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무장애' 탈쓴 '숲파괴'...은평 봉산숲길에 무슨일이?

  • 남주원 기자
  • 2024.03.08 14:44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데크 조각과 실리콘 등 쓰레기가 봉산 숲길 골짜기에 버려져 있다. (사진 은평민들레당 제공)/뉴스펭귄
공사 과정에서 발생한 데크 조각과 실리콘 등 쓰레기가 봉산 숲길 골짜기에 버려져 있다. (사진 은평민들레당 제공)/뉴스펭귄

[뉴스펭귄 남주원 기자] 은평구에 새롭게 생기는 '봉산 무장애숲길'이 생태계 파괴의 산물이라는 우려가 나왔다.

은평민들레당 나영(본명 장나영) 대표는 "은평구 숲을 훼손하는 대규모 '봉산 무장애숲길' 조성 공사에 대해 제보한다. 기후위기 시대에 숲 생명들의 생존권을 박탈하고, 이동약자의 권리를 보장하지 못하는 문제적 사업"이라며 7일 <뉴스펭귄>에 연락을 해왔다.

은평민들레당은 풀뿌리 지역정당을 표방하며 서울시 은평구에서 활동한다. 나영 대표는 그가 몸담은 은평민들레당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2월까지 총 5차례에 걸쳐 진행한 봉산 무장애숲길 공사현장 모니터링 자료를 뉴스펭귄에 제공했다. 은평구가 지난해 8월 중순부터 시작한 '봉산 무장애숲길 4단계 조성 공사'가 막바지에 이른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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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장애숲길은 계단과 같은 장애물 없이 완만하게 만든 데크형 숲길로 노약자, 장애인, 임산부, 휠체어나 유모차 사용자 등 보행약자가 쉽게 다닐 수 있도록 조성한 길이다. 봉산에는 이미 평평한 목재데크를 설치한 편백나무 무장애숲길이 있어 보행약자가 부담없이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은평구가 현재 추진 중인 봉산 무장애숲길은 이름만 '무장애'를 갖다쓴 산림개발 사업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한 것.

뿌리가 드러나고 파헤쳐진 잣나무 숲. 포크레인 뒤로는 공사 자재가 마구 쌓여있다. (사진 은평민들레당 제공)/뉴스펭귄
뿌리가 드러나고 파헤쳐진 잣나무 숲. 포크레인 뒤로는 공사 자재가 마구 쌓여있다. (사진 은평민들레당 제공)/뉴스펭귄

나영 대표는 "4단계 공사는 올해 2월로 마무리됐지만, 올해 봉산에는 4단계 구간인 0.9km보다 두 배 넘는 2.5km짜리 5단계 공사가 예정돼 있다. 2026년에는 6단계 조성 공사도 예정돼 있는데, 이는 급경사지에 지그재그로 노선이 계획돼 있는 데다가 서울시에서 지정한 생태경관보전지역을 관통하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이어 "봉산은 멸종위기야생생물 2급인 새매와 새호리기, 천연기념물인 소쩍새와 솔부엉이를 비롯해 서울시 보호종인 큰오색딱따구리, 오색딱따구리, 청딱따구리, 쇠딱다구리, 박새, 꾀꼬리 등이 산다. 그 외에도 말똥가리와 파랑새, 뻐꾸기, 아물쇠딱따구리, 멋쟁이새, 양진이 등 많은 새들이 살고 있는 소중한 자연"이라고 강조했다.

공사가 시작될 무렵 은평민들레당은 지역 환경단체인 기후행동은평전환연대, 은평구청 공원녹지과와의 간담회에서 "나무 등을 훼손하지 않도록 노력하며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모니터링 결과 실제로는 무수한 나무가 베이고 땅이 파헤쳐지는 등 숲 생태계가 파괴된 것을 목격했다.

평탄한 기존 등산로 옆으로 나란히 무장애데크가 깔려있다. (사진 은평민들레당 제공)/뉴스펭귄
평탄한 기존 등산로 옆으로 나란히 무장애데크가 깔려있다. (사진 은평민들레당 제공)/뉴스펭귄

은평민들레당 나영 대표가 제기한 봉산 무장애숲길 공사의 6가지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기존 능선 등산로를 그대로 유지한 채 무장애 데크길을 추가적으로 조성했기 때문에 그 면적만큼 숲이 파괴된다. 모니터링 자료에 의하면 4단계 공사 구간에서만 쉼터와 전망대 등을 제외하고도 최소 1.8㎢ 이상 숲이 훼손됐다.

나영 대표는 "조성된 무장애숲길로 걷다 보면 기존 등산로로 다니는 등산객을 바로 옆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정자가 있는 큰 쉼터 구간은 등산로와 데크가 나란하게 수평을 이룬다. 기존 등산로를 활용해 무장애숲길을 조성했다면 굳이 숲을 파괴하지 않아도 됐다"고 지적했다. 

