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앞으로 다가온 국제 플라스틱 규제

  • 김지현 기자
  • 2023.05.31 17:08
(사진 WWF 트위터)/뉴스펭귄
(사진 WWF 트위터)/뉴스펭귄

[뉴스펭귄 김지현 기자] 국제사회가 플라스틱이 환경과 인체에 미치는 악영향을 인정하고 대응에 나서면서 전세계적으로 플라스틱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전망이다. 29일(이하 현지시간)부터 국제적인 플라스틱 오염 규제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정부간 회의가 열리고 있고, 같은 날 세계보건총회는 플라스틱 오염을 건강위협으로 공식 인정했다. 다만 구체적인 규제 방법에 대해서는 세계 각국이 이견을 보이고 있다.

 

국제플라스틱협약의 전선: 생산 감축이냐 재활용이냐

29일부터 프랑스 파리에서 국제플라스틱협약(Global Plastics Treaty)을 마련하기 위한 제2차 정부간 협상위원회 회의(이하 INC2)가 열리고 있다. 유엔환경계획(이하 UNEP)이 주최하는 이 회의에는 한국을 비롯한 173개국 정부 대표단과 전문가 2000여 명이 참여하고 있다. INC는 지난 2022년 11월 우루과이에서 열린 첫 번째 회의에서 플라스틱 오염의 심각성을 인정하고, 이를 규제하기 위해 2024년까지 법적인 구속력이 있는 국제플라스틱협약을 마련하기로 합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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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하는 INC2 회의 참여자들. (사진 Earth Negotiation Bulletin 트위터)/뉴스펭귄
대화하는 INC2 회의 참여자들. (사진 Earth Negotiation Bulletin 트위터)/뉴스펭귄

로이터통신과 블룸버그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이번 회의의 핵심 쟁점은 국제플라스틱협약을 재활용에 초점을 맞춰 마련해야 하는지, 아니면 생산량 자체를 줄이는 데 초점을 맞춰 마련해야 하는지 여부다.  

르완다와 유럽연합 등 55개국은 플라스틱 생산량을 줄이고 특히 유해한 플라스틱 종류는 생산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 등은 플라스틱 재활용과 폐기물 정화 작업에 집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르완다와 유럽연합 등 55개국 연합인 '플라스틱 오염을 끝내려는 고도의 야심을 가진 연합(High Ambition Coalition to End Plastic Pollution)'은 회의가 열리기 전인 26일에 성명문을 내고 플라스틱 생산부터 폐기까지 전체 생애주기를 포괄하는 규제를 통해 2040년까지 플라스틱 오염을 종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플라스틱 오염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플라스틱 생산량과 원료, 재활용 방식 등 플라스틱 가치사슬 전반을 규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 미국, 중국, 인도 등은 플라스틱 재활용을 대안으로 내세우고 있다. 회의 관계자들은 29일 독일 언론 도이체벨레(DW)와 인터뷰에서 사우디아라비아가 플라스틱 생산량을 줄이는 방안에 가장 강하게 반대하고 있고, 미국과 중국, 인도도 생산량 감축보다는 재활용을 옹호하고 있다고 밝혔다.

로이터통신 등 외신은 이들 국가의 입장에 주요 플라스틱제조사인 석유화학산업의 입김이 반영된 것으로 보고 있다. 석유화학산업은 '플라스틱 순환경제'를 국제사회의 의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는 플라스틱 제품을 소각하거나 매립하지 않고 재활용해서 최대한 오랜 기간동안 순환시키는 것을 말한다. 사전예방을 강조하는 55개국 연합의 입장과 대비된다.

특히 미국 화학협회(ACC)와 유럽 플라스틱제조사 연합 플라스틱스유럽(Plastics Europe)은 이번 회의의 논의 초점을 '순환경제'로 제한하기 위해 로비해 왔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이에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 174곳과 과학자들은 지난 20일 UNEP에 공개서한을 보내 “석유화학산업 로비스트가 국제플라스틱협약에서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 목표를 제외하도록 로비하고 있다”며, “공공의 안전이 걸려있는 협약이 석유산업에 좌우되면 안 된다”고 호소했다.

앞서 환경단체들은 UNEP가 16일 INC2 회의 논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해 발표한 보고서가 플라스틱 생산량 감축이 아닌 재활용을 강조하면서 석유화학산업의 편의를 봐주고 있다며 비판한 바 있다.

UNEP는 이 보고서에서 플라스틱 재사용, 재활용, 원료 전환을 2040년까지 플라스틱 오염을 80% 줄이기 위한 핵심 방안으로 제시했다. 이에 그린피스는 플라스틱 재활용은 플라스틱 오염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며, 플라스틱 생산량을 2017년 대비 75%까지 줄여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INC2 회의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파리에서 강한 플라스틱 규제를  촉구하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사진 Greenpeace international 트위터)/뉴스펭귄
국제 환경단체 그린피스가 INC2 회의가 열리고 있는 프랑스 파리에서 강한 플라스틱 규제를 촉구하는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사진 Greenpeace international 트위터)/뉴스펭귄

 

세계보건총회, "플라스틱 오염은 건강위협"

한편, 29일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총회(WHA)에서도 플라스틱 오염이 건강위협으로 인정받으면서 전세계적으로 플라스틱에 대한 규제가 강화될 전망이다. 세계보건기구(이하 WHO)가 주최한 이번 총회에서 40여개국 대표는 '인체 건강에 대한 화학물질, 폐기물, 오염의 영향' 결의안을 거의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이번 결의안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동안 WHO는 플라스틱 오염을 건강문제가 아닌 환경문제로 규정해 왔고, 세계보건총회는 이런 WHO의 기조에 따라서 플라스틱 문제에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이번 세계보건총회에 참석한 페루 대표단이 이런 분위기를 바꿨다. 페루 대표단은 다국적 기업의 경제활동으로 인한 대기오염과 환경파괴가 건강문제와도 직결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이들의 호소가 여러 국가 대표단의 동의를 이끌어내면서 결의안이 통과됐다.  

결의안은 WHO에서 플라스틱을 비롯한 화학물질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고 해당 보고서를 발간하도록 했다. 또 각국 보건당국에 이번 국제플라스틱협약이 성사되도록 지원할 것을 촉구했다.

페루 대표단의 베르나르도 로카-레이(Bernardo Roca-Rey)는 29일 국제 보건전문매체 헬스폴리시워치(Health Policy Watch)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결의안은 플라스틱을 비롯한 화학물질 오염이 환경문제일 뿐만 아니라 건강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인정한 기념비적 결의안"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앞으로 WHO의 플라스틱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보고서가 국제사회의 플라스틱 오염 대응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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