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다 다 죽어" 울타리 지옥에 갇힌 산양들

  • 남주원 기자
  • 2024.02.08 10:43
생명다양성재단은 울타리를 철거하고 잠긴 생태통로를 열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생명다양성재단)/뉴스펭귄
생명다양성재단은 울타리를 철거하고 잠긴 생태통로를 열 것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 생명다양성재단)/뉴스펭귄

[뉴스펭귄 남주원 기자]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산양이 정작 우리 터전에서 속수무책으로 죽어나가고 있다.

생명다양성재단은 "이번 겨울에만 100마리. 충격적인 산양의 죽음"이라며 최근 국내 멸종위기 산양이 처한 실태를 고발했다.

생명다양성재단에 따르면 강원도 화천과 양구에서만 지난해 말 30마리, 올해 초 70마리 이상으로 총 100마리가 넘는 산양이 목숨을 잃었다. 폐사 원인으로는 '울타리'와 '폭설'이 제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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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군은 지난해 10월 관광사업을 위해 한묵령 일대 민간인 통제선을 북상했다. 이와 함께 민간인 통행이 자유로워지면서, 지자체에서는 사람들이 산속 미확인 지뢰지대로 들어가지 않도록 울타리를 설치했다.

문제는 이곳에 서식해온 산양들이 2중, 3중으로 설치된 울타리들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고립됐다는 점이다. 민간인 통행을 제한하던 시절 생태통로를 따라 산과 하천을 자유롭게 오가던 존재들이다.

화천과 양구 일대는 산양뿐만 아니라 사향노루, 수달, 삵, 담비, 하늘다람쥐 등 다양한 멸종위기종이 살아가는 터전이다. 

하지만 동시에 민간인 통제 울타리와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을 막을 목적으로 환경부가 설치한 울타리, 기타 출입방지 울타리 등 각종 울타리가 난립한 땅이기도 하다. 

화천군이 야생동물 이동을 위해 개설한 생태통로 13개소는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는 상황이다. 울타리로 막힌 생태통로 주변에는 산양 배설물이 수북이 쌓여있다.

생명다양성재단 측은 "추정되는 원인은 당연하게도 폭설이 내린 환경에서 산양의 이동과 먹이활동을 방해하는 울타리들"이라며 "결국 잠긴 통로는 열리지 않았다. 산양들은 겨울철 추위와 배고픔에 이동 제약까지 가해져 죽어가고 있다"고 호소했다.

울타리로 인해 막힌 생태통로 인근에 가득한 산양 똥. (사진 생명다양성재단)/뉴스펭귄
울타리로 인해 막힌 생태통로 인근에 가득한 산양 똥. (사진 생명다양성재단)/뉴스펭귄

재단에 따르면 화천군은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생명다양성재단은 지자체인 화천군청에 멸종위기 야생동물의 보호 책임을 묻고 문제해결을 강구했으나 묵묵부답이라고 밝혔다. 수차례 공문을 보내고 답장을 독촉했지만 군부대와 상의해 의견을 주겠다는 답변 이후 연락이 끊겼다는 것. 

당시 화천군 기획감사실 측은 "울타리 개방을 요청하는 구간은 민간인 통제선 이북 지역"이라며 "특정사유 없이는 민간인 통행이 제한되는 구역으로 관할사단인 7사단, 21사단이 관리하는 구역"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따라서 해당 사단의 의견 없이 화천군의 의견을 전달하는 것은 요청한 답변에 부족함이 있다고 판단돼 향후 해당 사단의 의견을 취합한 후 답변하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지난달 이 같은 연락 이후 현재까지 아무런 소식이 없다.

생명다양성재단은 화천군에 한묵령로 생태통로를 개방하고 야생동물 이동 대책을 세우며, 이미 효용이 다한 ASF울타리와 난립한 울타리들은 철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지자체뿐만 아니라 산양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문화재청과 환경부에도 문제해결을 촉구하겠다는 입장이다. 산양은 천연기념물이자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 I급으로 등재돼 있다.

마치 (산)양떼목장 같은 미시령 국도 풍경. (사진 생명다양성재단, 박그림 녹색연합 대표 제보)/뉴스펭귄
마치 (산)양떼목장 같은 미시령 국도 풍경. (사진 생명다양성재단, 박그림 녹색연합 대표 제보)/뉴스펭귄

재단에 따르면 강원도 인제에서 속초로 넘어가는 미시령 국도에서도 울타리가 만든 기이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인간이 쳐놓은 ASF울타리로 인해 고립된 산양 20여마리가 국도변 절개면에 모여 있다는 것. 국도변 절개면은 인간이 도로를 위해 산을 가파르게 깎아낸 부분이다. 재단 측은 이 광경에 대해 "마치 '양떼목장'을 방불케 한다"고 묘사했다.

생명다양성재단 측은 지난 5일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시급한 문제"라며 "현재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연대 단체를 물색하고, 환경부와 문화재청 등 보호 책임이 있는 부서에 공문을 통해 문제제기 과정에 있다"고 전했다.

이어 "서명운동의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적절한 개시 시점을 논의 중이며, 곧 서명청원을 진행하려고 한다"면서 사태 해결을 위한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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