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수첩] 다회용 도시락을 나눠준 '힙한' 축제

  • 이수연 기자
  • 2023.10.12 13:36
다회용 도시락을 도입한 한 지역축제.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다회용 도시락을 도입한 한 지역축제.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뉴스펭귄 이수연 기자] 돌림병이 끝나고 맞는 첫 가을이다. 기다렸다는 듯 곳곳에선 축제 분위기로 들썩들썩하다. 지난 주말에는 미술 공방을 운영하는 지인을 도우러 한 지역축제에 참여했다. 

부스 앞에서 열심히 모객 행위를 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됐다. 축제 운영진은 앞쪽에서 도시락을 챙겨가라고 공지했다.

당연히 일회용 도시락이라 짐작하고 받으러 갔더니 카레가 담긴 초록색 다회용기 도시락과 국을 담은 보온병, 나무 수저를 나눠줬다. 식사하는 내내 호기심이 들끓었다. 도시락 반납을 마치고 주변을 서성이다가 한 운영진에게 다가갔다. 대뜸 다회용기를 어떻게 준비했는지 묻자 운영진은 무심하게 답했다. "힙하잖아요."

뉴스펭귄 기자들은 기후위기와 그로 인한 멸종위기를 막기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정기후원으로 뉴스펭귄 기자들에게 힘을 실어 주세요. 이 기사 후원하기

그는 "이런 게 힙하기도 하고 준비할 때부터 일회용품 좀 줄여보자는 이야기가 나와서 시도해봤다"고 말했다. 예상하지 못한 답이었다.

초록색 반투명 용기, 보온병, 나무 수저로 구성된 다회용 도시락.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초록색 반투명 용기, 보온병, 나무 수저로 구성된 다회용 도시락.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젊은 세대가 친환경을 선택하는 이유는 힙하기 때문이라는 지인의 말이 새삼 떠올랐다. 새롭고 독특한 것, 남달라 보이는 것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방법인 셈이다.

이날 힙한 어린이들도 만났다. 머리에 돌고래가 그려진 종이 머리띠를 두르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들은 먹거리나 상품을 판매하는 부스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캠페인 부스를 운영하는 초등학생들이었다. 그야말로 남달랐다.

돌고래 방류 캠페인 부스를 운영한 초등학생들.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돌고래 방류 캠페인 부스를 운영한 초등학생들.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돌고래 방류 캠페인 부스를 운영한 초등학생들.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돌고래 방류 캠페인 부스를 운영한 초등학생들.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이들은 울산 장생포 고래생태체험관의 돌고래 4마리를 방류하자는 내용의 전시를 열고, 직접 모금에도 나섰다. 2학기 여행지를 울산으로 정하고 함께 준비하던 중 수족관에 갇힌 돌고래 이야기를 알게 됐다고 캠페인 취지를 소개했다. 모금한 돈은 돌고래 방류 활동을 하는 환경단체에 전해줄 거라고 설명했다.

어떤 먹거리 부스는 다회용컵에 음료를 담아줬고, 축제장 한편에는 텀블러를 씻을 수 있는 간이 개수대도 보였다. 사실 축제 자체가 힙했다. 힙에 대해 제대로 알고 하는 소리는 아니지만, 남다른 사람들로 가득한 남다른 축제였다.

다회용컵에 음료를 담아준 부스. 반납하면 500원을 돌려준다.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다회용컵에 음료를 담아준 부스. 반납하면 500원을 돌려준다. (사진 이수연 기자)/뉴스펭귄

그동안은 축제를 떠올리면 모두가 떠난 뒤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가 먼저 생각나곤 했다. 앞으로는 이날 체감한 작은 변화들이 기억나지 않을까 싶다.

생태계 파괴와 탄소배출 논란을 빚은 제주들불축제가 올해는 불을 사용한 행사를 전부 취소한다고 밝혔다. 제주도민들이 원탁에 모여 결정한 결과다. 축제를 주최하는 제주시는 내년부터 축제를 중단하고 지속가능한 축제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힙한 사람들이 함께 애써서 만든 힙한 축제가 조금씩 늘어나니 반갑고 다행이다.

뉴스펭귄은 기후위험에 맞서 정의로운 해결책을 모색하는데 초점을 맞춘 국내 유일의 기후뉴스입니다. 젊고 패기 넘치는 기후저널리스트들이 기후위기, 지구가열화, 멸종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분투하고 있으며, 그 공로로 다수의 언론상을 수상했습니다.

뉴스펭귄은 억만장자 소유주가 없습니다. 상업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일체의 간섭이 없기 때문에 어떠한 금전적 이익이나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리의 뉴스에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뉴스펭귄이 지속가능하기 위해서는 여러분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여러분의 후원을 밑거름으로, 게으르고 미적대는 정치권에 압력을 가하고 기업체들이 기후노력에 투자를 확대하도록 자극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적은 금액이라도 여러분의 소중한 후원은 기후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데 크게 쓰입니다.

뉴스펭귄을 후원해 주세요. 후원신청에는 1분도 걸리지 않으며 기후솔루션 독립언론이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도록 만듭니다.

감사합니다.

후원하러 가기
저작권자 © 뉴스펭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