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 이름 딴 학명, '변경해야 vs 혼란가중' 찬반 논쟁

  • 남예진 기자
  • 2023.10.02 00:15
독일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 (사진 위키피디아)/뉴스펭귄
독일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 (사진 위키피디아)/뉴스펭귄

[뉴스펭귄 남예진 기자] 새로운 생물이 발견되면 발견 장소, 생물학적 특성, 서식지 특징 등을 고려해 이름을 명명하지만, 존경하는 인물이나 외견상 닮은 유명 인사의 이름을 붙여 명칭을 짓기도 한다.

문제는 독일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부터 세계 최초로 파시즘 국가를 탄생시킨 베니토 무솔리니까지 논란의 여지가 많은 인물이나 인종차별주의적인 단어들이 생물의 이름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는 인종차별적이거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학명을 변경하는 사안과 관련 전문가 사이에서도 찬반이 나뉘고 있다고 5일(현지시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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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종을 발견한 학자는 아돌프 히틀러의 이름을 차용해 '아놉탈무스 히틀러리(Anophthalmus hitleri)'라는 학명을 붙였다. (사진 위키피디아)/뉴스펭귄
해당 종을 발견한 학자는 아돌프 히틀러의 이름을 차용해 '아놉탈무스 히틀러리(Anophthalmus hitleri)'라는 학명을 붙였다. (사진 위키피디아)/뉴스펭귄

대표적으로 1937년 슬로베니아 동굴에 서식하는 딱정벌레를 발견한 아마추어 곤충학자는 아돌프 히틀러를 기리고자 딱정벌레에게 '아놉탈무스 히틀러리(Anophthalmus hitleri)'라는 학명을 붙였다.

당시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아놉탈무스 히틀러리의 표본을 구입하려는 나치 추종자가 늘면서 밀렵 횟수가 늘었고 해당 종은 결국 멸종위기에 처한 상태다.

이에 많은 학자들은 과거의 실수를 인정하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학명을 새로 명명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동물의 학명을 승인하고 기록하는 '국제동물명명법위원회(ICZN)'는 별도의 예외 없이 기존 학명을 계속 사용할 예정이라고 지난 1월 발표했다.

ICZN측은 "종 하나를 표기하는데 여러 표현이 동반되므로 학명을 변경할 경우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며 "이는 ICZN 주요 원칙인 '안정성'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150만 종 이상의 동물 중 인물 이름을 차용한 학명이 20%, 지명에서 따온 학명이 10%에 달하는 만큼 윤리를 따져 정정하려면 많은 종의 이름을 재명명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ICNZ의 입장에 수십 명의 학자들은 "사회적 정의를 연구 안정성보다 우선시할 수 없다"면서 지난 8월 '린네학회동물학저널'에 성명을 발표했다.

영국 런던자연사박물관의 고생물학자이자 린네학회동물학저널 회장인 안잘리 고스와미 교수는 "ICZN이 종 개명을 원치 않더라도, 언어도단적인 학명은 변경해야 한다"며 "인종차별적인 학명을 유지하는 것은 지역사회의 존엄성을 짓밟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과정을 뛰어넘어야 더 나은 관습을 만들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카피르라임이라고 불리는 시트러스 히스트릭스(Citrus hystrix). 카피르라는 단어가 인종차별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는 탓에 막루트라임 혹은 태국라임이라고 불린다. (사진 위키피디아)/뉴스펭귄
카피르라임이라고 불리는 시트러스 히스트릭스(Citrus hystrix). 카피르라는 단어가 인종차별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는 탓에 막루트라임 혹은 태국라임이라고 불린다. (사진 위키피디아)/뉴스펭귄

유사한 논의는 식물학계에서도 이뤄지고 있다. 식물 학명에는 유명인의 이름을 붙이거나, 흑인 비하 단어인 '카피르(Kaffir)'처럼 인종차별적인 단어에서 유래한 이름이 많기 때문이다.

식물학계 측은 이듬해 7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개최될 예정인 국제식물학회의 명명법 회의에서 회원들의 표결을 통해 이를 개선할 계획이다. 회의 결과는 ICZN에도 파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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