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수첩] 일년만에 보낸 답장

  • 남주원 기자
  • 2024.02.02 11:39
뉴스펭귄 명함. (사진 남주원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 명함. (사진 남주원 기자)/뉴스펭귄

"안녕하세요, S사 영업기획팀 H주임님. 뉴스펭귄 멀티채널팀장 남주원 기자입니다."

[뉴스펭귄 남주원 기자] 지난해 여름 받은 이메일에 한해가 지나서야 답장을 보냈다. 당시 H주임은 내가 전담하는 코너인 '뉴펭의 지구인터뷰'에 S사가 인터뷰이로 참여 가능한지 문의해왔다. 

H씨는 스스로를 "환경 관련 자료를 찾을 때마다 항상 뉴스펭귄 기사를 보는 구독자"라고 소개하며, 그가 몸담은 제조업체 S사가 그간 실천해온 여러 환경친화적 노력을 설명했다.

뉴스펭귄 기자들은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멸종위기를 막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정기후원으로 뉴스펭귄 기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세요. 이 기사 후원하기

메일을 읽고 S사 홈페이지를 들어가 찬찬히 살펴봤다. 하지만 그 시기에 건강악화와 몰아치는 회사 일로 정신이 없었다. 게다가 기업기사는 그린워싱 문제가 민감해 좀 더 고민해본다는 것이 결국 답장을 못했더란다. 

그렇게 잊고 살던 중 최근 <마포구 1등, 용산구 꼴등인 '이것'>, <재활용하라고 종이팩 보냈더니...새 휴지요?> 등 종이팩 관련 기사를 연달아 작성하면서 S사의 노력이 불현듯 떠올랐다. 

당시 메일에 따르면 지난해 50주년을 맞이한 S사는 창립 이후 볏짚으로 시작해 재활용 휴지를 지속적으로 제조해왔다. 우유팩을 비롯해 종이컵, 사무용지 등 종이류를 재활용한 휴지를 꾸준히 생산하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지난달 서울환경연합 자원순환팀이 직접 방문한 S사 공장 현장탐방기 등 자료를 찾아보며 종이류 재활용을 향한 그들의 진심을 더욱 알게 됐다. 너무 늦어서 죄송하다는 양해의 인사와 함께 이제서야 지구인터뷰 요청에 응하는 답장을 보냈다. 

"S사 영업기획팀 H대리입니다. 메일 회신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가 바뀔 만큼 한참이나 늦은 나의 답장에 한 시간 만에 메일이 왔다. 주임이었던 H씨가 대리로 승진했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H대리는 새해 인사와 함께 인터뷰 예상일정과 소요시간, 평택 공장에서 인터뷰 가능여부 등을 물었다. 

그는 서울에 있는 영업·사무직보다 평택공장에 있는 직원이 스토리텔러로서 더 적합하다고 생각한다며 그곳 공장장을 인터뷰이로 추천했다.

'공장'이라는 단어에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공장을 방문해 종이류 재활용 과정을 직접 취재하고 싶은 마음이 솟구쳤다. 많은 사람들이 살면서 결코 가볼 일 없는, 더군다나 이 직업이 아니라면 어려운 곳. 

지구인터뷰는 지금까지 늘 카페나 사무실처럼 멀끔한 공간에서 진행됐지만 이번만큼은 공장에서 진행하기로 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 거친 현장과 땀방울, 리얼리티에 목말라 있었나보다.

'기자면 당연히 직접 가서 취재하는 거 아냐?'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기자는 모든 곳을 갈 수 있고 모든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어쩌면 그것이 'can'이 아니라 'must'여야만 하는 직업일 터다. 전국 방방곡곡 발로 뛰고 취재원들과 몸과 마음을 부딪히며 얻어낸 정보로 기사를 써내는 터프한 직군 아닌가. 

하지만 뉴스펭귄은 정통 언론사 기자들과는 많이 다르다. 매일 기사 작성뿐만 아니라 SNS채널 운영을 비롯한 그외 여러 업무를 동시다발적으로 해야 한다. 뉴스펭귄 명함에 새겨진 직업이 '기자'인 동시에 '콘텐츠크리에이터'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주어진 멀티채널팀장이라는 역할도 한몫한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 사무실 자리를 오래 비우는 것이 어려워, 서울이 아닌 지역은 웬만하면 통화나 서면 취재를 해왔다. 다이내믹한 현장 대신 의자에 엉덩이를 진득이 붙이고 앉아 기사와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일이 성향에 맞은 탓도 있다. 

사족이 길어졌다. 메일 한 통에 너무 의미부여를 한 것 같아 부끄럽지만 깨달은 게 하나 있다. 자신이 추구하는 어떤 일에 진심이고 꾸준하면, 당장은 아닐지라도 누군가 언젠가는 알아볼 거라고. 내가 일 년 만에 S사의 이메일에 답장을 보냈듯 말이다. 시간이 흐르면 한결같이 하는 것만으로도 살아남는 사람, 기업이 되리라 믿는다.  

그리고 아무도 몰라주면 어떠랴. 누구보다 나 자신이 알고 스스로를 인정해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지금까지 잘했고, 잘하고 있고, 앞으로도 잘해나갈 것이다.

뉴스펭귄은 기후위험에 맞서 정의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초점을 맞춘 국내 유일의 기후뉴스입니다. 젊고 패기 넘치는 기후저널리스트들이 기후위기, 지구가열화, 멸종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으며, 그 공로로 다수의 언론상을 수상했습니다.

뉴스펭귄은 억만장자 소유주가 없습니다. 상업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일체의 간섭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금전적 이익이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리의 뉴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뉴스펭귄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후원을 밑거름으로, 게으르고 미적대는 정치권에 압력을 가하고 기업체들이 기후노력에 투자를 확대하도록 자극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기후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데 크게 쓰입니다.

뉴스펭귄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신청에는 1분도 걸리지 않으며 기후솔루션 독립언론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만듭니다.

감사합니다.

후원하러 가기
저작권자 © 뉴스펭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