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 이수연 기자] 멸균팩 재활용지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가운데 내년부터 멸균팩에 '재활용 어려움' 표시를 한다는 환경부 지침이 순환경제를 방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LG생활건강은 화장품·치약 포장재로 멸균팩을 재활용한 종이를 활용하겠다고 11일 밝혔다. 멸균팩 재활용지는 10월부터 페리오, 죽염 등 LG생활건강 치약 브랜드의 낱개 상자 포장재로 우선 쓰일 계획이다. 이후 신제품 화장품 세트와 내년 설 명절 선물세트 포장에도 멸균팩 재활용지를 적용해 연간 최대 1081톤의 종이 포장재를 멸균팩 재활용지로 만들 수 있다고 전망했다.

종이팩은 크게 우유를 담는 일반팩과 두유, 주스 등을 담는 멸균팩으로 나뉜다. 멸균팩은 내부 은박지에 열 차단 효과가 있어 장기간 실온 보관하기 쉽다. 환경 측면에서도 페트병보다 탄소 배출량이 3분의 1 정도 적어 플라스틱 대체재로서 멸균팩 사용량이 늘어나고 있다.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종이팩 제품 중에 멸균팩은 2014년 약 25%에서 2022년 47%로 증가했다.

멸균팩 재활용지로 만든 패키지를 적용할 예정인 LG생활건강 페리오 프로폴리스 치약. (사진 LG생활건강)/뉴스펭귄
멸균팩 재활용지로 만든 패키지를 적용할 예정인 LG생활건강 페리오 프로폴리스 치약. (사진 LG생활건강)/뉴스펭귄

 

플라스틱 대체재 종이 멸균팩
수요 늘어나는데 '재활용 어려움'?

멸균팩 사용량과 재활용지 수요가 늘고 있지만 2024년부터 멸균팩에는 '재활용 어려움' 표시가 생길 예정이다. 환경부는 지난 2022년 9월 이러한 내용의 '분리배출표시제에 관한 지침' 개정안을 행정예고했다.

멸균팩의 약 70%는 종이로 구성되지만 알루미늄, 폴리에틸렌 등 소재가 들어가기 때문에 재활용 공정이 까다롭다는 게 개정안의 배경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활용이 불가한 건 아니다. 시민들은 지금처럼 종이팩(멸균팩, 일반팩)만 따로 모아 종이팩 전용수거함에 배출하거나 한살림 등 생협매장 방문 또는 일부 제로웨이스트샵에 택배로 발송하면 된다. 종이팩은 일반 종이와 달리 코팅돼 있어 따로 분리해 배출해야 한다.

 

포장재 바꾸거나 재활용 체계 마련하라는 환경부,
아직 더 나은 포장재는 없다?

재활용 용이성 등급은 4단계로 나뉘는데 등급평가 결과에 따라 최우수, 우수, 보통, 어려움으로 표시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헷갈릴 법한 이 표시는 소비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 친환경 제품을 고를 수 있도록, 기업들이 더 친환경적인 포장재를 적용하도록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환경부 관계자는 "재활용이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재활용에 많은 시간과 비용, 즉 체계가 필요하다는 의미"라며 "소비자에게 객관적인 정보를 알리고 기업들이 더 노력해서 등급을 올리라는 취지"라고 <뉴스펭귄>에 말했다.

그러나 현재로서 멸균팩 역할을 하면서 더 친환경적인 포장재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환경부 관계자는 "재활용 용이성 등급을 올리는 방법으로는 꼭 포장재 교체만 있지 않고 업계가 재활용 체계를 적극 구축하는 것도 해당"이라며 "현재 멸균팩 재활용률이 낮다"고 설명했다.

2020년 기준 종이팩 재활용률은 15.8%에 불과하다. 한국멸균팩재활용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멸균팩 재활용업체는 쌍용C&B, 페이퍼코리아, 한솔제지 등 3곳이다. 멸균팩을 재활용한 종이는 재생휴지, 종이타월로 새롭게 태어난다. 이외에 생산한 멸균팩을 직접 회수해 재활용하는 업체도 있다. 아이쿱자연드림은 매장에서 회수한 멸균팩으로 종이타월과 화분을 만든다.

 

소비자단체 "시민, 기업 자원순환 의지 꺾는 셈"
종이팩
수거함부터 늘려야...

그러나 현재 종이팩 분리배출 체계가 미흡한 상황에서 멸균팩에 '재활용 어려움'을 표시하면 종이팩을 따로 분리배출하는 수고를 감당하던 소비자들의 자원순환 의지를 꺾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차경 소비자기후행동 사무총장은 "주택 인근에 종이팩 전용수거함이 설치된 곳이 많지 않다. 소비자들은 매장에 직접 찾아가거나 택배로 발송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멸균팩을 분리배출하고 있다. 그런데 멸균팩에 '재활용 어려움'을 표시하면 소비자들이 번거로움을 감수하면서까지 분리배출에 의지를 낼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업계가 멸균팩 재활용 체계를 마련하려면 일단 잘 회수하는 구조가 필요하다. 종이팩 전용수거함이 더 늘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아무리 기업이 재활용하고 싶어도 다 쓴 멸균팩이 모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기후위기 시대에 덜 쓰는 것만큼 다시 쓰는 것도 중요한데, 환경부와 지자체가 멸균팩 수거 시스템부터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이팩 전용수거함 확대 및 멸균팩 '재활용 어려움' 표시 철회를 요구하는 자연드림과 소비자기후행동은 지난 8월부터 오는 10월까지 멸균팩 재활용 지지 100만 서명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자연드림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재까지 서명에 약 11만 7000명이 참여했다.

멸균팩 재활용 지지 100만 서명 진행 중인 아이쿱자연드림과 소비자기후행동. (사진 아이쿱자연드림 홈페이지)/뉴스펭귄
멸균팩 재활용 지지 100만 서명 진행 중인 아이쿱자연드림과 소비자기후행동. (사진 아이쿱자연드림 홈페이지)/뉴스펭귄

 

일반팩과 멸균팩 섞여서 재활용 어렵다?
멸균팩협회 "잘 선별해 각각 재활용하면 문제없다"

한편 멸균팩 재활용이 어렵다고 보는 또 다른 이유는 일반팩 재활용 시 내부가 알루미늄으로 된 멸균팩이 섞여 있으면 재활용 과정이 달라서 주로 소각·폐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이팩 전용수거함에 모인 종이팩들을 잘 선별해 일반팩과 멸균팩으로 나눠 각각 재활용업체로 보내면 문제가 없다.

한국멸균팩재활용협회 관계자는 "선별만 되면 멸균팩도 얼마든지 재활용할 수 있다. 선별업체가 일반팩과 멸균팩을 구분하는 과정도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뉴스펭귄>에 말했다.

일반팩과 멸균팩 수거 및 재활용 과정. (사진 한국멸균팩재활용협회)/뉴스펭귄
일반팩과 멸균팩 수거 및 재활용 과정. (사진 한국멸균팩재활용협회)/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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