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해진 COP28 전선, 화석연료 퇴출 vs 화석연료 배출 퇴출

  • 김지현 기자
  • 2023.06.16 15:39
본 기후회의 현장. (사진 UN Climate Change)/뉴스펭귄
본 기후회의 현장. (사진 UN Climate Change)/뉴스펭귄

[뉴스펭귄 김지현 기자]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이하 COP28)의 정치적 전선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지난 7일(이하 현지시간)부터 2주간 독일 본에서 COP28을 준비하기 위해 열리는 유엔 기후회의(이하 본 기후회의)에서 각국 대표단이 ‘화석연료 단계적 퇴출’이냐 ‘화석연료 배출 단계적 퇴출’이냐를 두고 대립하고 있다.  

두 구호는 비슷한 말처럼 들리지만 정반대 입장을 담고 있다. 화석연료 단계적 퇴출은 화석연료 생산과 사용 자체를 단계적으로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화석연료 배출 단계적 퇴출은 탄소 포집 및 저장(CCS) 기술을 통해 화석연료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면 화석연료 생산을 지속해도 된다는 입장을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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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후회의에서 각국 대표단이 화석연료 단계적 퇴출을 COP28 공식안건으로 채택하는 데 합의하지 못하면, 오는 11월에 열릴 COP28에서 생산적인 논의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배출 감축 강조하며 화석연료 수명 늘리려는 산유국

유럽연합과 태평양 도서국 등이 화석연료 단계적 퇴출을 이번 COP28 공식안건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일부 산유국은 화석연료 자체를 퇴출하는 것보다 화석연료에서 나오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반박하고 있다.

특히 술탄 알 자베르(Sultan Al-Jaber) COP28 의장은 지난 5월 2일 COP28 안건을 제안하는 자리에서 “화석연료 배출을 단계적으로 퇴출하자”고 주장하며 CCS 기술을 해결책으로 강조했다가 논란이 된 바 있다.

클라이밋액션네트워크(Climate Action Network) 등 환경단체들은 아부다비 국영 석유회사(ADNOC) CEO인 알 자베르 의장이 화석연료 퇴출 구호를 교묘하게 바꾸는 방식으로 화석연료 산업의 수명을 늘리려 한다고 비판했다. 

미국과 유럽연합 의원 100여 명은 5월 23일 미국 대통령과 유럽연합 집행위원장에게 공동서한을 보내 알 자베르 의장을 해임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이 같은 논란이 일자 알 자베르 의장은 8일 본 기후회의에서 “화석연료 단계적 감축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영국 언론 가디언은 알 자베르 의장이 이후 발언에서 화석연료 배출 감축에 초점을 맞췄고, 화석연료 단계적 퇴출을 COP28 공식안건으로 만들겠다는 약속도 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본 기후회의에서 발언하는 알 자베르 의장. (사진 UN Climate Change)/뉴스펭귄
본 기후회의에서 발언하는 알 자베르 의장. (사진 UN Climate Change)/뉴스펭귄

 

툰베리, “화석연료 퇴출 반대는 수백만 인구에게 사형선고 내리는 것”

이에 안토니오 구테레스(Antonio Guterres) 유엔 사무총장은 15일 본 기후회의에서 “기후재앙을 막으려면 화석연료 배출이 아니라 화석연료 그 자체를 퇴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CCS 기술을 해결책으로 내세우는 산유국과 화석연료 기업을 겨냥해 “입증되지 않은 기술에 지구의 미래를 거는 것은 눈을 뜬 채로 재앙으로 돌진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본 기후회의에서 발언하는 안토니오 구테레스 유엔 사무총장. (사진 Antonio Guterres 트위터)/뉴스펭귄
본 기후회의에서 발언하는 안토니오 구테레스 유엔 사무총장. (사진 Antonio Guterres 트위터)/뉴스펭귄

이번 회의에 참석한 스웨덴 청소년 기후활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도 13일 “화석연료를 퇴출하지 않는 것은 현재 극단적인 기후에서 살아가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경고했다. 툰베리는 “바로 지금 우리가 내리는 결정이 인류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라며 “신속하고 정의로운 화석연료 퇴출만이 기후재앙을 막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본 기후회의에서 발언하는 그레타 툰베리. (사진 Greenpeace UK 트위터)/뉴스펭귄
본 기후회의에서 발언하는 그레타 툰베리. (사진 Greenpeace UK 트위터)/뉴스펭귄

같은 날인 13일 국제 기후연구기관 클라이밋애널리틱스(Climate Analytics)는 기후재앙을 피하려면 2030년까지 화석연료 생산량을 매년 6%씩 줄이고 재생에너지 발전용량을 5배로 늘려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회의에서 발표했다. 해당 보고서는 화석연료 산업이 옹호하는 CCS 기술은 빠른 시일 안에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2030년 전세계 전기생산량 중 겨우 0.1%에만 이 기술이 적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클라이밋애널리틱스는 13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기후재앙을 피하려면 2030년까지 화석연료 생산을 40%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왼쪽 그래프). 또 탄소 포집 및 저장(CCS) 기술은 전력생산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데 거의 도움이 안 된다며, 2030년 전제 전기생산량 중 0.1%에만 이 기술이 적용될 것이라고예상했다. (그래픽 Climate Analytics 공식홈페이지)/뉴스펭귄
클라이밋애널리틱스는 13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기후재앙을 피하려면 2030년까지 화석연료 생산을 40%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왼쪽 그래프). 또 탄소 포집 및 저장(CCS) 기술은 2030년 전제 전기생산량 중 0.1%에만  적용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래픽 Climate Analytics 공식홈페이지)/뉴스펭귄

 

파키스탄 의장, “제발 깨어나라”

회의가 열린 지 9일이 지났지만 각국 대표단은 화석연료 단계적 퇴출을 COP28 공식안건으로 채택하는 데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2주간의 회의가 이렇다 할 결론을 내지 못한 채 끝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번 회의의 파키스탄 공동의장인 나발 무니르(Nabeel Munir)는 13일 회의 막바지에 격앙된 목소리로 “우리가 지금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마치 초등학교 교실에 있는 듯한 느낌이다. 제발 깨어나라”고 외쳤다. 이어 “파키스탄에서는 작년 3300만 명이 홍수 피해를 입고 국토 3분의 1이 침수됐다”며 “나는 이들에게 2주의 회의 동안 공식안건도 채택하지 못했다고 말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본 기후회의에서 발언하는 나발 무니르 의장. (사진 Loss and Damage Collaboration 트위터)/뉴스펭귄
본 기후회의에서 발언하는 나발 무니르 의장. (사진 Loss and Damage Collaboration 트위터)/뉴스펭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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