기존 봉산전망대에서 이어지는 구간이 미로처럼 복잡하게 조성돼 있다. (사진 은평민들레당 제공)/뉴스펭귄
기존 봉산전망대에서 이어지는 구간이 미로처럼 복잡하게 조성돼 있다. (사진 은평민들레당 제공)/뉴스펭귄

둘째, 미로처럼 한곳을 맴돌게 구간을 설계했다. 무장애숲길 4단계 구간 중 봉산전망대에서 봉산터널 방향으로 이어지는 곳은 약 7차례 이상 방향을 틀며 이동해야 하게끔 복잡하게 조성돼 있다. 완만한 기존 등산로를 활용해 노선을 설계했다면 이동약자도 편히 즐길 수 있지만 이번 공사는 그렇지 못하다는 주장이다. 

전망데크 전방 3m까지 숲이 전부 훼손됐다. (사진 은평민들레당 제공)/뉴스펭귄
전망데크 전방 3m까지 숲이 전부 훼손됐다. (사진 은평민들레당 제공)/뉴스펭귄

셋째, 편백숲 봉산전망대 인근에 추가로 전망대를 조성해 불필요한 벌목을 일삼았다. 은평구는 이전에도 ‘봉산포토아일랜드'라는 대규모 봉산전망대를 편백정 근처에 조성했는데, 이곳과 가까이에 대형 전망대를 또 설치했다. 전망데크 전방 3m 자연림까지 훼손되며 34그루 이상 나무가 벌목됐다.

무장애숲길을 조성하며 벌목한 나무들이 쌓여있다.
무장애숲길을 조성하며 벌목한 나무들이 쌓여있다. (사진 은평민들레당 제공)/뉴스펭귄

넷째, 생태적 고려 없는 노선 설계로 아까시나무, 팥배나무, 참나무, 귀룽나무 등 다양한 나무가 베어졌다. 이로 인해 새들의 터전도 함께 사라졌다. 나영 대표는 "건강한 아까시나무가 고사목 또는 위험수목 취급을 받으며 쉽게 베어졌다"며 "높게 자란 아까시나무는 말똥가리와 파랑새, 뻐꾸기, 까치, 동고비, 딱따구리 등 여러 새들이 앉아 영역을 살피고 먹이활동을 하는 곳"이라고 말했다.

나영 대표에 따르면 곳곳에 나무토막 더미를 쌓아두고 비오톱(다양한 생물종이 서식하는 생태공간)을 조성했다는 홍보 팻말도 만들어져 있다. 그는 "이 나무토막 더미는 비오톱으로 활용될 것으로 예상된다. 편백숲을 조성하면서 벌목한 나무를 쌓아두고 새와 곤충들을 위해 비오톱을 조성했다고 홍보하는 기만적인 팻말"이라고 지적했다.

임도를 오르내리는 중장비로 인해 훼손된 나무뿌리.
임도를 오르내리는 중장비로 인해 훼손된 나무뿌리. (사진 은평민들레당 제공)/뉴스펭귄

다섯째, 공사에 동원된 포크레인 등 중장비를 비롯해 기계톱과 망치 소음은 야생생물에게 큰 스트레스와 위협을 가한다. 산 정상부까지 임도(임산물을 나르기 위해 설치한 도로)를 오르내리는 중장비로 인해 주변 식물의 뿌리가 훼손됐다. 또 유성 페인트칠해 방부처리한 데크 목재에서 발생하는 독성 물질은 생태계를 파괴한다.

나무 높은 곳에 페인트 묻은 대걸레가 걸려있다.
나무 높은 곳에 페인트 묻은 대걸레가 걸려있다. (사진 은평민들레당 제공)/뉴스펭귄

여섯째, 시공사의 폐기물 투기 등 법규 위반에 대한 은평구 관리·감독이 부실하다. 모니터링 결과 실리콘과 방부 데크목 조각, 철골, 페인트 롤러, 노끈과 청테이프 등 공사 중 발생한 쓰레기가 골짜기에 다량 버려져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나영 대표는 "일부러 던져놓은 듯 보이는 대걸레가 사람 손이 닿지 않는 높이의 나무에 걸려있기도 했다"며 "아직 공사 현장이 완전히 정리된 것은 아니니 두고봐야겠지만, 꼼꼼한 관리·감독으로 쓰레기를 남김없이 수거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은평민들레당은 숲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싶은 보행약자의 이동권은 보장받아야 한다는 점은 적극 동의하지만, 이번 4단계 조성사업은 정작 그 취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는 의견이다. 봉산의 숲 생태계 보전을 섬세하게 고려하지 않은 사업인 데다가 봉산 무장애숲길 진입로까지 가는 길 자체가 급경사라 애초에 이동약자가 진입로에 접근하기조차 어렵다는 설명이다.

나영 대표는 "숲 훼손에 막대한 예산을 사용하며 기후위기를 가속하는 대규모 무장애숲길 사업을 이대로 지속하면 안 된다"며 "이미 만들어 놓은 무장애숲길을 이동약자도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꼼꼼히 보완하고, 아직 시작하지 않은 공사를 철회해 더 이상의 생태계 파괴를 막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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