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게 죄야?" 인간을 사랑한 재두루미 (영상)

  • 남예진 기자
  • 2024.02.06 15:31
왼쪽은 인간을 사랑한 재두루미 월넛. 오른쪽은 월넛이 사랑한 사육사 크리스 크로우. (사진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 동물원 및 보존생물학 연구소, 로샨 파텔)/뉴스펭귄
왼쪽은 인간을 사랑한 재두루미 월넛. 오른쪽은 월넛이 사랑한 사육사 크리스 크로우. (사진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 동물원 및 보존생물학 연구소, 로샨 파텔)/뉴스펭귄

[뉴스펭귄 남예진 기자] 동족 대신 인간과 사랑에 빠져 유명세를 치른 재두루미 '월넛(Walnut)'이 42세로 눈을 감으며 그의 삶이 주목받고 있다.

몽골, 시베리아, 한국, 일본, 중국 등에 서식하는 재두루미는 서식지 파괴, 환경오염, 밀렵 등으로 개체수가 감소하고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는 '취약(VU, Vulnerable)'으로 등재됐다.

재두루미 멸종위기 등급. (사진 IUCN)/뉴스펭귄
재두루미 멸종위기 등급. (사진 IUCN)/뉴스펭귄

월넛의 부모 역시 1980년 자생지에서 남획돼 미국으로 끌려왔지만, 비영리 단체 국제두루미재단(ICF)에 의해 구조됐다. 둘은 1981년에 알을 산란했고, 알 속에서 태어난 것이 바로 월넛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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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포획 개체 사이에서 태어난 월넛은 미국에서 보호 중인 동족들과는 혈연관계가 아니었다. 따라서 미국 내 재두루미들의 유전적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월넛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었다.

이에 전문가들은 미국에서 보호 중인 재두루미의 유전적 다양성을 높이고자 월넛을 보존 프로그램에 투여했다.

다만 월넛은 태어난 순간부터 사람과 사회적 유대감이 깊은 나머지 수컷 재두루미를 공격하는 등 동족에 대한 반감을 내비쳤고, 번식은 번번이 무산됐다.

결국 보호단체는 월넛을 스미스소니언국립동물원으로 이주시켰다. 이곳은 멸종위기종 보존 및 훈련을 겸하는 동시에 신체적 혹은 행동학적 문제를 가진 두루미를 번식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시설로 잘 알려져 있다.

사육사는 마치 수컷 두루미처럼 춤을 추거나, 월넛에게 둥지 재료와 먹이를 선물했다. 이에 감명 받은 월넛은 사육사를 반려로 택했다. (영상 스미스소니언 국립 동물원)

스미스소니언국립동물원 사육사 크리스 크로우는 월넛의 신뢰를 사고자 둥지 재료를 날라주거나, 먹이를 선물하는 등 번식기의 수컷 두루미 행동을 관찰하고 모방했다.

사육사의 끈질긴 노력 끝에 월넛과 사육사는 끈끈한 유대를 얻었고, 월넛은 사육사에게 구애의 춤을 선보였다. 그 덕분에 월넛은 자연스럽게 인공수정에 성공했고, 2005~2020년까지 총 8마리의 자손을 낳아 재두루미 보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2021년에 촬영된 월넛의 생전 모습. (사진 
2021년에 촬영된 월넛의 생전 모습. (사진  미국 스미스소니언 국립 동물원 및 보존생물학 연구소, 크리스 크로우)/뉴스펭귄

이처럼 독특한 삶을 살아온 월넛은 지난달 초에 눈을 감았으며, 사육 두루미의 평균 수명보다 약 3배 더 오래 살아남았다.

크로우 사육사는 "월넛은 뛰어난 춤꾼이자, 활발하고 독특한 두루미였다"며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고 묘사했다.

이어 "월넛과의 유대감에 감사를 표하며, 월넛의 이야기는 재두루미가 처한 곤경을 알리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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