종로구‧서초구, 안양시 만안구를 비롯한 지자체는 종이팩 전용수거함을 마련하지 않고 있지만, 주민센터에 종이팩을 가져다 주면 휴지와 같은 물품으로 교환해 주는 종이팩 수거보상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서울시 강서구를 비롯한 일부 지자체는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활용한 무인 종이팩 수거함도 설치해 운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해당 제도가 주민들에게 얼마나 알려져 있는지는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종이팩 수거보상제를 실시하고 있는 지자체 ㅇ시에 사는 시민 B씨는 “거주지역에서 종이팩을 별도로 분리배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본 적이 있는데, 우리 지역에서는 별도 분리배출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이 실시한 조사에서도 거주하는 곳에 종이팩 전용 수거함이 있는지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62.5%가 ‘없다’고 답했다. 전체 응답자 중 85.1%는 '주변에 종이팩 분리수거함이 있다면 종이팩만 따로 분리배출할 의향이 있다'고 답변했다.

시민들이 지자체의 종이책 전용수거함이나 종이팩 수거보상제를 통해 종이팩을 분리배출해도 해당 종이팩을 재활용업체가 가져가 제대로 재활용하는지는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박 활동가는 “지난해 시민들이 전국 지자체에 하나하나 물어 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주민들이 가져다준 종이팩이 이후 어떻게 처리되는지 잘 모른다’고 답한 지자체도 많았다”며 “재활용업체가 종이팩을 가져간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선별해서 재활용하는지는 따라가서 확인해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업체가 제대로 재활용하는 지 여부는 지자체가 명확히 알고 관리해야 할 영역”이라고 강조했다.

 

(사진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유튜브 채널 갈무리)/뉴스펭귄
(사진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유튜브 채널 갈무리)/뉴스펭귄

국내 종이팩 재활용업체 10곳도 채 안 돼…
환경부 “종이팩 분리배출 해도 가져가는 업체 적어”

환경부는 종이팩 분리배출 체계를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고 해명한다. 시민들이 종이팩을 분리배출 해도 이를 최종적으로 재활용할 업체가 많지 않은 탓에, 종이팩 분리배출을 유도하기 힘들다는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현재 국내에는 멸균팩을 재활용하는 업체 1곳을 포함해 종이팩을 재활용하는 업체는 10곳이 채 되지 않는 것으로 파악된다.

환경부 관계자는 “종이팩을 재활용하는 것이 기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종이팩 재활용에 대한 재활용업체들의 투자가 적고 관련한 전국적인 인프라가 거의 깔려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그래서 지자체들도 중앙정부에서 제안한 대로 처음에는 종이팩을 분리 배출하게끔 계도를 하다가도 결과적으로는 종이팩을 가져갈 업체가 별로 없으니 (그만두는 것 같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 “종이팩 재활용 비용 비싸고, 재생 휴지 수요도 적어…
재생 휴지 팔리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것 아닌가"

<뉴스펭귄> 취재를 종합하면, 재활용업체들이 종이팩을 선호하지 않는 일차적인 이유는 비용 때문이다. 종이팩은 양면이 비닐로 코팅돼 있어 일반 종이보다 재활용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 종이팩은 종이의 섬유를 물에 푸는 해리 과정을 거치면 종이와 비닐이 분리된다. 한국포장재재활용사업공제조합 관계자는 “정부가 종이팩을 재활용하는 업체에 지원하기도 하지만, 요새는 인건비나 유류비가 워낙 많이 오르다 보니 지원을 받아도 이미 적자”라고 말했다.

이어 이 관계자는 “종이팩은 캔이나 플라스틱과 달리 유제품 등을 담던 것이다 보니 금방 썩고 냄새도 나서 장기간 보관이 안 되다 보니 재활용업체들이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며 “소비자들이 종이팩을 배출할 때 물로 씻어 말려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공제조합은 포장재 재활용의무 이행을 위해 설립된 곳으로, 포장재를 생산하고 사용하는 약 5천여 회원사로 구성돼 있다.

종이팩의 비닐과 이물질을 분리하기 위해 물과 약품을 함께 반죽하고 있는 장면. (사진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유튜브 채널 갈무리)/뉴스펭귄
종이팩의 비닐과 이물질을 분리하기 위해 물과 약품을 함께 반죽하고 있는 장면. (사진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유튜브 채널 갈무리)/뉴스펭귄

종이팩을 재활용한 제품에 대한 수요가 낮은 탓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공제조합 관계자는 “종이팩은 주로 화장지로 재활용되는데, 재생 화장지에 대한 수요가 많지 않으니 재활용업체도 종이팩 반입을 원하지 않는 것”이라며 “공공기관인 국방부도 요새는 다 천연펄프 화장지만 쓴다”고 말했다. 이어 “재생 화장지가 펄프 화장지에 비하면 약간 누렇기도 하고 까실까실하기도 하지다보니 인식이 좋지 않다”며 “하지만 그렇다고 실제 재생 화장지의 청결도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환경부 “인프라 활성화하면 종이팩 분리배출 전국 확대할 것”

업계 관계자들은 종이팩 재활용 활성화를 위해선 종이팩의 전 생애주기에 대한 관리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공제조합 관계자는 “자원이 순환하려면 생산, 배출, 재활용 제품의 수요까지 유기적으로 맞물려야 하는데 지금은 그런 체계가 붕괴가 돼 있다”며 “재활용 업체들이 물건을 만들어도 팔리지 않으면 만들 수 없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시민들이 종이팩을 별도로 분리할 수 있도록 정부가 체계를 재정비하고 홍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공제조합 관계자는 “종이팩을 배출할 때도 용기에 이물질이 많이 묻어 있으면 재활용이 안 된다”며 “재활용을 할 수 있도록 잘 씻어 말려 버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반면 환경단체는 “인프라 구축이 안 돼 종이팩 재활용을 못한다는 것은 핑계”라고 비판한다. 박 활동가는 “환경부가 종이팩 재활용 의무율을 높이면 종이팩 (생산)업체들은 벌금을 덜 내기 위해 의무율을 지키려 할 것”이라며 “그런 식으로 압박을 하면 인프라는 자연스럽게 구축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환경단체들은 그밖에도 공동주택 종이팩 전용수거함 설치 의무화, 지자체 재활용 선별장 내 종이팩 의무 선별 지침 마련과 관리‧감독하는 시스템 구축을 촉구했다.

서울환경운동연합은 지난해 12월 종이팩 재활용 체계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 서울환경운동연합)/뉴스펭귄
서울환경운동연합은 지난해 12월 종이팩 재활용 체계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사진 서울환경운동연합)/뉴스펭귄

정부는 지난해 말께부터 시행 중인 ‘종이팩 분리배출 시범사업’을 전국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환경부는 지난해 12월부터 세종시와 경기도 남양주시‧부천시‧화성시의 66개 공동주택 단지를 대상으로 종이팩 분리배출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종이팩과 멸균팩을 구분해 배출하게 하고, 이를 해당 지자체의 책임 아래 서로 섞이지 않도록 수거해 각기 재활용하게 하는 사업이다. 환경부 관계자는 “지금은 (종이팩 재활용 관련) 인프라를 찾아나가고 있는 과정이고, 그것이 확보가 되면 전국적으로 (종이팩을 종이와 따로 분리배출 할 것을 더 많이) 홍보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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